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空手來空手去)"고 한다. 그러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도 떠날 때는 입 안에 솜을 채울 뿐이다. 삼성가(家)의 장남 이맹희 씨가 암 투병 끝에 타계했다. 시신이 중국에서 운구돼 17일 서울대병원에 빈소가 차려졌다. CJ그룹장(葬)으로 치러진다는데, 그의 장남이자 삼성가의 장손 이재현 회장은 상주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발인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권력보다 돈인가. '권력유한(權力有限) 재화무한(財貨無限)'이란 말인가. 이병철 선대 회장이 생전에 권력의 문을 노크했다고 한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이런저런 시달림을 받던 이 회장이 언론권력인 동양방송과 중앙일보를 세운다. 그럼에도 권력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신민당 총재이던 유진오(兪鎭午) 박사를 찾아가 "나도 정치를 하고 싶다"고 청했다고 한다. 유 박사는 "재산(삼성)과 권력(정치) 중 하나만 택해라"고 했고, 곰곰 생각하던 이 회장은 정치에 대한 미련을 접는다.
이 순간이 어쩌면 오늘날의 삼성을 가능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 회장의 물러섬의 미학, 지족(知足)의 지혜이다. 반면 현대가(家) 정주영 선대 회장은 19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반값 아파트'를 내세우며 대권을 꿈꿨다. 돈과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쥐려 한 것이다. 그의 아들 7선 국회의원 정몽준도 대권의 꿈을 항상 키워왔다. 이명박 전 현대건설 사장이 대신(?) 대권의 꿈을 먼저 현실화했지만.
여하튼 정치권력에 거리를 둔 삼성은 우리나라를 이른바 삼성왕국, 삼성공화국으로 칭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삼성 브랜드의 단일집중화가 성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가는 형제자매간 재산을 나눴지만,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이건희-이재용 라인으로 정리됐다. 다른 가족은 '신세계' 'CJ'등 다른 브랜드를 쓴다. 현대는 현대자동차, 현대상선, 현대백화점의 주인이 각각 다르다. 집중과 확산의 차이이면서, '관리의 삼성'과 '진격의 현대' 차이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여하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제3공화국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정치는 몰라도 경제는 성공'이라는 찬사 배후에는 고 이병철과 고 정주영이 우뚝 서 있다. 박-이-정의 삼각 정경유착이 경제기관차의 엔진이었고, 수많은 선대 '공순이'와 '공돌이'는 그 에너지원으로 소모됐다.
삼각 정경유착의 2세인 박근혜는 현재 대통령이며, 이건희는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는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다. 차이가 있다면, 삼성과 현대는 3세 구도를 확립해 가고 있지만 박정희의 정치권력은 아마도 3세의 기회는 없을 듯하다. 역시 절대권력보다도 돈이 길게 가는가. 부자 삼대(三代) 못 간다는데, 그저 옛말인가.
재물에 대해 현자(賢者)들의 생각은 똑같다. 한마디로 헛되다는 것이다. 장자(莊子)는 재물을 지키려 자물쇠로 채우고 줄로 묶는 것은 결과적으로 도둑을 위한 '헛된 지혜'라고 갈파한다. 창고에 쌓아봐야 불이 나면 모두 타 없어질 것이다. 예수님도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다산 정약용의 재물론을 보자. 박석무 선생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발췌 소개하면 이렇다. "세상에 옷이나 음식, 재물 등은 부질없고 가치 없다. 옷이란 입으면 닳게 마련이고, 음식은 먹으면 썩고 만다. 재물 또한 자손에게 전해줘도 끝내는 탕진되고 만다. 다만 몰락한 친척이나 가난한 벗에게 나누어준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중국 고대 큰 부자들의 재물은 흔적도 없지만, 이를 나눠준 부자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아름답게 전해온다는 것이다. 이는 형태가 있는 것은 없어지기 쉽지만, 형태가 없는 것은 없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스로 재물을 써 버리는 것은 물질적인 사용이고, 재물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정신적인 사용이다. 물질로써 물질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닳아 없어질 수밖에 없지만, 형태가 없는 것으로써 정신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변하거나 없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물을 몰래 숨겨두고 오래 간직하는 방법도 제시한다. 바로 남에게 베푸는 것이다. 베풀어버리면 도둑에게 빼앗길 걱정이 없고, 불이 나서 타버릴 걱정이 없고, 소나 말로 운반해야 하는 걱정이 없다. 또 자신이 죽은 후 꽃다운 이름을 천년 뒤까지 남길 수 있다. 꽉 쥐면 쥘수록 더욱 미끄러운 것이 재물이니, 재물이야말로 미끌미끌한 메기와 미꾸라지와 같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이야기가 나와서인데, 그는 유명한 애구가(愛狗家)이다. 개를 견(犬)으로 쓰면 충견, 명견 등 '먹지 않는' 개이다. 구(狗)로 쓰면 황구, 백구, 구탕(狗湯)처럼 '먹는' 개이다. 다산의 유배된 형 정약전이 "짐승의 고기를 전혀 먹지 못한다"고 하자 근심 어린 답장을 보낸다. "육식을 기피하는 것은 생명을 연장하는 도(道)가 아니며, 섬에 산개(山狗)가 천마리, 백마리 수준이 아니다. 내가 거기 있다면 5일에 한 마리는 먹겠다"며 짐짓 형의 육식기피를 나무란다.
