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자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옛말이 있죠. 뜻이야 잘 알겠지만 아들이 여러 면에서 아버지를 닮았을 경우를 두고 비유적으로 쓰는 표현입니다.
아버지의 잘못된 점을 닮지 않고 싶지만,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아버지와 비슷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피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인지 습관이 그렇고 좋아하는 것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좋은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잘못된 것을 닮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하기도 합니다.
이런 아버지들의 경우는 아들이 보고 배울까 두려워 조심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들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화가 나면 아이 앞에서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아이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랄 수밖에 없었죠. 어느 날 아버지는 우연히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에게서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슬플 수밖에 없겠죠?
요즘 국정감사가 한창입니다. 국정감사는 국회가 국정 전반에 관한 조사를 행하는 것으로 이것은 국회가 입법 기능 외에 정부를 감시 비판하는 기능을 가지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국회 기능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감에서는 연일 정부의 문제점들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고위공직자(4급 이상)와 자녀들의 병역면제와 기피 행태입니다. 고위공직자와 자녀의 병역 내용을 보면 앞에서 왜 ‘부전자전’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을 거론한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백군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고위직 공무원 10명 중 1명이 병역 면제자였습니다. 여성을 제외한 고위공직자는 2만 4980명입니다. 이 중 10.3%인 2568명은 병역을 면제받은 것입니다. 일반인 병역면제율이 6.4%인 것과 비교해 고위공직자 면제율이 약 4%포인트 높습니다.
병역면제 사유로는 질병으로 인한 면제가 1933명으로 75%나 차지했습니다. 우리가 알 만한 고위공직자로는 황교안 국무총리,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황찬현 감사원장, 추경호 국무조정실 실장, 강일원 헌법재판소 장관 등이 있습니다.
백 의원의 “몸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나라 공직자들은 유난히 아픈 사람이 많다”는 말에 많은 국민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고위공직자 병역 면제는 고스란히 자녀에게 대물림 되는 것 같습니다. 이들 자녀의 병역면제 사유도 참 다양합니다. 백 의원이 낸 자료 ‘공직자 직계비속의 면제 현황’을 보면 총 면제자 784명 중 병역면제 사유는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질병’이 732명(92.4%)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부전자전입니다.
고위공직자 자녀는 국적상실 30명(3.8%), 수형 8명(1%)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것과 달리 자녀는 다른 나라 사람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질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자녀 중 40명은 ‘불안정성 대관절’이라는 병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 차남의 병역면제 사유로 유명해진 병명이기도 합니다. ‘불안정성 대관절’은 십자인대 파열 등 무릎관절의 인대파열 또는 손상에 해당하는 질환으로 완치율이 80∼9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명축구선수 전북 현대의 이동국 선수 역시 치료 후 상무에서 군 복무를 정상적으로 했습니다.
얼마나 격하게 운동을 했기에 십자인대 파열과 같은 부상을 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질환의 완치율이 80~90%로 높고, 이동국 선수의 경우처럼 완쾌해 군 복무를 마친 경우도 있는데 고위공직자 자녀들은 완치 되지 않아 병역면제를 받았다니 이 또한 아이러니입니다.
질병도 질병이지만 더욱더 놀라운 것은 고위공직자 A 씨의 경우는 장남, 차남, 3남 모두 국적 상실 및 이탈로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혈세로 먹고 사는 고위공직자나 직위를 이용한 자녀의 병역면제는 지양해야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범을 보여도 모자랄 고위공직자가 자녀의 병역을 면제받게 해주는 일이 반복되니 ‘무전유죄 유전무죄’ 같은 말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고의 스승은 부모'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정 내의 가르침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자식 아끼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어떤 부모가 아들의 입대를 반기겠습니까. 부모 대부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몸 건강히 다녀와라. 너만 가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다 가는 곳이 군대 아니냐’라고 말하며 아들을 입대시킵니다.
이들이 군에 가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나라를 지키는 일입니다. 15만4800원(상병 기준)의 월급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고위공직자 여러분 좀 끔찍한 말이지만 예로부터 "인자(仁慈)한 어머니(부모)에게서 패륜아(悖倫兒)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괜히 나온 말이 아닐 것입니다.
국민의 세금을 녹(祿)으로 받는 고위공직자. 적어도 자녀에게 국가와 국민의 고마움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더팩트 ㅣ 이철영 기자 cuba20@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