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이하 국정감사)가 16일로 일주일째지만 현재까지 성적표는 초라하다. 벌써부터 곳곳에서 '부실 국감'이란 지적이 나온다. "역대 최악"이란 평가까지 들릴 정도다. 20대 총선을 앞둔 탓에 "의원들의 마음이 국감보다 '콩밭'에 가 있다"는 게 정가 안팎의 얘기다. <더팩트>는 '국감 현장'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OOO 의원님, 일찍 가시려고 질의 순서 바꾸셨나봐."
국감 나흘째인 지난 14일 한 정부기관의 공무원 A 씨는 안전행정위원회 국감장으로 향하면서 '의원 질의 순서' 종이를 훓어보더니 이같은 말을 내뱉는다. A 씨가 지목한 의원은 B 중진 의원으로, 알만한 사람은 아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형님급(?)'의 B 중진 의원은 자신의 질의가 끝나자 약 5분 만에 국감장 밖으로 나갔다.
지난 11일 외교통일위원회 국감장에서 C 중진 의원은 국감 시작 후 잠깐 얼굴을 비춘 뒤 상당 시간 자리를 비웠다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로 향하고, 국감 진행 중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의원들과 귀엣말을 나눈다.
자신의 질문 순서를 기다리다 깜빡 '조는(?)' 의원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조는지 안 조는지 구분이 힘들 정도로 쪽잠을 자는 고단수 의원도 있다. 심지어 모 상임위원장은 회의를 주재하기는커녕 의원들이 피감기관을 상대로 질의하는 틈을 타 자리에 앉아 몰래 잠을 청했다.
앞서 B 의원과 같은 '중도이탈자'도 속출했다. 국감 초반까진 자리를 지키다 자신의 질의가 끝나면 자취를 감춘다. 초반에 자리를 지키면 그나마 '우수(?)'한 편에 속한다. 상임위마다 대개 국감 시작 전 100% 출석률을 보기 어렵고, 처음부터 끝까지 재석하는 의원을 찾는 것 또한 '하늘의 별 따기'다.
보다 못한 야당의 D 의원은 국감장에서 "OOO 의원은 어디갔냐"고 이의를 제기했고, 여당의 E 의원은 "저와 질의 순서를 바꿨다"고 답했다. D 의원은 "의원들이 질의 순서에도 재석하지 않는 문제에 대한 상임위 규칙을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상임위원장은 "질의 순서를 바꾸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 룰 문제에 대해선 양당 간사끼리 논의를 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국감장에서 '사라진 의원'들은 어디로 갔을까.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실 보좌관은 "의원들 대개 국감보다 총선에 많은 비중을 둬 일부 의원들은 지역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동료 의원들과 질의 순서를 바꾸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야당의 한 초선 의원실 비서관은 "저희 의원실도 보좌관 등 상당수 인력이 지역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면서 "중진급 의원들은 아무래도 '급'이 되니까 장시간 회의를 끝까지 보지 않고 자기 질문만 하고 따로 '볼 일'을 보러 가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사회 정치실장은 17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20대 총선을 앞둬 정치적 스케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니 자리를 비우는 의원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 같고, 국감장에서 숙면을 취하는 의원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은 구태 중의 구태"라면서 "19대 마지막 국감인데도 여야가 내부적으로 총선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집안 싸움으로 국감은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사실 국감은 우리나라 밖에 없는 제도고, 상시적으로 국회가 정부기관을 감시할 수 있는 기능을 해야 한다. 이벤트성 국감으로 흘러가는 현 상황에서 이제는 정말로 국감 폐지에 준하는 강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팩트 | 국회=오경희 기자 ari@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