그러면서 개 잡는 기술을 전하는데, 중국의 원숭이 잡는 기술과 비슷하다. "먹이통을 만드는데, 둘레는 개의 입이 들어갈 만하게, 깊이는 개의 머리가 빠질 만하게 한다. 다음 먹이통 안 사방 가장자리에는 두루 쇠 낫을 낚시바늘처럼 굽은 것이 아니라 송곳처럼 곧게 꽂는다. 통의 바닥에는 뼈다귀를 묶어놓아도 되고, 밥이나 죽 모두 미끼로 쓸 수 있다. 낫은 박힌 부분을 위로 가게 하고, 날의 끝은 통의 아래에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개가 주둥이를 넣기는 수월해도 다시 꺼내기는 거북하다. 또 개가 미끼를 물면 주둥이가 불룩하게 커져서 사면으로 찔리기 때문에 공손히 엎드려 꼬리만 흔들 수밖에 없습니다."
원숭이 잡는 덫도 비슷한 이치다. 손(발)을 간신히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을 내고 안에는 고소한 깨를 넣어둔다. 그러면 손을 넣어 깨를 움켜쥐는데, 주먹을 쥔 상태로는 빠져 나오지 못한다. 미련한 원숭이는 절대 주먹을 펴지 않고 버둥거리다 덫을 놓은 사람에게 곱게(?) 붙잡히는 것이다. 흑산도의 개도 먹이를 뱉으면 그래도 머리를 빼낼 수 있겠지만, 입 속의 달콤한 먹이를 뱉어낼 '버림의 생존술'을 어찌 실천할 수 있겠는가. 사람도 못하는데 말이다.
다산은 먹는 방법도 전한다. "들깨 한 말을 부치니 볶아서 가루로 만드십시오. 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 삶는 법은 티끌이 묻지 않도록 달아매어 껍질을 벗기고 창자나 밥통은 씻어도 나머지는 절대 씻지 말고 곧장 가마솥 속에 넣어서 맑은 물로 삶습니다. 연후 꺼내놓고 식초, 장, 기름, 파로 양념을 하여 더러는 다시 볶기도 하고 더러는 다시 삶는데 이렇게 해야 훌륭한 맛이 나게 됩니다." 기실 이와 같은 보신탕 즐기기, 즉 향구지법(享狗之法)은 바로 실학파의 큰 나무인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의 비법으로 전한다.
개고기는 성질이 덥다. 양기를 돕고 허한 곳을 보하는데. 염천지절(炎天之節)에 먹는 것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지혜이다. 본디 개의 발목(狗足)을 먹으면 부인의 젖이 잘 나오고, 쓸개를 먹으면 눈이 밝고 못된 창병(瘡病)이 낫는다고 전해온다.
금기(禁忌)도 있다. 백구의 젖을 먹으면 애주가가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며, 개고기와 마늘은 상극이라 함께 먹으면 크게 해(害)가 된다. 아마도 화학적 작용 때문이리라. 또 구탕을 먹은 뒤 얼음을 먹으면 촌백충이 생긴다고도 했다.
하지만 개 견(犬)자가 든 복(伏)날이라고 꼭 구탕을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부터 복날에 팥죽을 먹으면 집안이 일년 내 평안하다고 했다. 민어에 호박을 넣고 끓여먹기도 하며, 미역국에 밀가루를 넣어 수제비로 만들어 먹었다. 중국에서는 '세시복랍(歲時伏臘) 팽양포고(烹羊炮羔)'라 하여 양과 염소고기를 먹었다.
말복(末伏)이 지났는데 웬 강아지 타령이냐 싶을 것이다. '삼복(三伏) 더위'라는 말이 있듯이 초복-중복-말복을 '중원(中元)의 복중(伏中)'으로 친다. 그러나 구탕(狗湯)을 즐기는 일부 애구가(愛狗家)들은 삼복이 아닌 오복(五伏)을 든다. 그저께는 바로 '광복'이었고, 멀리 9월에는 서울 '수복'이 기다린단다. 아마도 오복(五福)과 조응해 지은 조어(造語)일 것이다.
'광복' 70년인데, 여기저기 개소리만도 못한 '잡소리'가 여전하다. 이 칼럼에서 소개했지만, 서당개는 풍월뿐만 아니라 중국어 발음으로 공자왈(컹컹 왈왈), 맹자왈(멍멍 왈왈)하지 않나 말이다. 잡소리의 '잡(雜)'은 섞이다, 어수선하다는 뜻인데, 온갖 새들이 한 나무에 모인 형상이다. 이들이 서로 지저귀면 그게 잡소리다. 지저귀는 새도, 듣는 새도 어지러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종당에는 스스로 무엇이라고 지저귀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분명한 것은 덫에 걸린 개나 원숭이처럼 주먹을 움켜 쥐면 미망(迷妄)에 사로잡히고, 주먹을 풀고 손을 펴면 헛된 미망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오복(五伏)에 상기하는 오복(五福)의 지혜이다.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sseoul@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