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롯데 분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내가 먼저" CF와 같다?

롯데가(家) 치열한 권력 다툼 형님 먼저, 아우 먼저는 1970년대 롯데라면 광고에 카피로 쓰이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코미디언 구봉서와 배삼룡이 출연한 광고는 서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양보하다가, 그럼 내가 먼저하며 라면 그릇을 당겨가는 모습에 입맛만 다시는 장면이 배꼽을 잡게 했다. 지금 보면, 바로 이 내가 먼저가 롯데의 핵심 DNA가 아닌가도 싶다. 아버지 신격호도 93세까지 그릇을 놓지 않고, 형과 동생도 그릇 싸움이다. 사진은 신동주(왼쪽)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더팩트 DB

시대에 반항하며 혁명을 이끈 풍운아는 대체로 차남이었다. 러시아의 레닌, 베트남의 호치민, 쿠바의 카스트로가 그렇다. 과연 '차남'이라서 반항의 역동성을 가졌을까. 아니면 출생순서에 따른 성격형성론자들의 꿰맞추기일까.

'꿈의 해석' 저자이자 근대심리학의 선구로 꼽히는 프로이트의 제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출생 순서가 아이의 성격과 장래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 자신도 유대인 가정의 둘째로 태어났는데, 형의 '질투심'에 피해를 봤다고 여겼다. 물론 자신이 태어났을 때는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지만, 동생들이 태어나면서 이 '지극한 사랑'은 곧바로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그가 정립한 것이 '출생순서(Birth Order)론'이다. 첫째는 태어나면서 사랑을 받지만, 둘째가 태어나면서 '왕관'을 뺏긴다. 그 결과 독립심이 강해지며,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도 크다. 둘째는 첫째와 경쟁하면서 비교적 빨리 말하고 걷는다. 둘째가 대체로 야심만만한 것도 어릴 때부터 몸에 밴 경쟁심 때문이다. 막내는 응석받이로 자라기 십상이지만, 이상주의자나 혁명가가 될 자질 역시 가지고 있다는 것이 주 요지이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첫째는 조용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보수적이고, 안정지향적이라는 것이다. 한편 어린 시절부터 동생보다 많은 것을 누리다 보니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경향을 보인단다. 반면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운 둘째는 아주 역동적이다. 늘 형과 경쟁하고, 형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면서 야망과 성취욕과 반항심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첫째와 둘째의 경쟁과 갈등은 뿌리가 깊다. 성경의 창세기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온다. 카인은 아담과 이브의 첫째, 아벨은 둘째 아들이다. 농부인 형 카인과 목동인 아우 아벨을 처음엔 사이좋게 지낸다. 그런데 여호와 신이 카인이 제사 드린 '땅의 소출'보다 아벨의 '새끼 양'을 더 좋아했다. 이 편애(偏愛)는 카인에게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동생 아벨을 목 졸라(몽둥이로 쳐) 살해한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좀 중층적이다. 선민의식과 장자 선호, 원죄의식이 짜깁기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인 카인은 먼저 정착한 가나안 사람들의 농경 생활을, 둘째인 아벨은 나중에 이주해온 유대인들의 유목생활을 각각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 신은 곡식(농산물)이 아니라 양(축산물)의 제사를 기뻐한다면서 암암리에 유대인의 선민의식(選民意識)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애타는 부심(父心)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지만, 태종 이방원은 왕권의 기틀을 확립한 것처럼 신격호가 롯데를 세웠지만, 신동빈은 하나의 롯데, 하나의 보스 기틀을 확립하고자 하고 있다. 지금 신격호는 자신을 해임한 신동빈을 처단하려 하지만, 신동빈은 신흥세력을 동원해 이방원처럼 대항하는 형국이다./롯데그룹 제공

그런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장남과 차남간 갈등의 원관념처럼 자리 잡았다는 해석이다. 심리학자 아들러가 스스로 "어릴 때 형의 질투심으로 피해를 봤다"고 한 것도 어쩌면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 심취한 결과일 수도 있다.

