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출마와 경마, 공통점은 ‘승자독식’

한겨울에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다. 바야흐로 출마(出馬) 철이다. 공직자들은 14일까지 결심해야 한다. 언론인도 마찬가지이다. 선거일 90일 전 사표를 내야 하는 것이다. /이효균 기자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한겨울에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다. 바야흐로 출마(出馬) 철이다. 공직자들은 14일까지 결심해야 한다. 언론인도 마찬가지이다. 선거일 90일 전 사표를 내야 하는 것이다.

한·중·일 모두 ‘출마’라는 표현을 쓰지만, 용어의 쓰임새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중국은 ‘경선(競選)에 출마한다’고 말한다. 선거를 일종의 ‘레이스(race)’로 보는 것이다. 경마에서 일렬로 선 경주마를 연상하면 된다.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선거와 경마는 다섯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승부가 기록이 아니라 순위로 결정된다. 비교적 단시간에 판가름 나며, 추리가 가능하다. 분석도 가능하고, 승자독식이다.

마사회는 위 다섯 가지 요소를 공통점으로 꼽았지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게 있다. 어마어마한 돈이 오간다는 사실이다. 경마장에 베팅하는 돈이 있다면 선거판에는 최소 ‘6락7당(六落七當)’이란 말이 있다. 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경기’가 경마와 선거이다.

일본에서 ‘출마’는 뜻이 조금 다르다. ‘말에 올라 전장(戰場)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선거도 생사(生死)를 가름하는 전투로 여기는 것이다. 중세 유럽의 마상시합 ‘토너먼트(Tournament)’와 유사하다. 여기서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패자부활’이 없다. 지면 끝이다.

한국은 좀 복합적이다. 이기거나 지는 ‘레이스’와 죽거나 사는 ‘토너먼트’가 섞였다. 여기에 이합집산(離合集散)까지 횡행해 누가 우리 편인지 편가름마저 헷갈린다. 과연 마지막까지 완주할지 여부도 확신할 수 없다. 출마(出馬)한 후보가 낙마(落馬)했다가 물구나무 선채로 달려 테이프를 끊기도 한다. 그래서 ‘출주표’가 나와도 누가 뛸지, 어떻게 진행될지 가늠하기 어지럽다. 한국의 선거는 늘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물론 안개가 걷히고 나면 너무나 빤한 길이자 결과이지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해 4.29 재보선 출정식에 각각 참석해 상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더팩트DB

선거가 끝나도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선거법 위반 고소고발이 있다. 결국, 검찰의 손을 거쳐야 완전히 당선되는 것이다. 항상 발목을 잡는 것은 ‘돈’이다.

민주주의의 본고장 서유럽도 선거가 돈에 물드는 것을 경계했다. 출마자를 뜻하는 영어 ‘캔디데이트(candidate)’는 라틴어 ‘칸디다투스(candidatus)’가 뿌리다. 로마시대에 ‘순백의 옷을 걸친 공직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원로원 의원과 의원 후보자들이 하얀 토가를 두르고 다닌 데서 유래했는데, 이는 청렴함의 상징이었다. ‘캔디드(candid)’는 깨끗하다, 정직하다, 공평무사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선거(選擧)라는 한자어도 마찬가지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 ‘현량방정(賢良方正)하고 효렴(孝廉)한’ 지역 인재를 군수가 관리로 추천하는 제도가 그 뿌리이다. 그 절차는 ‘들 거(擧)’ 즉, 현량을 관리 후보로 천거하면서 시작된다. 다음이 ‘가려 뽑을 선(選)’이다. 오늘날로 보면 공천심사위원회의 후보 추천이 ‘거(擧)’이며, 유권자 지지로 당선되는 절차가 ‘선(選)’이다. 청렴하지 못하거나 효심과 충성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예 선거의 대상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라도 선거에 나설 수 있다. 헌법 제1조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규정은 곧 민(民)이 주인이란 뜻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방법이 선거다. 피선거권만 있으면 누구라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 될 수 있다. 아무나 뽑히지는 않겠지만,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무나’ 되는 것 같다는 자조적 한탄이 들린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에서 선량(選良)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몇 줄쯤이라도 읽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

다산은 ‘원목(原牧)’에서 “관리를 위해 백성이 있느냐, 백성을 위해 관리가 있느냐”고 물으면서, 목민의 자세로 자신을 다스리고(律己), 공을 받들고(奉公), 백성을 사랑하는(愛民) 세 가지를 들었다. 그러면서 호랑이와 승냥이 같은 토호의 해(害)를 없애고 백성이 스스로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목(牧)이라는 얘기다.

