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수호 전 의원(판사)의 껄끄러운 관계가 대(代)를 이어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으로까지 진행되는 것일까. '사퇴' 기로에 선 유승민(57)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아버지 유수호(84) 전 자유민주당 의원의 판사 시절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며 사실상 유 원내대표를 정조준했다. 개정안 협상의 한 축이자 과거 한솥밥을 먹었던 유 원내대표가 청와대 측 의중을 십분 반영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분노였다는 평가가 국회 안팎에서 나온다. 당장 친박계는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했고, 그는 직을 '자의반 타의반'내려 놓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유 원내대표는 2일 현재 거취에 대한 말을 아끼고 있는 상태다.
42년 전, 유 원내대표의 아버지는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법복을 벗었다. 유수호 전 의원은 부산지검 부장판사 재임 시절 유신정권에 반한 판결을 한 뒤 1973년 3월 27일 판사 재임명에서 제외됐고, 이후 정계에 입문했다. 대(代)를 이은 '악연(?)'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유수호 전 의원(판사)은 어쩌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눈 밖에 난 걸까. 당시 그의 별칭은 '말 안 듣는 판사'였다. 그 당시 두 가지 사건을 짚어봤다.
◆ '개표조작 사건' 부정선거 혐의 징역 선고
"피고들은 공명선거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고 유권자의 주권을 변조 조작해 '민주질서'를 파괴한 행위는 처벌받아야 한다."
유 전 판사가 선거법을 어긴 공화당원을 구속했을 때 한 말이다. 1971년 8월 17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부산지법 제 1호 법정에서 열린 '2.7 대통령선거 울산개표부정사건 선고공판'에서 유 전 의원은 부장판사로서 재판장에 나섰다.
유 전 판사는 윤동수 전 울산시장에게 '대통령선거법위반죄'를 적용해 병보석을 취소하고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외 같은 혐의로 강원출 전 울산시 시정계장 징역 1년 6개월, 허원 전 울산시 보건소위생계장 징역 1년 6개월에 3년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하는 등 엄벌했다.
공무원들은 그해 치러진 '4.27 제7 대통령 선거' 때 울산시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76% 득표한 것을 81.2%로 득표한 것처럼 득표율을 허위 조작 발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53.2%)은 634만여 표를 얻어 신민당 김대중 후보(45.2%)를 누르고 95만 표 차이로 승리했다.
◆ 군사 정권 반대 학생 시위자 석방
같은 해 10월 27일 유 전 판사는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자를 석방했다.
그는 데모 주동을 한 혐의로 구속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김정길(당시 26·법정대 정외과 4년)을 구속적부심(영장실질심사)에서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석방 결정을 내렸다.
김정길은 10월 21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었다. 4월 18일 박 전 대통령 학원문제특별명령의철회를 요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만들고, 부산대 총학생회 확대간부회의를 소집해 특별명령철회 데모를 선동했다는 이유에서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말 '유신 헌법'을 제정하고 이듬해 3월 말 새 헌법에 따라 모든 법관을 새로 임명했다. 이른바 '사법파동'이다. '재임명'이란 이름으로 정권에서 볼 때 껄끄러운 법관들을 걸러 냈다. 이때 일반 판사로는 356명이 재임명됐고, 41명은 재임명을 받지 못했다. 이 가운데 유 전 판사도 있었다.
☞유수호 인물 소사전(1931.12.16~) 경북고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후 대구지방·고등법원,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했다. 1988년 대구 중구에 출마해 당선된 뒤 제13대(민주정의당), 14대(민주자유당) 의원을 기록했다. 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아버지다.
[더팩트 | 서민지 기자 mj79@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