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국가장] 46년 함께한 상도동 사저와 '마지막 인사'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인이 거행된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사저에서 차남 김현철 씨와 장손 김성민 씨가 고인의 영정과 함께 사저를 둘러본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 | 상도동=서민지 기자] '생사고락 함께한 상도동, 영원한 이별'

46년을 함께한 상도동 사저가 26일 마지막으로 고 김영삼 대통령을 맞았다. 이날 오후 국회에서 국가장 영결식을 마치고 유가족들은 김 전 대통령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있는 상도동 사저를 마지막으로 들렀다.

차에서 내린 장손 성민 씨(은철 씨 장남)가 영정 사진을 들고 앞장섰고, 차남 현철 씨를 비롯한 직계가족 15명이 뒤따라 사저로 들어갔다. 유족들은 김 전 대통령의 정들었던 보금자리 곳곳에 영정 사진을 내려놓으며 6분 간 아무 말 없이 머물렀다.

유족들은 2층으로 들어가 가장 먼저 좌측에 있는 안방으로 향한 뒤 건너편 식당에서 한 바퀴 짧게 돌았다. 그 다음 거실로 가서 'ㄷ'자 모양의 5인용 소파에 잠깐 들렀다. 소파 뒤로는 중앙에 '송백장청(松栢長靑)'이란 글자가 쓰여진 액자가, 그 왼쪽으로는 부시 미국 전 대통령 부자와 함께 찍은 사진, 오른쪽에는 1970년 젊은 김 전 대통령이 연설하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이 평소 자주 앉았던 테이블 앞 상석 자리에선 30초 가량 머물렀다.

고 김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오후 서울 상도동에 도착한 가운데 장손 김성민(왼쪽)이 영정을 들고 차남 김현철(오른쪽)과 함께 사저로 향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사저를 나온 운구 행렬은 사저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에 짓고 있는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을 지나쳐 영면의 안식처인 현충원으로 떠났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부터 줄곧 고인의 가는 길을 지켜 온 현철 씨는 내내 침통한 표정으로 운구 행렬을 이끌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69년 상도동에 둥지를 튼 이래 46년 간 이곳에서 굴곡진 한국 정치사를 써갔다. 김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5·16군사정변(1961년) 이후 약 30년간 역대 군사정권하에서 납치·테러·사형선고·투옥(6년)·망명(10년)·가택연금 등의 온갖 고초를 겪으며 군사정권에 끝까지 맞서 민주화운동을 펼쳤다.

4차례 도전 끝에 1992년 14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는 등 영욕의 순간을 맞이한 현장이기도 하다. 김 전 대통령은 동료 의원들을 이곳에 불러 모아 중요한 정치 현안을 논의했고, 이는 '상도동계'라는 계파의 유래가 됐다. 규모는 역대 대통령의 사저보다 작지만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라고 평가돼 '민주화의 성지'로 영구 보존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고 김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서울 상도동 김영삼대통령 기념도서관 앞을 지나가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46년이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만큼 김 전 대통령은 상도동 주민들과의 관계도 각별하다. 대통령에 당선됐을 당시에는 주민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고, 평소엔 주민들과 인근 산책로에서 배드민턴과 등산을 하는 등 운동을 즐겼다.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 소원'으로 상도동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 건립을 꼽았다. 김 전 대통령은 2011년 재산 50억 원 환원을 약속하며 상도동 자택을 포함한 전 재산을 '김영삼 민주센터'에 내놨다. 자택 규모는 376.9㎡(114평)으로 사저의 당시 시가는 20억 원 정도다. 이를 재원으로 건립하는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은 내년 3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지하 1층부터 2층까지는 김 전 대통령의 생애를 담은 기념관을, 나머지 공간엔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으로 꾸밀 예정이었다. 맨위 8층에는 김 전 대통령을 위한 집무실도 마련할 예정이었고, 고인은 걸어서 기념도서관에 출퇴근을 하겠다며 재활 의지를 다졌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영원히 주민들의 곁을 떠났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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