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께 사죄드립니다."
지난 2013년 9월 10일 전두환(84)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57) 씨는 가족 대표로, 그리고 아버지를 대신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1997년 4월 대법원의 내란죄 확정 판결 이후 "전 재산은 29만 원 뿐"이라며 16년을 버티던 전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하지만 검찰과 국회의 전방위적 압박에 '전두환 일가'는 미납 추징금 1672억 원을 모두 자진납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습니다. 겉으로 보면 전두환 일가는 그동안 조용히 지냈습니다. 외동딸 전효선(53) 서경대학교 교수가 재직하던 서경대에 휴직원을 내며 대외 활동을 중단했고, 전두환-이순자 부부는 주로 자택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간간이 측근들을 만날 뿐이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그렇게 좋아하던 골프도 삼갔습니다. 지난 2년은 전 전 대통령에게 있어 권좌에서 물러난 지 26년 만에 겪는 최대 수모(?)의 기간이었습니다. 당시 측근은 "요즘 그가 가장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은 올초부터 바깥 공기를 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 24일 전 전 대통령은 부인 이순자(75) 여사의 일흔다섯 번째 생일을 맞아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인근 한정식집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더팩트>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생일 이틀 전(22일)엔 장남 재국(57) 씨와 장손 우석(27) 씨 그리고 지인들과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인근에서 미리 축배를 들었습니다.
지난 5월엔 회고록 출간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재산 환수 문제로 중단됐던 작업을 재개하고, 내년 출간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가 안팎에서 회고록엔 5·18 당시 비공개 일화나 12·12 사태 등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될지 관심을 끌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오는 11일 3년 만에 모교인 대구공업고등학교도 방문키로 했습니다. "재산은 29만 원 뿐"이라던 그는 매년 동문 체육대회와 골프대회에 참석해 동문들에게 금일봉과 막걸리 상품을 지급했고, 2010년엔 졸업 30주년을 맞은 후배들이 팔순잔치와 함께 운동장에서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집단으로 큰절을 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 뿐만 아닙니다. 자취를 감췄던 전효선 교수도 지난 3월 다시 강단에 섰습니다. 1년 8개월 만에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최근엔 '수업 중 학생들을 내쫓았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제 전두환 일가의 추징금 환수 시효는 5년 남았습니다. 지난 2013년 10월 11일 환수 시효 종료가 임박하자 국회는 같은 해 6월 27일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 개정안)'으로 시효를 2020년까지 연장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고, 올해 3월 기준으로 1389억 원을 추징해 절반을 겨우 넘겼습니다.
심리학에선 기억의 유효기간을 '일주일'이라고 말합니다. 뇌에 기억이 저장된 지 1~2주 안에 다시 한번 그 기억을 상기시키지 않으면 기억은 점점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벌써 전 전 대통령이 2년 전의 약속을 잊은 건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두 눈 크게 뜨고 늘 지켜보고 있습니다. 설마, 올해 모교에서도 '29만 원 뿐'인 지갑을 여실 건가요?
[더팩트 | 오경희 기자 ari@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