'차남우위론'을 내세운 학자도 있다. 미국 MIT 대학의 프랭크 설러웨이(Frank Sulloway)는 1997년 '반항아로 태어나다(Born to Rebel)'라는 저서에서 "차남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6500명을 조사한 결과 "무한경쟁의 현대사회를 살아가기엔, 특히 기업을 경영하는 데는 차남이 적합하다"고 결론짓는다. 당시 위기에 처한 IBM을 부활시킨 루 거스너(Lou Gerstner)의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경영을 예로 들었다. 그는 "변화를 필요로 하는 기업은 차남을 경영자로 뽑으라"고까지 역설했다.

그럼에도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말은 그저 생긴 것이 아닐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보면 대체로 첫째가 왕위와 가업을 계승하는 '장자세습(長子世襲)'이 일반적이었다. 단지 안정과 평화만을 위해 그랬을까.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미국 아이비리그 신입생의 3분의 2가 장남이었고, USA투데이가 CEO 155명 설문 조사한 결과 59%가 맏이였다고 한다. 2007년 노르웨이의 과학자들이 군대 징병자 24만1000명을 조사한 결과 맏이의 평균 IQ가 103, 둘째는 101, 셋째는 100이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물론 머리가 좋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것은 능력보다는 부모에 대한 사랑이나 집안을 안정적으로 돌보는데 그렇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본다.

요즘 롯데그룹의 '형제의 난'이 연일 화제이다. 형 신동주와 동생 신동빈의 경쟁인데, 얼핏 보면 '출생순서론'의 전형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신동주는 안정적이고 조용하며 보수적으로 보이는 반면, 신동빈은 아버지에게도 반항하는 야심만만한 역동성이 느껴진다.

롯데 수난시대 장남 신동주와 차남 신동빈의 경쟁은 결국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로 치닫느냐, 적절히 나눠 먹기 분가(分家)하느냐 기로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있는 제2롯데월드./배정한 기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관계를 비유하기도 한다. 설정은 사뭇 다른데, 현재 롯데그룹 지배세력은 이런 비유가 싫지 않은 눈치이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지만, 태종 이방원은 왕권의 기틀을 확립한 것처럼 신격호가 롯데를 세웠지만, 신동빈이 '하나의 롯데, 하나의 보스' 기틀을 확립할 것이라는 기대이다.

당시 태조는 자신의 아들을 처단하려 철퇴를 준비하지만, 태종은 신하를 대신 보낸다. 화살을 쏘지만 미리 세워둔 기둥 뒤에 숨어 피한다. 결국 태조는 함흥차사만을 남긴 채 역사의 뒤 켠으로 사라지고, 태종의 시대가 열린다.

지금 신격호는 자신을 해임한 신동빈을 처단하려 하지만, 가능할까. 신동빈은 신흥세력을 동원해 이방원처럼 대항하는 형국이다. 신격호가 "내가 법이다"면서 해임서류를 흔들고, 방송을 통해 '선포'하지만, 신동빈은 "상법이 법이고, 주주가 주인이다"며 맞서고 있다. 결과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 결과에 달려 있다.

여하튼 장남 신동주와 차남 신동빈의 경쟁은 결국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로 치닫느냐, 적절히 나눠 먹기 분가(分家)하느냐 기로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는 1970년대 롯데라면 광고에 카피로 쓰이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당시 광고를 제작한 롯데공업 신춘호 대표는 광고와 정반대로 형 신격호 회장과 크게 다투고 결별했다. 신격호가 동생의 라면 브랜드에 '롯데'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은 것이다. 신춘호는 결국 '농심'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코미디언 구봉서와 배삼룡이 출연한 광고는 서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양보하다가, "그럼 내가 먼저"하며 라면 그릇을 당겨가는 모습에 입맛만 다시는 장면이 배꼽을 잡게 했다. 지금 보면, 바로 이 "내가 먼저"가 롯데의 핵심 DNA가 아닌가도 싶다. 아버지 신격호도 93세까지 그릇을 놓지 않고, 형과 동생도 그릇 싸움이다. 현대판 롯데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도 '아빠 먼저, 아들 먼저'도 아닌 "내가 먼저"만 남은 삼류 광고카피만 보여주는 느낌이다.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sseou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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