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땅으로 내려온 원숭이, 바다로 간 고래

2016년 병신년(丙申年)을 맞은 원숭이들.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황금 원숭이들이 추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가지 않은 길’의 선택이 진화 첫걸음.

금년금연, 금주금주! 한글로 쓰면 말장난 같지만 한자로 쓰면 뜻이 명확해진다. 금년금연(今年禁煙), 금주금주(今週禁酒)이다. 올해는 담배를 끊고, 이번 주는 술을 끊는다.

누구나 정초가 되면 이런 계획 저런 다짐을 한다. 옛말에도 ‘1년의 계획은 원단(元旦)에 세운다’고 했다. 원단은 설날 아침을 뜻한다.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담배와 술과 관련한 계획이 많은 것 같다. 특히 2015년엔 담뱃값이 오르면서 금연 인구가 늘었지만, 반년이 지나자 대부분 원상회복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덕분에 정부의 세수입만 엄청나게 증가했다고 한다.

담배와 술은 한자로 ‘연주(煙酒)’이다. 중국어로는 ‘옌지우’로 발음되는데, 뇌물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중국인도 운전하다 신호를 위반하거나 과속으로 경찰에 걸리면, “한번 봐달라”고 한다.

이때 경찰이 좀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연구(硏究)해 보자”고 한다. 중국어로 “옌지우바(硏究吧)~”인데, 뇌물이란 뜻의 담배와 술 ‘옌지우(煙酒)’와 발음이 같다. 운전자가 눈치껏 뇌물을 건네면, 경찰은 “그저 생각해보자는 말이었는데…”하면서 슬쩍 주머니에 넣는다고 한다.

올해는 병신(丙申)년이다. 붉은 원숭이의 해라고 한다. 원숭이와 관련된 속담 가운데는 아마도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것이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때론 실수하거나 실패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있겠는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성공하지도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지금의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징검다리인 것이다.

생각을 약간 비틀어보자. 나무에 오르지 않은 원숭이는 떨어질 일도 없다. 그렇지만, 나무에 오르지 않고 바나나를 딸 수는 없지 않은가. 한 번 더 생각을 비틀어보자. 원숭이가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호모 사피엔스가 가능했겠는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 내려오는 것은 결과적으로 땅에 발을 디뎠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그것이 자의(自意)냐 아니냐에 따라 진화의 갈림길에 처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병신년 새해를 맞아 지난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조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살면서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할 때가 있다. 마치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원숭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이라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가 지금 애써 쥐고 있는 무엇인가를 놓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놓으면 어떠한가. 전혀 새로운 ‘진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수 전인권은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외쳤지만, 그것 말고도 전혀 새로운 ‘블루 오션(Blue Ocean)’이 펼쳐지는 것이다.

새로운 기회, 즉 ‘블루 오션’은 ‘가지 않은 길’에서 시작된다. 누구나 가는 길은, 누구나 좋다고 생각하는 길은 대부분 ‘레드 오션(Red Ocean)’이다. 붉은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는, 유혈이 낭자한 정글인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려온 원숭이는 결국 지구를 정복했다. 내려오지 않은 원숭이는 지금도 바나나를 따 먹으며, 이따금 실수하거나 나뭇가지가 부러져 땅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떨어진 원숭이는 사자나 호랑이 같은 포식자에게 먹히기 십상이다.

육지에 올라왔다가 다시 바다로 간 고래도 있다. 어류에서 양서류로, 다시 파충류를 거쳐 포유류로 진화한 고래가 아닌가. 하지만 진화한 포유류들이 육지에서 먹고 먹힐 무렵 고래는 떠나온 바다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하여 바다 최강의 포식자가 되었다. 그야말로 고래에게 바다는 ‘블루 오션’이다.

고래도 약점이 있다. 어류와 달리 수중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보통 3분30초 이내 수면으로 올라와 공기를 들이마셔야 생존할 수 있다. 새끼 고래는 다른 포식자 고래에게 먹히기도 하는데, 그 방법은 새끼 고래를 수면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위에서 눌러 익사(溺死)시키는 것이다. 바다에 사는 고래는 자칫 바닷물에 익사하는 것이다. 위기(危機)는 위험과 기회를 합친 말이다. 위험이 있는 곳에 기회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 땅에 내려온 원숭이는 지상에서, 스스로 바다로 돌아간 고래는 바다에서 최강자가 됐다. 가지 않은 길을 갔기 때문에 이룬 성취이다. 이들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강자존(强者存)’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존가강(存者强)’의 길을 택해 번영하는 경우도 있다.

김한길 더불어민주당(오른쪽 · 구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가 3일 탈당하면서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 함께 신당 창당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더팩트DB

예컨대 가죽나무이다. 가짜 죽나무라는 뜻이다. 한자로는 가승목(假僧木)이다. '가짜 중 나무'라고도 한다. 높이 25m까지 쑥쑥 잘 자란다. 이 나무를 두고 장자(莊子)는 ‘인간세(人間世)’에서 무용지용(無用之用)을 설파한다. 이 나무는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을 만들면 금방 썩으며, 가구를 만들면 곧 부서지고, 문짝을 만들면 나무진투성이가 되고, 기둥을 만들면 금방 좀이 먹는다는 것이다.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무용(無用)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크게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잘 자란 나무는 금방 베어진다. 이 가죽나무도 쓸 데가 없었기에 잘 살아남은 것이다. 모든 나무들이 이런저런 특징과 쓸모를 자랑하다 베어졌지만, 가죽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쓸모 없음’을 향해 정진했던 것이다. 이 역시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것이다.

‘가지 않은 길’에는 온갖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달리는 길에는 오히려 교통사고도 많고, 피 흘리는 경쟁도 많고, 보이지만 생각하지 못한 위험들로 가득하다. 바로 눈앞만 안전해 보일 뿐이다.

모두 이런저런 새해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가 가는 길’이라면, 말리고 싶다. 인생에 모험이 없다면 지루함뿐이 아니겠나. 땅으로 내려온 원숭이, 바다로 간 포유류 고래, 무용지용으로 살아남은 가죽나무는 등 떠밀려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스스로, 자의에 의해서 선택한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지금 당신의 판단은 대부분 틀린 것이다. 왜냐. 성인인 공자(孔子)도 이순(耳順)의 나이 60세가 될 때까지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60번이나 고쳤다고 한다. 처음에 옳다고 믿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 잘못임을 깨달아 생각을 고쳐갔다는 것이다. 나이와 더불어 늘 ‘새로운 생각’으로 살아간 것이다. 지금 우리들이 옳다고 믿는 것도, 진실이라 믿는 것도 공자가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고치게 될 잘못된 생각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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