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ㅣ 이철영 기자] 한 때 잘 나갔던 김민석(53·민주당 새로운 시장위원회 의장) 전 의원은 지난 9월 18일 정계에 복귀했다. 야권 분열이 정점에 달한 시점이다. 김 전 의원은 정계에 복귀하며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닌 민주당을 선택하면서 신당 창당 세력과의 연대나 통합 가능성에 무게도 쏠린다.
김 전 의원은 롤러코스터 같은 정치인생을 경험했다. 1995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을 졸업하고 조순 서울시장 대변인으로 활동한 후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의 배우 출신 최불암 의원을 꺾고 여의도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그의 나의 33세였다. 이후 4년 뒤인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면서 탄탄대로의 정치 생활을 이어갔고, 그는 486세대의 리더로 자리 잡았다.
그는 2000년 美 뉴스위크 선정 21세기 100대 지도자에 선정되며, 김민석이라는 이름은 한국 정치의 미래로까지 거론됐다.
이후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경쟁했지만, 낙마했다. 이때부터 그의 정치적 역경은 시작했다. 16대 대선에서 정몽준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정몽준 후보는 대통령 선거 당일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를 철회하면서 김 전 의원은 철새로 낚인 찍혔다.
<더팩트>는 지난달 12일 오전 김 전 의원을 민주당 당사에서 만났다. 김 전 의원이 복귀한 민주당은 지난해 9월 60년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당명을 민주당으로, 김한길 대표체제의 민주당과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연합이 통합해 만든 새정치민주연합과는 다른 정당이다. 취재진은 김 전 의원과 정계 복귀, 야권 분열과 통합 그리고 그의 정치인생을 들어봤다.
◆젊을 시절 진짜 잘 나갔는데…그래도 후회는 없다
요즘 젊은 층은 잘 모르겠지만, 김 전 의원은 한때 시쳇말로 ‘정말 잘나간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옛말이 된 지 오래됐다. 김 전 의원은 잘 나가지 않았냐는 질문에 “정말 잘 나갔죠”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세월이 흐른 만큼 그도 변했다. 과거 30대 정치를 했을 당시의 날카롭기만 했던 표정은 여유와 웃음으로 바뀌었다. 젊은 혈기는 걷혔고, 연륜이 묻어 있었다.
-‘김민석’ 하면 한때 정말 잘나가던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과거형이다. 어떤가?
(웃음) 진짜 잘 나갔죠. 저는 잘 모르겠는데, 주변에서 스토리가 있다고 하더라. 다른 건 없고 잘나가다 뚝 떨어지고 나니 과거보다 여유가 생겼다. 사람들 이야기 듣고 생각을 더 하게 되는 게 몸에 익은 것 같다. 그래도 행복한 편이라 생각한다.
국회의원 안 한 지 13년 됐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깜짝 놀란다. 완전히 잊혀야 맞다. 그래도 비교적 주변에 지인들이 있는 게 진짜 좋다. 감사하다는 걸 알게 됐다. (잘 나가던) 30대 때 못 봤던 것을 봐서 좋다. 괜찮은 것 같다. 거기다 세상이 바뀌어서 고령화 시대가 됐다. 난 아직 나이가 창창하다. (웃음)
씁쓸한 법도 한데 김 전 의원은 지난날에 대한 미련은 없어 보였다. 젊은 나이에 재선 의원을 거쳐 서울시장 후보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그였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어서인지 표정은 편안해 보였고, 오히려 자신의 허물을 웃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노련미까지 생겼다.
-순간의 선택이었지만, 후폭풍이 거셌다. 정치한 것을 후회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원래 정치도 학생운동도 학생회장도 할 줄 몰랐다. 그때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서 선택한 것들이다. 지금도 후회는 없다. 다만 제일 큰 고민은 내가 정치를 다시 한다는 것은 시대정신이 없는 정치는 영혼이 없는 인간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시대정신이 뭔가를 찾고, 그것을 나라나 공동체나 국민에게 이런 길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으면 국회의원 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 그런 것을 잘 찾고 정리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 지금도 고민이다. 찾고 있고 이 과정을 잘 정리해서 말하고 표현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앞서 신당과의 통합을 이야기했는데, 세력통합엔 정치공학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세력통합은 어려움 없이 될 것으로 본다. 일찍 정치를 시작해서 정치공학의 한계를 누구보다 많이 경험해봤다. 다만, 그런 정치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내용이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이회창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했다
-김 전 의원 하면 16대 대통령선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김 전 의원으로서는 지우고 싶은 기억일 수도 있겠다.
충격과 실망과 두 번 다시 안보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죄송하다. 당시는 절박한 선택이었는데 10년 이상 고생할 것 알았으면 안 했을 것이다. (웃음) 사실 당시는 오만에 가까운 순진함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말하는 데 정말 나 하나 잘되려고 선택한 건 아니다.
