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민지 기자] "목 타는데 물 한 잔 먹을 수 있나요? 속이 탑니다 허허."
지난 2일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국회의장-양당 원내지도부 회동에서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듯 초조한 기색이 역력해 보입니다. 그는 시원한 물이 도착하자마자 허둥지둥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킵니다. 반대로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저는 이미 없어질 목숨이라 관조 단계"라며 태연한 면모를 보입니다. 하지만 꼭 다문 입과 눈빛만큼은 각오를 단단히 한 듯 비장합니다.
이날 회동에서 여야는 예산안과 5개 쟁점법안 처리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새누리당은 "시급한 법안이니 직권상정을 해달라"며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수차례 요구했고, 야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숙려기간 5일 준수'를 주장하며 반발했습니다.
온종일 '본회의를 열어 법안 처리를 한다, 하지 않는다'를 두고 롤러코스터처럼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습니다. 덩달아 취재진도 오후 내내 '본회의는 언제 열리는가'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웠고, 결국 다음날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의원들은 하품하며 간신히 법안 처리를 완료했습니다. 법안 처리보다는 새누리당의 "이날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무언가(?)에 쫓긴 끈질긴 인내를 느낄 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5개 쟁점법안'은 타결됐을지 몰라도 이날 봤던 양당 간 '밀당(밀고 당기기)'은 12월 한 달 내내 계속되려나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고 또 강조한 '노동개혁 5대법안·경제활성화법안'을 결국 19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처리치 못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9일부터 잇따라 야당 발목잡기에 나섰습니다.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여당 지도부의 연일 계속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지난 2일 원 원내대표의 '목타는 심정'과 같은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9일 김 대표는 "야당은 집안싸움을 하더라도 입법활동을 계속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10일엔 "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하고 포퓰리즘에 빠진 나라는 실패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야당에 백 번 말해봐야 집안싸움에 정신이 없어 소귀에 경 읽기라 답답하다. 민생·경제 법안은 당리당략 관철을 위한 인질도, 협상을 위한 흥정대상도 전리품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원 원내대표 역시 "새정치연합이 어떻게 절박한 청년들 일자리 창출법안과 경제활성화법안, 국민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안을 무참히 팽개칠 수 있는지 무책임과 무모함에 놀랐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같은 말, 같은 비판으로 야당의 비협조를 성토했지만 '국민을 위한다던' 쟁점법안 처리는 여전히 요지부동입니다. 국정운영의 책임을 지고 있는 집권 여당의 미흡한 정치력이나 협상력, 추진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치라는 것이 어떤 사안에 대한 반대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며, 거대 집권 여당은 반대쪽인 야당을 대화로 설득하며 협상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쟁점법안과 더불어 난항을 겪고 있는 선거구 획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8일 "내가 볼 때는 새누리당이 좀 과하다. 새누리당이 거대 여당(157석)으로서 형님인데, 형님이 너무 자기 당의 이익에 치우친 게 아니냐. 전체적으로 맏형이 그렇게 주장하면 성사가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치는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것을 뜻합니다. 정치력은 이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이나 수완을 말하고요. 19대 국회를 끝내고 국민에게 심판받을 날이 이제 120여 일밖엔 남지 않았습니다. "민생 법안 처리, 국민을 위한 정치"를 외치고 있는 거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른 무언가(?)의 압박에만 휘둘리지 않고, 야당을 잘 구워삶아 내는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오늘의 리뷰: "누구를 위한 국회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에 묻고 싶습니다. "누구를 위해 그토록 애간장 태우시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