[이철영의 정사신] 안철수가 말한 ‘국민’과 링컨이 말한 ‘국민’

안철수 의원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국민의당 창당발기인 대회에서 창당준비위원장 추천을 위대 단상에 오르고 있다. /남윤호 기자

[더팩트 ㅣ 이철영 기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쳐나가겠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10일 오후 국민의당 창당발기인대회에서 ‘창당 발기취지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이 게티스버그 전투 4개월 후 전장에 세워진, 당시 숨졌던 병사를 위한 국립묘지 봉헌식에서의 연설문을 인용한 것이다.

안 의원이 빌린 링컨의 이 연설문의 일부는 정치인이라면 한번쯤 인용할 만한 문구다. 국민의당이라는 당명을 공표한 안 의원이니, 링컨의 '국민' 연설과 어찌보면 아귀가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링컨의 명연설문은 안 의원뿐만 아니라 한상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도 인용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두 사람의 연설은 링컨의 연설만큼 감동을 주지 못했다. 물론 상황이 다른 측면이 있음을 고려해도 그렇게 느껴진다. 두 사람이 인용한 링컨의 연설(1863년 11월 19)은 명연설로 꼽힌다. 링컨의 연설에 사용한 단어는 고작 300단어에 불과하다.

‘여든 하고도 일곱 해 전,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 속에 잉태된 나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믿음에 바쳐진 새 나라를 이 대륙에 낳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나라, 혹은 그같이 잉태되고 그같이 헌신된 나라들이 오래도록 버틸 수가 있는가 시험받는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전쟁의 거대한 격전지가 되었던 싸움터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그 땅의 일부를, 그 나라를 살리기 위해 이곳에서 생명을 바친 이들에게 마지막 안식처로서 바치고자 모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해 줘야 마땅하고 옳은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이 땅을 헌정하거나 봉헌하거나 신성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싸우다 죽은, 혹은 살아남은 용사들이 이미 이 땅을 신성하게 했으며, 우리의 미약한 힘으로는 더 는 보탤 수도, 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세상은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용사들이 이곳에서 한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안철수 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국민의당(가칭)은 10일 발기취지문을 발표하고 부패 척결 및 낡은 진보와 수구 보수를 넘어선 합리적 개혁을 내걸었다. /남윤호 기자

우리, 살아남은 이에게 남겨진 일은 오히려, 이곳에서 싸운 이들이 오래도록 고결하게 추진해온, 끝나지 않은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신의 가호 아래,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그리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가 지구 상에서 죽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링컨의 이 연설은 장황하지도 않고 정치적 수사도 없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렇다면 링컨의 연설문을 인용한 두 사람의 연설문은 어떤가. 장황하고 정치적 수사와 비판으로 가득 차 있다. 새로운 당을 만드는 두 사람이니 왜 신당을 창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현 정치가 가진 문제점, 그리고 당의 방향 등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두 사람은 ‘낡은 정치(진보)와 수구 보수’, ‘양당체제의 종식’, ‘정치적 혁명’ 등을 이야기하면서 “시민의 참여, 국민의 참여만이 담대한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참여를 독려했다. 그런데 이미 시민과 국민은 정치에 참여해 담대한 변화를 이끌어왔다.

안 의원이 바꿔야 한다고 내세운 낡은 정치(진보)는 운동권 출신의 정치를 지칭한다. 그러나 시민과 국민의 참여로 담대한 변화를 이끌어 2016년이 가능했던 데에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 당시 독재와 맞서 싸운 민중이 그랬다. 담대한 변화를 위해 시민은 늘 행동했고, 그들의 희생이 있었다. 이를 낡은 것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제2차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가운데 시위 참가자들이 행진의 목적지인 서울대학병원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링컨은 안 의원과 반대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신의 가호 아래,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그리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가 지구 상에서 죽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왜 일각의 사람들이 안 의원과 신당 창당 세력에게 “안 의원은 국정화 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무엇을 했는가?” “안 의원은 세월호 침몰 당시 무엇을 했는가?” “안 의원은 정치를 바꾸기 위해 말이 아닌 어떤 행동을 했는가?”라고 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단순히 ‘친노’ ‘친문’ ‘노빠’들의 주장이라고 치부하기보다, 안 의원은 가슴 속 깊이 왜 이런 지적이 나오는지를 되뇌어볼 필요가 있다.

이제 막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며 돛을 올린 안 의원의 국민의당이 잘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안 의원의 약속이 지켜지길, 또다시 중요한 순간에 ‘철수’하는 안철수가 아닌 ‘강철수’이길 기대한다. 안 의원이 그릇된 정치색에 물들지 않는 'Dark Side' 에 빠지지 않길 바란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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