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지의 폴리뷰] 의원님, 영어 좀 못하면 어때요

"내츄르…아 내이션 인 코리아…코리아…알규잉 알씨스? 그…알슈스 비커밍…비커밍 이슈! 아…우리 말로 하는 게 낫겠다. 나 우리 말로 할래."

지난달 31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국정원 해킹사태 해결을 위한 토론 및 백신프로그램 발표회'에서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비영리 연구팀 '시티즌랩' 팀원과 화상통화를 했습니다. 시티즌랩은 지난해 2월 이탈리아 업체 '해킹팀'을 해킹해 "(이탈리아 해킹팀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21개국에 스파이웨어를 판매한 흔적을 확인했다"고 위키리크스에 최초로 폭로한 곳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영어로 시티즌랩 연구원과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통역관이 있는데도 말이죠. 일단 호기롭게 시작은 했지만 곧 포기했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수줍은 목소리로 "그냥 우리 말로 할래"를 반복했습니다.

영어 해프닝은 이 대표뿐만이 아닙니다. 전날인 30일 미국 순방 중이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영어 때문에 당황했습니다. 뉴욕 농수산 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딸기 무늬의 물고기를 보며 "스트록? 아 스트로베리"라고 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방송에 나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무성 대표 수행단은 "영어를 한다는 것이 소통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면서 "통역을 통해 메시지를 모두 전달한다"고 해명했습니다.

스트록? 스트로베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31일 미국 뉴 플턴 수산물 도매시장을 견학했다./김무성 페이스북

김무성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의 '영어 실력'을 평가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당시 상황에서 영어 실력이 좀 부족해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원어민 수준의 회화는 관련 전공자나 통역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건 저 뿐인가요?

물론 글로벌 시대에 "어느 정도의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말도 일리 있습니다. 잘해서 나쁠 건 없죠. 하지만 '여름 방학' 시즌 강남, 종로의 영어학원에 '필수 스펙'을 채우기 위한 학생들이 물 밀듯 밀려듭니다. 요즘 취업 시장에선 고득점의 영어 점수에 완벽한 회화 실력까지 요구합니다.

일주일 종합반으로 토익 학원을 다니면 한 달 기준 약 30만 원입니다. 6개월만 다녀도 180만 원에 이릅니다. 6개월 동안 학원을 다니려면 하루에 6시간 씩 꼬박 두 달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야 합니다. 이뿐인가요. '영어는 조기교육'이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커서 공부하면 늦는다는 거죠. 6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야만 입원 가능한 강남권 모 영어유치원의 수강료는 한 달에 200만 원, 1년 2000만 원입니다. 사립대학 등록금의 두 배 수준입니다.

그야말로 '영어공화국'이 따로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청년 일자리 창출과 대학 구조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최근 국회에서도 '노동개혁'은 뜨거운 감자입니다. 그렇다면, 꿈 많은 청년들도 의원님들처럼 영어를 좀 못해도 취업할 수 있다고 믿고 싶네요.

▶오늘의 리뷰(review): 의원님들, 영어를 좀 못하면 어때요~.국민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입법 활동'만 잘하면 되죠. 그렇죠?

[더팩트 | 서민지 기자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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