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을 제정하는 기관은 국회다. 때문에 우리는 국회를 입법기관, 국회의원을 '로메이커(Law Maker·입법권자)'라 부른다. 그러나 법과 현실의 체감거리는 멀기만 하다. 법안을 발의했으나 낮잠을 자는가 하면 있으나마나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더팩트>는 법안 취지를 조명하고, 시행 현장을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털 안 빠지는 순한 닥스훈트예요."
지난 22일 A 강아지 대여업체에 전화해 상담을 요청했다. A 업체 대표는 "빌리시려는 거에요?"라며 경계하는 목소리로 '정말 빌릴 것인지'를 확인했다. 어떤 사람이 빌리는지 관심없다. 그저 고객이라는 것이 확인되자 친절한 목소리로 상담을 이어갔다.
그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어떤 강아지 종을 원하느냐고 말했다. "1박2일 동안 강아지를 빌리고 싶으며, 4살짜리 아이가 있는 엄마"라고 소개했더니 '대여용 강아지 제리'로 불리는 닥스훈트를 추천했다. 그는 "성격이 순하기 때문에 4살짜리 어린 아이와 함께 있어도 걱정 없다"면서 "털도 빠지지 않고 짖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고객 맞춤형 강아지라는 소리다.
'동물 대여' 문제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 왔다. 동물 애호가들은 '생명 경시'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키웠지만 일부 업체에선 버젓이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고자 지난 20일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은 '동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 돈만 있으면 손쉽게 대여…동물협회 "무분별 영업 안돼"
해당 업체에서 '제리'를 두고 가격 상담에 들어갔다. 1박 2일에 6만 원, 2박 3일에는 7만 원이며 연장할 경우 하루에 2만 원이 추가된다고 했다. 예약이 항상 있기 때문에 입금을 완료해야 강아지를 빌릴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홈페이지보다 가격이 오른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하자 "목욕과 미용 비용이 들기 때문에 올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렌터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A 업체는 지난해부터 법으로 금지된 '동물 택배' 논란을 의식한 듯했다. 구태여 묻지 않아도 "우리는 오토바이가 아니라 네 발 달린 자동차다"라고 거듭 강조하며 2만 5000원을 내고 승용차 퀵 서비스를 받거나 4호선 B 역까지 직접 오는 방법 두 가지를 소개했다. 여기서 승용차 서비스는 일명 '다마스 퀵 서비스'를 말한다.
또한 한동안 물의를 빚었던 건강검진 여부에 대해서도 "그런 일 없다"고 딱 잘랐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 보니 강아지들에게 병이 있는 것 같던데, 데리고 있다 아픈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거듭 말하자 "예방주사도 맞혔고 10여 년 운영하는 동안 아파서 돌아온 강아지는 한 마리도 없다"고 해명했다.
한국동물사랑실천협회 순선원(36) 간사는 "설사 학대를 받거나 버려진다 하더라도 특별한 조치 없이 '돈으로 물어라'라고만 하는 거 아니냐. 문제는 간단한 심사 조차 하지 않고 돈만 받으면 '아무한테나' 보내는 것"이라면서 "성격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강아지는 환경에 많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면 분명 혼란을 겪게된다. 이것이 결국엔 성격적 문제나 질병으로 인한 이상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 현행법상 법적 규제 근거 없어…개정안, '동물 대여' 금지
오늘도 반려동물들은 '렌탈용' '강력 추천'과 같은 번쩍이는 단어들로 상업화 되고 있다. 다수가 '대여업'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는 있지만 현행법상 동물은 사적 재산으로 분류돼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댈 뿐 법적 제재가 불가능하다.
순 간사는 "문 의원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되면 분명 실효성이 있다"면서 "유기견 같은 경우 과태료를 물리면 증거가 없으므로 곤란하지만, '렌터독'은 계약서가 오가기 때문에 법안이 있고 없고 차이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은 동물을 대여하는 영업을 할 시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다만 시각 장애인 등을 위한 보조견의 대여는 예외로 뒀다.
지난 2007년 미국 LA에 플렉스페츠(FlexPetz)라는 '렌터독' 업체가 미국 내 10개 지점을 내고 영국까지 진출하며 성행했다. 하지만 동물을 물건과 똑같이 취급한다는 논란이 일면서 미국과 영국 정부가 2008년 불법으로 규정해 현재 모든 업체가 문을 닫았다.
순 간사는 '반려견을 데려오기 전 미리 키워보고 시행착오를 거쳐 유기견이 줄어든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물론 맞는 말이지만 간단한 심사조차 하지 않고 돈만 주면 아무한테나 보내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대여업과 더불어 '번식장' 규제와 관련한 법안도 생겼으면 한다"면서 "우리나라 '개'에 대한 문제의 대부분은 '번식장'에서 온다고 보면 된다. 요즘은 너도나도 이른바 '펫테크'를 한다. 등록만 하면 무분별하게 개를 사고 파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비롯되는 문제가 대단히 많다. 번식장에 대한 규제가 생긴다면 유기견도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보호법'을 발의한 문 의원은 27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동물대여업은 인간과 동등한 생명을 지닌 동물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행위다"라면서 "대여기간동안 동물이 겪는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와 동물대여업이 활성화될 경우 퍼져나갈 생명경시 풍조를 고려할 때 동물대여업은 반드시 금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문 의원은 "최근 논란이 된 고양이 학대 사건에 대한 대책, 유기견 방지대책 등을 고심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정책 주무부처와 관련 연구자, 동물보호단체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더팩트 | 서민지 기자 mj79@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