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인 대로변의 삶만 알고 뒷골목의 삶도 모르는 사람들이 요즘 말이 많다. 이걸 모르고 어떻게 정치를 하는지….”
정봉주(57·17대 국회의원) 전 국회의원의 입에선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야권 인사들에 대한 거침없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 전 의원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특유의 '입빠른'카리스마는 여전했고, 유쾌함은 더더욱 변함없었다.
지난 18일 인터넷 포털 실시간 검색에서 ‘정봉주’라는 이름이 올랐다. 이름이 오른 건 정 전 의원이 ‘머슬마니아 세계대회 선발전’ 남자 클래식 부문에 최고령으로 출전한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그는 “영혼이 담긴 몸을 알아봐 주질 않네?”라고 농을 치며 특유의 유쾌함을 발휘했다.
여의도 정가를 떠난 그지만,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전국구’라는 팟캐스트를 방송 중인 정 전 의원은 여의도 국회에 있을 때보다 더 분주한 삶을 살고 있다. <더팩트>는 지난 21일 오전 정 전 의원을 강남구 청담동 그의 아지트 ‘벙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정치권과 야당 그리고 현재의 삶에 대한 내용으로 진행됐다. 애초 인터뷰는 1시간 30분으로 예정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난 지금 내 정치를 즐기고 있다
오전 9시 30분 강남구 청담동 ‘벙커’. 정 전 의원을 만나기로 한 시간이다. 정 전 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전화도 했고,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이후 5분여가 지나자 정 전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9시 30분 약속이었는데 좀 늦었다. 어제 술을 마셨나 보다. 미권스도 함께였나.
아까 전화했었죠? 어제 팟캐스트 방송 100회를 기념해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미권스(팬카페, 정봉주와 미래 권력들) 사람들과 지인들이 함께했다. (웃음) 힘들어.
-지난 18일 머슬마니아 대회 출전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올해 57살이다. 당시 대회 참가자 중 최고령이었다. 물론 1라운드에서 떨어졌지만.
성격 자체가 몸이 부는 것을 못 참는다. 남들이 보기엔 대충대충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성격이 까다롭다. 집에 가면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깨끗하다. 운동도 그렇다. 몸이 망가지면 인생이 기우는 것 같더라. 몸이 망가지면 소모적인 삶을 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몸을 긴장시키기 위해 운동을 한다. 몸이 건강하면 정신도 똑같이 따라간다.
-머슬마니아 대회는 왜 나갔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만큼 큰 이슈가 됐다.
대회가 나갔더니 이슈가 되더라. 난 국민의 희망이었다고 생각한다. 운동만 했던 사람들이 내 이름을 거명했다. 사실 몸 관리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수’가 맞다. 진보는 철학과 사회에 관심이 많다. 보수는 가질수록 몸을 관리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대회에 나가면서 그동안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정치적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웃음)
정 전 의원은 휴대전화에서 자신의 옛 모습과 운동한 사진을 줬다. 이유는 예전보다 젊어졌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휴대전화 속 정 전 의원은 지금보다 한참은 나이들어보였고, 뭔가 '정봉주'가 아닌 것 같았다. 정 전 의원은 사진을 보여주며 한참을 자랑했다.
-지난 광복절 특별사면에서 제외됐다. 기대했을 것 같은데. 섭섭하지 않았나.
사면? 제외된 데는 신의 숨은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염원과 객관적 현실의 혼동이 아닐까 싶다. 사실 기대도 했다. 만약 사면됐다면 내년 총선에서 노원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강남으로 나오려 했다. 난 죽으러 가는 손해를 보는 선택을 하려 했다. 지금 정치를 보면 누구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한다. 죽으러 가면 하늘은 또 선택의 길을 줄 것이다.
-그래도 여의도로 돌아가길 바라는 팬들이 많다. 정치인 정봉주도 그렇지 않나.
난 지금 내 정치를 하고 있다. 현재 방송은 수백만이 듣고 있고, 팬클럽 회원도 20만이 넘는다. 피선거권이 박탈돼 앞으로 7년 정도를 더 고통스럽게 살 것으로 보는 분들도 있지만 난 그렇지 않다.
◆안철수·천정배 의원, 주류로만 살아서 비주류의 삶 잘 몰라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 밖에서 본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이 어떤가.
국회의원은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새정치연합을 보면 가져가려고만 하는 것 같다. 의원을 한 번만 해도 영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든 한번 더하겠다고 저러는 거 아니냐. 진짜 멋진 모습은 돌려주는 것이다.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결단도 필요하다. 국회의원은 직업이 아니다. 국민이 원하면 정치인 생명이라도 던져야 하는 데 지금 당을 보면 1~2명 있을까 말까다.
시기와 질투가 심하다. 국민에게 받은 사랑은 돌려주지 않고 가지려고만 하니 지금과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국민을 향해 연기라도 하지 않느냐.
