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초동=오경희·서민지 기자]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신당을 추진 중인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11일 한자리에 모였다.
문 대표와 박 시장, 천 의원은 이날 오후 2시 10분께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고(故) 조영래 변호사의 25주기 추모식에 나란히 참석했다.
고인과 절친한 사이였던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참석 여부도 주목됐으나, 정치적 관심때문에 불참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영상을 통해 추모 메시지를 보내왔다. 앞서 야권의 핵심 지도자들인 세 사람이 추모행사에 참석키로 하자 당 안팎에서 내홍 수습을 위해 머리를 맞댈지 관심이 집중됐다.
고인은 문 대표·박 시장과 사법연수원 동기(12기)이고, 천 의원(8기)과는 법률사무소를 같이 개소해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다.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과 손 전 고문과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문재인-박원순-천정배' 순으로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은 식전 악수를 하며 짧은 인사를 나눴을뿐 별다른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박 의원과 천 의원은 행사 중간에 잠깐 대화를 했고, 천 의원이 일정 상 먼저 자리를 떠나자 문 의원과 박 시장은 서로 마주보며 귀엣말을 했다.
기념사에서 세 사람은 각각 조영래 변호사를 '형, 선배'라 부르며 인권변호사로서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그의 삶을 뒤따를 것을 약속했다. 또한 혼돈과 불안의 시대 속에서 고인이 된 조 변호사에게 해답을 구했다. 마치 분열된 야당의 가야할 길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장내의 참석자들에게 되묻는 듯했다.
문재인 대표는 기념사에서 "조영래 형은 제가 인권변호사 길을 걷게하는 데 결정적 영향력을 줬다. 박원순 시장도 동기였는데 형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 중 하나다"라면서 "그 후 역사의 길목마다 고비마다 이럴 때 형이 살아있었다면 어떤 역할을 했을까 생각하곤 한다. 시대가 어려워질수록 형의 부재가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영래 변호사가 남긴 사랑과 헌신, 열정을 품고 그의 길을 뒤따라 걸어갈 것을 다짐한다. 치열하고 뜨겁고 그렇지만 한없이 낮게 있겠다. 평범하게 소박한 삶도 귀하게 대접받는 국민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금 세상이 흐리다. 우리는 다시 혼란과 퇴행의 시대를 지내고 있다. 조영래 선배님,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어떻게 이 불행한 시대를 끝내고 민주와 정의, 희망의 세상으로 건너갈 수 있을까. 형 그때처럼 형이 다 알아서 저희들은 그 뒤에서 형이 시키는 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승에서 다 하지 못했던 것을 저희에게 알려주십쇼. 당신이 너무 그립다"고 회고했다.
천정배 의원도 조영래 변호사와의 선견지명과 추억을 회상했다.
천 의원은 "1988년 청문회가 있었다. 그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초선의원이었고 청문회로 유명했다, 민변이 설립됐다. 조영래 선배님께서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대통령이 되면 좋을만한 정치인이 있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제가 그 후에 노무현 후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앞장섰는데 조 선배께서 그보다 일찍이 한참 전에 그런 말씀 하신 것에 대해 생각도 해 본다"면서 "저도 살아오면서 특히 정치를 하면서 늘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 대해 서게 된다. 그때마다 조영래 선배는 어떤 판단을 하실까 늘 아쉬움과 그리움을 가지게 된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먼저 행사장을 나선 천 의원은 '전당대회를 비롯한 야권통합과 야당의 내부 상황'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그럴 이야기할 때 아니다"라며 서둘러 떠났다.
뒤이어 함께 자리에서 일어선 문 대표는 '전당대회를 비롯한 야권통합과 야당의 내부 상황'에 대해 묻자 아무말 없이 주차장으로 향했고, 박 시장은 '어떤식의 야권 통합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그건 잘 모르고요"라고 답했다.
추모행사는 가족 대표 인사, 고인 추모영상 상영, 흉상 전시,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기여한 변호사에 대한 '조영래 인권상' 시상 순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엔 세 사람을 비롯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전순옥 새정치연합 의원 등과 법조계 인사들이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