(정권 재창출) 그것에 대한 것이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그 결과로 정권 재창출이 됐지만, 큰 것을 잃었다. 심지어 진심이었더라도 이것이 정치공학으로 접근됐을 때 사람들의 분노를 몰랐다. 그때 제대로 배웠다.
나는 당시 정몽준 후보를 지지한다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권 재창출이라는 전략이었다. 여기에 괴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때는 참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때가 30대였는데 ‘이회창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몽준 후보를 선택할 때 정권 재창출을 못하면 정치를 그만둘 각오를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잘 봐와서 알 것이다. (웃음)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꺾기 위해 단일화에 성공한 듯했다. 그러나 정몽준 후보는 돌연 단일화를 취소했다. 당시 김 전 의원은 노무현 후보가 아닌 정몽준 후보 편에 섰다가 거센 후폭풍을 맞게 됐고, 그의 정치적 입지도 좁아지는 계기가 됐다.
-정계를 떠나있는 동안 별다른 소식이 없다가 이혼 소식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정계복귀가 아닌 사생활로 김민석이라는 이름을 다시 알렸는데.
복귀전까지 사소한 언론 노출도 의도적으로 안 했다. 방송에서 프로그램이나 패널로 참석해 달라고 했는데도 거부했다. 정치를 떠나 있는 동안 노출을 안 시키려 했는데. 이혼 이야기가 나오더라. 참 의외였다. 하다 하다 별것이 다 기사가 되는구나 생각했다. (웃음)
정치를 떠나서 가장 좋았던 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이혼하면서 아이가 엄마와 인도네시아에 있는데 정말 보고 싶다. 정치에 복귀한다고 했을 때 딸은 아빠가 정치로 노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아들은 기사가 나오면 좋은 건 줄 알고 좋아한다. (웃음)
기러기 아빠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아이와 떨어지는 것은 충격이었다. 안 먹던 술도 한잔 하게 되더라.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 것은 30대에 정치를 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가족을 노출 시켰다. 의도적이진 않았다. 노출되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면서 되도록 가족들을 노출 시키지 않으려 한다. 왜 그러냐면 정치를 하는 사람이 가족을 보호해주지 않으면 당사자의 삶이 즐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시대정신을 담은 정치인이 되고 싶다
-새정치연합이 아닌 민주당으로 복귀했다. 왜 민주당으로 왔나?
개인의 정계복귀 차원으로 보고 있지 않다. 1년 전 새정치연합이 만들어지고 지방선거에서 패했을 때 나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결과를 보면서 이제 야당은 혁명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야당에 길이 없다. 제가 할 힘은 없지만, 답은 그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친노, 비노라는 말을 잘 안 쓴다. 야당이 아닌 국민이 볼 때는 '초록은 동색'으로 다 똑같다고 본다. 새정치연합의 어려움에 대해 안타까움도 있지만, 크게 보면 지금 방식, 틀, 생각으로 가면 공도동망(共倒同亡-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고 망(亡)하여도 같이 망한다)이다. (새정치연합은) 사라지는 길로 가는 것이다. 힘들지만 다시 짜는 게 불가피하고 생각한다.
-정계에 복귀하면서 김 전 의원의 내년 총선 출마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출마하나?
출마 여부도 지역도 아직 정하지 않았다. 워낙 갑자기 일을 맡게 돼서. 일단 전체적인 판을 좀 정리한 후 생각하려 한다. 물론 국회의원을 다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예전보다 더 잘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은 여유가 없다.
지역 정해놓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지도 않을 것 같다. 우선은 (신당 창당세력과의 통합) 큰 가닥을 정리한 후 결정할 계획이다. 누가 뭘 기다리겠어요. (웃음)
-정치를 하면서 롤러코스터 인생을 제대로 경험했다. 그리고 다시 복귀했다. 김민석의 정치는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것은 '시대정신'이다. 내용을 채워가는 정치를 하고 싶다. 이게 중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런 거다. 이 정부가 아직도 성장을 이야기하는데 한가한 이야기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지속할지 모르는 저성장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전 사회가 대 전환기에 들어가고 있는데 위기감을 너무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대처하지 만만치 않은 문제다. 요즘 이 부분을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다.
정치도 이젠 저비용 상생 정치로 가야 한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타협할 때는 타협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대한민국 정치는 타협으로 바뀌는 게 바르다고 본다. 남경필 경기지사의 연정이 맞는다고 본다.
정치개혁, 남북문제, 복지국가 이런 것은 전통적인 진보, 보수의 일정한 타협이 없으면 어느 쪽도 한걸음도 가지 못할 것이다. 서구의 복지국가들은 사회적 대타협으로 갔다고 하는데 우리는 사회적 대타협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는 정치적 대타협으로 풀어야 한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한 것들이 있다. 조만간 정리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담은 정치를 하고 싶다. 제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