-안철수 의원도 당의 문제를 지적하며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분은 기업인으로나 인간적으로는 훌륭한 분이다. 그래서 안철수 의원이 정치 안 했으면 좋겠다. 정치가 뭡니까? 사랑에 대한 감사다. 그리고 못하면 반성하고 있어야 한다. 이거 못하면 정치인이 아니다. 안 의원이 당선된 곳은 노회찬 전 의원 지역구다. 노 전 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한 곳에 안 의원이 출마해서 당선했다. 그간의 문제들을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졌다면 안 의원은 그곳에 나오지 않았어야 했다. 안 의원은 소리(Sorry)와 땡 큐(Thank you)를 모른다.
-지난 20일 안철수 의원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당이 대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명숙 전 총리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어떻게 보나.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한 판결이다. 안 의원이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야당 왜 하나? 새누리당으로 가라. 현 정권에 대한 문제보다 당을 까는 것이 더 많다.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에서도 안 의원 대처는 잘못됐다. 정치적으로 싸워야지 기술적으로 싸우니 그렇게 된 것이다. 안 의원의 행동을 보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휴브리스(오만함)가 있는 것 같다.
-정봉주의 정치와 안철수·천정배의 정치의 차이점은.
과거 쿠데타로 정권이 들어섰을 당시 우리는 항의했다. 안 의원은 과거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 할 때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정치는 시대정신이 있어야 한다. 부당하게 판결 난 것들에 대해서 지금 ‘불복’이나 ‘좋은 변호사 선임하면 돼’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시대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안 의원은 그걸 모르니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천정배 의원이 신당을 창당한다고 했다. 천 의원도 비주류의 삶, 뒷골목의 삶을 알지 못한다. 정치인은 시대정신과 뒷골목의 삶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나와 이들의 차이다.
◆문 대표, 날 것의 삶 보여야…청담에서 진보의 물꼬 트는 중
정 전 의원과의 대화에서 문 대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문 대표가 재신임 카드를 꺼낸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며, 정치인은 자기 팔을 자를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문 대표에게 아쉬운 부문도 가감 없이 지적했다.
-문재인 대표가 재신임을 철회했다. 문 대표의 재신임 카드를 놓고도 말들이 많았다. 어떻게 보았나.
잘했다고 본다. 원래가 집토끼를 잡고 나서 산토끼를 잡는 것이다. 문 대표 지지자들은 그런 모습을 좋아했을 것이다. 지난 4월 재보궐선거가 끝나고 문 대표가 계속 그 자리에 있으면 기스(흠집) 나니까 총선은 신경 쓰지 말고, 대권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또 누구는 총선에서 지면 국회가 발목 잡아서 힘들다고 한다. (웃음) 우린 항상 소수정당이었다.
-잘했다고 했는데 문 대표에게 부족한 면도 있지 않나.
정치도 집단이고 조직폭력배도 집단이다. 조폭 똘마니(막내)가 보스에게 대들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정치도 똑같다. 동물의 세계와 똑같다는 것을 문 대표도 알아야 한다. 권력은 선한 사람에게는 편안한 도구지만, 악한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장 아메리는 ‘잘못된 과거를 나태하고 값싸게 용서하는 것은 부도덕한 것이다’라고 했다.
문 대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문 대표는 엄한 짓 하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보여줘야 한다. 권력의 속성 보여줘야 한다. 당에서 당을 분란 초래하는 사람 과감하게 쳐낼 수 있는 그런 결기가 좀 있어야겠다. 따라서 재신임 카드는 적절하게 잘 썼다고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정치인이라면 인간적인 모습도 필요하다. 물론 인간적이지만. 살이 부딪히는 듯한 느낌, 날 것의 삶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 문 대표께서도 날 것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정치가 무엇이냐? 어려운 사람 손잡아 주는 것이다. 비가 내릴 때 함께 우산을 쓰는 게 아니라 비를 함께 비를 맞는 것이 정치다.
-청담동에 터를 잡았다. 그 이유와 앞으로의 정봉주의 계획은 무엇인가.
청담동은 20년 동안 내 문화공간이었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허세의 문화는 곧 끝난다. 보수는 허세라고 생각한다. 진보는 실용의 문화다. 실용의 시대가 열리는 데 내가 그 시대의 문을 연다. 지금 청담동에서 진보의 물꼬를 트고 있다.
실패하지 않은 정치인은 반쪽 정치인이다. 저는 감사하게도 지난 8월 15일 폭풍우가 끝났는지 알고 방주에서 나가려고 했는데 신께서는 아직 나가지 말라고 했다고 생각한다. 방주 안에서 체력도 기르고 여기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더 큰 세상에 놓였을 때 다시 세상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고민하면서 살겠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성찰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정치를 이렇게 깊게 바로 볼 수 있게 해준 쥐박이(이명박) 각하께 감사드립니다.
인터뷰를 마친 정 전 의원은 이날 오후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수감 중인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더팩트 ㅣ 청담동=이철영 기자 cuba20@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