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현장 ⑤] 감정노동자, 욕 먹어도 '스마일'

감정노동자, 겉은 스마일…속은 울상 최근 황주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감정노동 종사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감정노동 종사자에게 폭언과 성적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를 할 경우 징역 6개월 이하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마포구=서민지 기자

법(률)을 제정하는 기관은 국회다. 때문에 우리는 국회를 입법기관, 국회의원을 '로메이커(Law Maker·입법권자)'라 부른다. 그러나 법과 현실의 체감거리는 멀기만 하다. 법안을 발의했으나 낮잠을 자는가 하면 있으나마나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더팩트>는 법안 취지를 조명하고, 시행 현장을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을 알고 있는가. 겉으로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운다. 이른바 '진상 고객'의 행패로 말 못할 고통을 받으면서도 미소를 짓는다. 바로 '감정노동자'다. 이들은 우리나라에만 600만 명에 달한다.

최근 황주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들의 '스마일 마스크'를 벗겨줄 '감정노동 종사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감정노동 종사자에게 폭언과 성적수치심을 느끼도록 한 행위 등을 금지하는 게 골자다. 이를 어길 시 징역 6개월 이하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지난 5일 <더팩트> 취재진은 메스르(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여느 때보다 바쁜 '120 다산 콜센터' 직원들을 만났다. 복지 수준이 좋은 편이지만, 이들 역시 '감정노동자'의 고통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이들은 과연 법안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 '진상' 고객에도 감정 '절제', 스트레스 '심각'

법안 생기면, 진상 고객 줄어들 것 지난 5일 더팩트는 메르스 (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여느 때보다 바쁜 120 다산콜센터를 방문해 감동노동자 보호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동대문구=서민지 기자

메르스 사태로 전국이 난리다. 이날 콜센터 직원들은 메르스 상담 전화로 쉴틈이 없었다. 이들은 메르스 공포로 불안한 고객들의 분노와 항의를 받으면서도 담담하게 고객을 응대했다.

상담원 여 모(30대·여) 씨는 "메르스에 걸리지 않았는지 걱정하는 고객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메뉴얼대로 할 뿐인데 고객으로선 전화 연결이 어렵고 답변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꼈는지 우리를 다그친다. 우리도 전문적인 의학 담당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몰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일하는 분들도 가족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같은 사람이다"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여 씨의 말대로 '감정노동'은 실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 때문에 스트레스 강도가 상당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정노동'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각한 질병을 야기하기 때문에 중요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120 다산콜센터 측은 "우리는 서울시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그런데도 '택시를 잡아달라고 떼를 쓰면서 집에갈 때까지 절대 전화를 끊지 마라'고 하는 등 가끔 '진상'을 부리는 고객들이 있다"면서 "우리가 이 정도면 사기업, 특히 노조가 없는 경우엔 고소 절차를 밟기 쉽지 않을텐데 법안이 생기면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콜센터 뿐만 아니다. 최근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른바 '라면 상무' 사건과 '땅콩회항', '백화점 모녀사건', 커피전문점·식당 직원이 받는 '감정노동' 또한 같은 맥락이다.

◆ '감정노동 종사자 보호법', 기업·국가적 차원 관리

사업장 내 감정노동 보호센터 설치 감정노동종사자란 고객 응대 등 업무과정에서 특정한 감정 표현이 요구되는 직의 근로자다. 대표적인 직업군으로는 승무원, 텔레마케터, 마트 캐셔, 음식점 직원 등이 있다./마포구=서민지 기자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핵심 가운데 하나도 '감정노동으로 발생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감정노동종사자를 위한 복지시설 등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8조)이다.

황 의원은 "기업 입장에서도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일들을 법에 명시해 보다 많은 기업들이 사내 종사자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했다"면서 "뿐만 아니라 '감정노동 종사자 보호법'이 통과되면 실체적인 방안으로 고용노동부장관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감정노동자 보호센터도 설치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비용 부담으로 기업들이 복지시설 설치를 꺼릴 것'이란 우려에 대해선 "벌써 일부 기업들은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업무특성을 고려한 복지혜택 등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지금은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일들을 법에 명시해 보다 많은 기업들이 사내 종사자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길 바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선책, 전문적인 교육을 주기적으로 일각에선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통과되면 서비스 직종의 생명인 CS 마인드(customer service·고객 서비스)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감정노동 종사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갈무리

일각에선 서비스 직종의 생명인 'CS 마인드(customer service·고객 서비스)'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서비스업 종사자 A씨는 "아무래도 적극적 대응보다는 사무적으로 고객들을 대하게 될 것 같다"면서 "다만 전문적인 교육을 주기적으로 받는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서비스마인드 교육 기관과 'CS 서비스 마인드', 'CS 리더스', 'QA 품질 자격시험' 등 서비스마인드 함양에 관한 전문 자격증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비를 들여서 스스로 찾아 배워야하는 시스템이다. 기업에선 비용 및 시간 때문에 전문적인 교육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황 의원은 "오는 23일 '감정노동 종사자 보호법'과 관련한 각계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 적극 수렴해 보다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입법 공청회가 열릴 예정"이라면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더팩트 | 서민지 기자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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