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l 이철영 기자] 정청래(50·마포을·재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한 마디 한 마디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늘 화제다. 정 의원은 누구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렵지 않고 통쾌하게 SNS에 적는다. 글을 읽은 국민은 그의 말에 동조자는 통쾌해 하고, 반대론자들은 강하게 비난한다.
그러나 정 의원은 비난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정 의원의 대외적 이미지는 ‘야수(野獸)’다. 그는 야당의 최전방 공격수이자 야성이 살아있는 정치인이지만, 알고 보면 눈물 많은 남자다.
“사람들은 내가 엄청나게 강하고 야성만 있을 거로 생각하지만 사실 감수성이 풍부해 눈물도 많이 흘리는 남자다. 지금이야 사람들이 야수로 보지만 학창시절 나는 시를 쓰는 문학청년이었다. 학창시절 문예반만 했을 정도로 감성적이다.”
문학청년이었던 그가 정치에 눈뜨기 시작한 건 건국대학교에 다니며 학생운동을 하던 그때부터다. 정 의원은 이른바 운동권 출신으로, 학창시절 감옥에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첫 번째 교도소 수감은 1988년 건국대학교 ‘공동올림픽 쟁취 및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특별위원회(조통특위) 위원장을 맡으면서였고, 두 번째 교도소 수감은 1989년 10월 13일 미 대사관저 점거농성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으면서였다.
“정치해야겠다고 본격적으로 마음먹은 때가 바로 두 번째 교도소 수감에서다. 1989년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부터다. 교도소에서 많은 생각을 하다 한민족 공동의 꿈, 바로 ‘통일’이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분단의 극복과 통일의 제단에 내 인생을 저당 잡히는 것, 그것을 내 인생의 목표로 설정했다. 그러던 중 분단의 벽을 하나하나 낮추어가는 지름길이 정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두 번째 투옥으로 불효자가 되고 만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가 여전히 어머니 고 박순분 여사에게 죄송함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나를 45세에 낳았다. 16세 나이에 한 살 어린 아버지와 결혼해 10남매를 낳았지만, 다섯이 병으로 죽고 현재는 5남매다. 어머니의 삶을 보면 한국 근현대사 우리의 어머님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두 번째 수감됐을 당시 서울구치소로 어머님이 면회를 오셨다. 그렇게 면회를 마친 어머님은 사흘 뒤 중풍으로 쓰러지셨고, 6년 동안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교도소에서 나온 그가 한 일은 학원이었다. 그가 최근 출간한 책 ‘거침없이 정청래’를 읽으면 얼마나 잘나갔던 학원 원장이었는지 알 수 있다. 돈도 많이 벌었다. 그는 서울시 마포구에서 잘나가던 학원을 정리했다. 정치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2003년 학원을 정리하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마포을로 출마했다. 학창시절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생각했던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정치인으로는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경선 연설에서 모인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며 승리했다. 그의 연설에는 공약은 없었고 굴곡지게 살아온 자신의 어머니, 박 여사의 일생을 이야기했다.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그는 기적처럼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선하며 여의도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18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19대 총선에서 다시 당선되며 재선에 성공했다. 초선 의원 시절도 그랬고, 재선으로 당선된 이후도 그는 언제나 공격수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다. 나도 그렇게 안 하고 싶다. 묘한 사명감. 아무도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니까. 나도 똑같이 하면 나는 정치를 왜 하는가. 자문자답을 해봤을 때 그건 아니다. 제일 편한 게 착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에게 욕먹을 일도 없고 매 맞을 일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정치는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왜 좋기만 하겠나.”
정 의원은 요즘 ‘나는 정청래다’라는 이름을 내걸고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서다. 그가 팟캐스트를 시작한 계기는 우습지만 최근 출간한 책 ‘거침없이 정청래’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방송이 90만 다운로드를 넘으면서 새롭게 단장한 ‘나는 정청래다’를 진행하게 됐다. 그는 방송에서 동료 의원들을 초대해 인생사와 정치 현안을 다룰 예정이다.
국회의원 정청래. 비록 무명으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그는 이제 누가 뭐래도 정치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됐다. SNS에 올리는 그의 촌철살인의 글들은 국민에게 통쾌함과 웃음을 준다. 정청래의 정치가 그렇다. 그는 여전히 꿈꾸고 있다. 두 번째 교도소에 수감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통일’을 말이다.
“정치를 시작한 이유가 ‘통일’이고 마지막도 ‘통일’이다. 분단된 조국 통일에 내가 벽돌 하나라도 놓겠다는 것이 시작의 이유이고 지금 정치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치를 잘했지만, 남북관계가 파탄 났다면 난 실패한 정권이라고 본다. 통일해야 하는 이유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다. 통일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개성공단은 전쟁 방지 턱이다. 통일은 뭐냐? 개성공단이 10개 생기는 것이다. 통일이 뭐냐? 철도가 연결되는 것이다. 프로세스는 복잡하고 국제관계 문제가 있지만, 통일에 이바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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