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상도동=서민지 기자]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우리들 마음엔 영원히….'
상도동 일대는 흩날리는 눈과 함께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눈물로 보냈다. 26일 김 전 대통령의 서울 동작구 상도동 사저 앞에는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모여 운구 행렬을 지켜봤다. 사저 주변 곳곳에는 김 전 대통령의 영면을 비는 조기가 바람이 불때마다 펄럭였다.
손이 꽁꽁 얼만큼 추운 날씨에도 주민들은 2시간 여 전부터 운구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따로 왔지만 삼삼오오 모여 김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젊은 날들을 곱씹었고, 젊은이들은 휴대전화로 영결식 상황을 지켜보며 주변에 상황을 알렸다. 몇몇 젊은이들은 "눈도 오게하고 참 대단한 분이셔"라고 입을 모으며 자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운구 차량이 도착하자 시민들은 줄지어 뒤따르면서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운구 차량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국장 영결식을 마치고 오후 3시40분께 김 전 대통령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있는 상도동 사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장손 성민 씨(은철 씨 장남)가 영정 사진을 들고 앞장섰고, 차남 현철 씨와 직계가족 15명이 뒤따라 사저로 들어갔다. 사저를 나온 운구 행렬은 사저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에 짓고 있는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을 지나쳐 영면의 안식처인 현충원으로 떠났다.
바로 앞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김 모 씨(40대) 씨는 주변을 내다보며 사람들에게 유자차를 건넸다. 그는 "주민들을 만나면 항상 손을 건네며 악수하셨다. 대통령보다는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친근하고 따뜻하신 분이셨다. 우리 아이들도 '김영삼 할아버지'라고 할 정도"라면서 "영부인과 항상 함께 운동하시고 다니시면서 전경들이나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건네곤 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영등포에서 거주하고 있는 김만호(67) 씨는 "가택연금 당하셨을 때 와본 뒤 35년 만이다. 마지막 가시는 길 배웅하러 왔다. 개인적으로 고인을 멀리서 지켜보며 굉장히 존경했다"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평생 헌신하셨고, 리더십도 있고 깨끗한 분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두분 때문이 오늘이 온 거죠"라고 말했다.
장승배기역에서부터 걸어온 연세 지긋한 두 할머니도 있었다. 김순봉(68), 이기정(68) 할머니는 김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눈을 맞으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참 존경했던 분이다. 마지막 가는 길 배웅해주러 왔다. 조금만 더 사시지…. 조금만 더…"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69년 상도동에 둥지를 튼 이래 46년 간 이곳에서 굴곡진 한국 정치사를 써갔다. 이곳에서 가택연금과 대통령 당선 등 영욕의 순간을 맞이한 만큼 주민들과의 관계도 각별했다. 대통령에 당선됐을 당시에는 주민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고, 평소엔 주민들과 인근 산책로에서 배드민턴과 등산을 하는 등 운동을 즐겼다.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 소원'으로 상도동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 건립을 꼽았다. 김 전 대통령은 2011년 재산 50억 원 환원을 약속하며 상도동 자택을 포함한 전 재산을 '김영삼민주센터'에 내놨다. 자택 규모는 376.9㎡(114평)으로 사저의 당시 시가는 20억 원 정도다. 이를 재원으로 건립하는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은 내년 3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지하 1층부터 2층까지는 김 전 대통령의 생애를 담은 기념관을, 나머지 공간엔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으로 꾸밀 예정이었다. 맨위 8층에는 김 전 대통령을 위한 집무실도 마련할 예정이었고, 고인은 걸어서 기념도서관에 출퇴근을 하겠다며 재활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영원히 상도동 주민들의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