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1번지 국회. 시기와 성향은 다르지만 298명의 의원이 입성했다. 큰 틀에서 소명은 같다.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삶과 고민은 천차만별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어떤 꿈을 가슴에 품었을까. <더팩트>는 이들의 '국회 입성기'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정미경(50·수원시을 재선·국회 국방위원회) 새누리당 의원은 본인을 수식하는 ‘여검사 출신’을 반기지 않는다. 다 같은 ‘검사’임에도 늘 ‘여검사’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 의원이 페미니스트(여성 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 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는 아니다.
“검사 때 별명이 검사였다. 여검사에서 여자를 떼야 한다. 여자검사가 아니라, 검사다. 직분에 충실하다면 남녀는 중요치 않다.”
정 의원이 검사가 된 것은 운명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딸에게 또는 사람들에게 “내 딸은 법대에 가서 판검사가 되겠지”라고 했다. 아버지의 말대로 그는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검사가 됐다. 정 의원은 검사라는 직분에 자부심도 컸다. 하지만 그는 검사 복을 벗었다.
2007년 6월 ‘여자 대통령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라는 책에서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을 실명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는 책에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검사들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 “장관에게서 사춘기 소녀가 쓴 듯한 연애편지를 받은 검사들의 느낌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을 달라고 외지는 백성들에게 ‘그럼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을 때의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검사를 그만둔 그가 정치와 인연을 맺은 것도 우연이자 운명이었다. 검사 시절 인연을 맺은 한 여성 때문이었다. 남편 몰래 사채를 쓴 이 여성은 정 의원으로 도움으로 채권 추심회사의 협박을 더는 당하지 않았다. 이 여성을 다시 만난 건 검사 복을 벗은 다음이다. 이 여성은 정 의원에게 국회의원을 하라고 권유하며, 당시 유력 정치인을 소개했다.
그렇게 공천 신청서를 냈고, 기적처럼 공천을 받았다. 운동화를 신고 지역구를 누볐다. 이 과정에서 그에겐 운이 따랐다. 예비후보 압축 전 그와 이름이 같았던 후보자가 딸을 데리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열심히 했고, 정 의원은 그 덕을 톡톡히 봤다.
“당시 나는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같은 이름의 예비후보가 선거운동을 참 많이 했더라. 명함을 들고 나가 홍보를 하는 데 만나는 사람마다 날 알 정도였다. 그분이 딸을 데리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참 열심히 해서 덕을 좀 봤다.”
정 의원은 그렇게 우연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여의도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다시 또 시련을 맞는다. 19대 총선 공천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천을 받지 못한 것에 화가 나 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하게 된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했기 때문에 당선될 줄 알았다. 당시 많이 놀랐고, 많이 깨달았다. 당 대 당 구조에서는 안 되는 구나를 느꼈다. 비록 낙선했지만, 약 24%의 지지율을 얻었다. 내게 24%의 지지율을 보내준 분들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결과를 보며 정미경 정치의 기본은 ‘주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난 바닥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정미경의 정치는 그렇게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당선되며 다시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무소속에 출마했을 당시 얻었던 24%의 힘이었다.
재보선 선거에 나선 그의 캐치프레이즈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구였다. 그는 ‘저에요, 정미경입니다’로 홍보했다. 주민들에게 친숙함을 주는 이 캐치프레이즈는 그를 다시 여의도에 입성할 수 있게 했고, 올해 4·29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의 ‘새줌마’를 탄생시키게 했다.
“평소 글자에 관심이 많다. ‘저에요’라는 캐치프레이즈는 18대 총선 당선, 무소속 출마, 재보선 당선 등을 거치면서 나온 사연이 있는 단어다. 주민들이 ‘저에요’ 하면 ‘정미경입니다’라고 화답한다.”
글자에 관심이 많았던 정 의원은 새누리당 홍보기획단장을 역임하며 당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정 의원의 진가는 지난 4·29 재보선이었다. 새누리당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새줌마’였다. 정 의원은 무대(무성 대장) 김무성 대표에게 앞치마와 두건을 착용하게 했다. 김 대표가 앞치마를 입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정 의원의 이 홍보 전략은 기막히게 들어맞았고, 새누리당은 3곳에서 승리했다.
“‘삼시세끼’를 좋아한다. 이 프로그램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차승원 씨를 ‘차줌마’라고 한데서 착안했다. 남편이 물고기를 잡아오지 않아도 차줌마는 음식을 차리더라. 이걸 보면서 여당은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나빠도 맛있는 밥상을 차려야 한다. 바로 이거다는 느낌이 왔다.”
정 의원은 최근 지역 주민들로부터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바로 ‘수원비행장’이다. 그가 얼마나 수원 비행장 문제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정부는 수원비행장 이전을 결정했다. 그는 이 사업을 자기 손으로 마무리 짓고 싶다고 한다.
“수원비행장 이전은 주민들의 숙원이다. 그런데 이전이 결정됐다. 너무나 기쁘다. 내 손으로 마무리를 짓고 싶다. 난 또 국방위원회에 가야 한다.”
정 의원은 야간 국방대학원을 다녔다. 이유는 그가 ‘여검사’가 아닌 ‘검사’로 불려야 하는 것과 같다. 여자라서 군 문제를 모르고 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또 수원비행장 이전을 위해서 이를 악물고 다녔다.
그는 자신의 책 ‘여자 대통령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에서 ‘야망을 큰 소리로 말해라’ 단락에서 미국 링컨의 연설을 언급했다. 미래의 정미경에게 보낸 응원 메시지 같다. 앞으로도 계속 정치를 해야 한다는 정 의원의 속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제게는 거역할 수 없는 야망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제가 그 야망을 성취하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있으며, 얼마나 진실하게 기도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저 역시 정치적 명예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저는 이 땅에 정의가 뿌리내리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더팩트 ㅣ 이철영 기자 cuba20@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