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벌금제 개혁 법안 통과 촉구'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은행, '장발장 은행'은 왜 국회로 왔을까.
4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장발장 은행(은행장 홍세화)' 설립 100일을 맞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염수정 가톨릭 서울대교구 추기경이 일일 은행장으로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장발장 은행'은 생계형 범죄자들에게 무담보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 지난 2월 인권단체, 교수, 변호사, 국회의원 등이 경미한 범죄로 벌금형을 선고 받고도 낼 돈이 없어서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을 위해 은행 문을 열었다. 벌금을 낼 돈조차 없어 교도소행을 택하는 21세기의 '장발장'들은 매년 4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마침 출범 100일을 맞아 관련 법안의 통과에도 힘을 보탰다. 국회로 모여 돈이 자유를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한 사회가 되도록 '벌금제 개혁 법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염 추기경은 이날 장발장 은행의 취지에 공감하고 관련 법안의 입법을 바랐다. 가톨릭 추기경이 개혁 입법을 위해 직접 국회를 방문하고 입법을 촉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제가 은행장이 되보긴 처음이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장발장은행의 설립 취지를 듣고 감사했다. 경제적인 사정으로 교도소에 갇히게 된 사람들이 매년 4만 명이 넘는다. 장발장은행은 100만 원이 없어서 벌금을 못내는 이들이 찾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은행"이라면서 "국민 행복을 위해 애쓰는 국회의원 여러분 각자 마음 속에 있는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쏟아 주시기를 기원한다. 장발장은행이 성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대출심사원으로 참여한 김희수 변호사는 "간절히 호소한다. 죄를 지은 사람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점 당연히 인정한다. 하지만 두 가지만 부탁드린다"면서 "벌금형을 받은 사람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도록, 아니면 벌금을 분납해서 낼 수 있도록 입법 시켜 달라"고 강조했다.
역설적으로 '장발장 은행'의 폐업을 바라는 이들도 있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우리 국회가 국민을 대변하는 것을 자각하고 우리 의원들이 장발장 은행의 취지를 국가의 사명으로 옮기겠다"면서 "더불어 홍세화 은행장님의 빠른 해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앞서 김 변호사가 강조한 벌금형의 집행유예를 가능토록 하는 벌금제 개혁 법안은 이 행사를 준비한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해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형법 제 62조 제1항 본문에 따르면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받은 사람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지만 벌금형을 받았다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벌금형을 받은 사람도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벌금을 내지 못해 강제노역을 하는 분들을 변호사 할 때 여러 번 만났다. 벌금형은 형법 상 가벼운 벌인데 벌금을 낼 돈이 없어 차라리 징역형 집행유예를 시켜달라고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라고 밝혔다.
문 대표는 "이런 현실을 보면 '법 앞에 평등'이란 말이 무색하다. 같은 형벌이라해도 각 개인에게 주는 형벌의 무게가 다르다. 돈 많은 이들에겐 가벼운 형벌일지 몰라도 벌금형 벌금을 납부하지 못해 교도소에서 강제노역을 받고 있는 것은 징역형이나 다를 바 없다"면서 "우리 새정치민주연합은 함께 노력해서 이런 법안들이 반드시 처리되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 장발장이 없는 그런 세상. 모든 사람이 실질적으로 법 앞에 평등할 수 있는 세상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국회로 간 장발장' 행사에는 염 추기경을 비롯해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장발장은행 운영위원 18명, 레미제라블위원(대출심사위원) 7명, 정의화 국회의장, 여·야 국회의원 50여명, 학생 및 일반 시민 등 모두 300여명이 모였다.
[더팩트 | 국회=서민지 기자 mj79@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