또 ‘원정(原政)’에서 “정치란 백성을 고르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백성의 빈부(貧富)·강약(强弱)·선악(善惡)·현우(賢愚)을 가늠해 바르게 하는 것이 정치란 이야기이다. 그런데 너도나도 출마를 선언하는 작금의 후보는 이런 목(牧)과 정(政)의 본 뜻을 알지 모르겠다.

한상진 국민의당 창당추진위원장은 10일 창당발기인대회 인사말에서 우리는 국민의당 창당준비의 역사적 항해를 시작한다. 국민의당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로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겠다고 밝혔다./세종문화회관=남윤호 기자

목민과 정치는 몰라도 덕(德)은 갖추었을까. 송(宋)대의 주희(朱熹)는 근사록(近思錄)에서 ‘구덕(九德)’을 이야기하는데, 바로 서경(書經)에서 고요(皐陶)가 순(舜)임금에게 하는 말이다. “너그러우면서 위엄이 있고, 부드러우면서 확고하며, 성실하면서 공손하고, 다스리면서도 공경하며, 익숙하면서도 의연하고, 곧으면서 온화하며, 간결하면서 세심하고, 억세면서도 충실하고, 강하면서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하지 않으면 ‘천하대사(天下大事)’가 어지러워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다’고 할만한 덕을 과연 몇 가지나 지니고 있을까.

물론 세상에 잘나고 좋은 것을 다 갖춘 이는 없다. 고려의 문인 이인로는 파한집(破閑集)에서 “뿔이 있으면 이빨이 없고, 이름난 꽃은 열매가 없다”고 했다. ‘각자무치(角者無齒), 명화무실(名花無實)’이다. 사람들 모두가 장단(長短)과 강약(强弱)이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더라도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서는 인사라면, 목(牧)이든 정(政)이든 바른 가치관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몇 가지의 덕(德) 쯤은 갖춰야 하지 않겠나.

“대한(大寒)이가 소한(小寒)이네 놀러 왔다가 얼어 죽는다”고 했는데, 올해는 소한이 지나도 후끈하다. 출마 예정자들의 치열한 눈치 보기와 뜨거운 간 보기 때문이다. 할까 말까, 될까 안 될까.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일단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을 돌려받는다지만, 과연 얼마를 더 써야 하나. 삼각함수 푸느라 지난 주말이 퍽 짧고도 길었을 것이다.

더욱이 20대 총선은 예전처럼 OX가 아니다. 여야 양자대결이 아닌 것이다. 선택지가 현재로서는 최소 셋이다. 야당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쪼개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소속이 유리할 수도 있다.

여당도 만만치 않다. ‘박심’이냐 ‘무대’냐 선택이 어렵다. ‘박심’이라도 ‘진박 카스트’의 어디쯤 속하느냐에 따라 결심하기 쉽지 않다. 물론 앞뒤 잴 것 없이 붉은 깃발 1번을 향해 달리고는 있지만.

소한에서 대한 사이에는 예로부터 기러기가 북으로 날고, 까치가 집을 지으며, 꿩이 운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선거판에서는 기러기들이 이리저리 날고, 까치들이 서로 집을 지으며, 예서 제서 꿩들이 울어 젖힌다. 말꼬리에라도 붙어서 천리를 가겠다는 파리들도 왱왱거린다.

출마는 자유다. 완주는 아마도 계산된 옵션일 것이다. 승패는 바람(Hope)과 바람(Wind) 사이에 위치할 것이다. 여하튼 최선(最善)을 가리기도 어려운데, 최악(最惡)을 피해 차악(次惡)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국민들만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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