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중부지방에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졌지만 40년 만의 가뭄을 해갈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지역에선 기우제를 지내고 급·관수 시설을 동원하며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하고 있지만 비를 기다리는 마음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어 보인다. 기술력이 발달해도 비를 내리는 일은 아직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인지 우리의 선조들은 가뭄이 들면 '나랏님의 부덕'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또한 북한이 동해상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10대 병사가 200킬로미터를 걸어 귀순했지만 이 소식은 국민의 눈과 귀를 잡아끌지 못했다. 그만큼 메르스 진행이 이미 속수무책의 상황에 들어서 있어 사람들은 스스로의 안전 이외에 다른 이슈들에 대해 관심을 쏟을 겨를이 없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잦아들어 종착점에 도달하게 되었을때 국민들은 이 혼란과 혼돈을 어떻게 인식하고 평가하게 될까.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또 어떤 과제가 주어지게 될까.
첫째는 국가 리더십과 정부에 대한 신뢰 훼손의 문제다. 지난 15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과도한 불안심리 확산을 차단하면서 정상적 경제활동을 조속히 복원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에 대해 '국민이 죽어가는데 돈만 중요하다는 이야기냐'며 분노를 폭발시켰다.
또한 지난 14일 박 대통령이 메르스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진 상황을 점검하고 시장 상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한 동대문 밀리오레 상가에서 원피스와 헤어핀을 사고 상인들로부터 행운의 네잎클로버 브로치를 선물받아 '희망'을 보았다고 발언한 기사에는 '당신은 희망을 보았나 국민은 절망을 보았다'라며 '못말리는 대통령의 소녀감성'을 야유하는 댓글이 수천개가 달리기도 했다.
대통령이 국가재난에 준하는 위기상황에서 국민과 '진심'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보여주기 행보', '이미지 정치'만을 하다보니 결국 국민들의 입에서 '비난과 욕설'만 봇물터지듯 흘러넘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국민들이 가장 어이없어 하는 부분은 서민의 생활, 보통사람들의 걱정에 대해 대통령의 이해도가 거의 백치 수준이란 점을 이번 메르스 대처 과정 곳곳에서 확인시켜줬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이 너무 코너에 몰리는 상황을 우려해 국회가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 인준을 합의하면서 국회법 처리에 대한 출구를 열어주었지만 대통령이 또 어떤 선택을 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일단 국회에서 '통촉하여주시옵서서'하며 던진 사안에 대해 박 대통령은 자신의 권위가 바로 섰고 이 상황에선 손해날 것 없다는 판단을 가졌을 것이기에 못이기는 척 국회법을 수용할 확률이 더 커 보인다. 하지만 '거부권'을 든다고 해도 국민의 생활에 직결되는 어려움이 당장 닥칠 것 같지는 않고 또 문제가 발생하면 법이란 재개정을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거부권 행사를 통해 박대통령의 무능을 역사에 기록하는 것도 후세들을 위해 나쁜 선택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둘째는 '대마불사' 신화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와 관련한 것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의 진앙지는 '삼성서울병원'이었다. 권위와 신뢰에 있어 그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는 삼성서울병원이 전염병 창궐의 재앙지가 된 것이다. 글로벌 수준의 대응능력과 윤리의식, 시설 수준을 기대했지만 위기 앞에 드러난 민낯은 너무나 초라하고 부끄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었다.
때문에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인식의 변화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장밋빛 경제공약과 '타운돌이'들이 국민을 들쳐엎었다 내팽개쳐버렸던 것처럼 경제 환상과 신기루의 실체가 결국은 공허함과 거품이었음을 확인했던 흐름과 같은 경향성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최대 최고 시설의 병원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물론 의료, 국민생명을 다루는 영역이기 때문에 집적과 집중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란 생각이 쉽게 변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전문분야, 전문직 종사자들이 가져야할 직업윤리에 대한 것이다. 삼성서울병원이 의료와 생명이라는 직업윤리에 좀 더 철저했다면 초기 대응이 그렇게 엉망이진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감추고 뭉개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17일 오송국립보건연구원에서 대통령과 삼성서울병원장이 만났다고 한다. 배석자 없이 둘이 마주한 자리는 박대통령에 대해 90각도의 절을 한 삼성서울병원장 사진 1컷과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앉아있는 삼성서울병원장을 박대통령이 측은하게 바라보는 사진 1컷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이 두 컷의 사진에 대해 네티즌 반응은 냉소와 비난 일색이다. 국민 20여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격리자가 만명을 넘어선 메르스 사태의 책임자 두 사람이 만난 것이 아니라 '허가권 쥔 정부에 고개숙인 재벌' 이 컨셉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분명 '배석자 없이 두 사람만 심플하게 마주 설 것', '인사의 각도는 90도일 것' 등등의 가이드라인이 있었을 것인데 정부는 이런 이벤트 디테일하게 신경쓸 시간에 환자 한명이라도 더 치료하라고 병원을 독려해야 할 것이고, 삼성서울병원은 전문직으로서의 윤리의식은 무엇이고 또 환자는 신분 여하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내몸과 같고 최선을 다해 진료할 것이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다시한번 되새기면서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어떻게 변화시켜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메르스로 인해 희생된 사망자들에 대한 도리이며 향후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더 필요한 움직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은영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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