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에 경력 쌓아도 정규직 전환은 꿈같은 얘기'
올해 32살의 장민수(가명) 씨는 벌써 세 번째 '국회 인턴 약정체결요청서'를 썼다. 모 국회의원실에서 3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해외 유명 대학 석사까지 마쳤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신분은 '인턴'이다.
대학 시절 꿈꿨던 국회 인턴은 '겉'만 화려했다. 실제 마주한 현실은 매우 열악했다. 적은 급여와 밤샘을 밥 먹듯할 정도로 힘든 업무에 시달렸다. 문제는 이 같은 생활이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어쩌면 내년에도 그는 인턴일지 모른다.
장 씨 뿐만 아니다. 정치(전문가 또는 정치인 등)를 꿈꾸며 국회에 발을 들였지만, 이들 앞에 놓인 것은 희망보다 '절망'이다. <더팩트>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국회 인턴 실태'를 들여다봤다.
◆ 국회 인턴 약 550명, '쪼개기 계약'?
국회엔 수많은 '장그래'가 존재한다. 지난달 30일 국회사무처에 문의한 결과 2015년 4월 현재 국회 인턴은 약 550여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말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미생' 속 장그래가 그랬듯 비정규직의 터널 속을 헤맨다.
올해 국회사무처가 공고한 '국회인턴제 시행안내(문)'을 보면 의원실별로 2명(동일 기간 중에 2명을 초과해 채용할 수 없음)을 채용할 수 있다. 채용기간은 모두 22개월 범위 이내며, 1인당 근무기간은 의원실별 총 채용기간의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문제는 채용 기한이다. 상당수 의원실에서 '11개월' 단위로 '쪼개기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계약은 11개월로 했지만 숙련된 인턴을 내보내지 않고 의원실 자비로 한 달 월급을 주면서 다시 11개월짜리 인턴 계약을 하기도 한다.
근로기준법상 '인턴'은 기간제 근로자에 해당돼 1년을 초과해 근무하지 못한다. 만약 사용자가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무기 계약직(계약직과 정규직의 중간 개념)을 체결한 것으로 본다.
임금 수준도 낮다. 2년 이상 인턴 계약을 반복하며 업무를 익혀도 매해 월 120만 원과 시간 외 근로수당은 월 13만7760원을 받는다. 2015년 기준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 당 5580원으로, 법정 1일 근로시간인 8시간 일한다고 가정할 경우 국회 인턴이 받아야 할 월급은 133만9200원(240시간(30일)×5580원)이다.
A 의원실 모 보좌관은 이날 <더팩트>와 통화에서 "우리 의원실만 해도 2년 이상 인턴으로 일하는 친구가 있다. 3년? 4년? 5년 이상 인턴으로만 일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면서 "이들 중엔 서울대 대학원은 기본이고 옥스포드 대학 석사를 마친 친구들도 있다.그런데도 언제 정규직(비서관·보좌관)이 될지 알 수 없다. 이들은 인턴이 아니라 직원이나 마찬가지인데도 제대로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 퇴직금도 없어…'인턴 보호법'은 걸음마
앞서 밝혔듯, 11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경우 계속 근로 기간이 1년이 되지 않아 '퇴직금'도 받을 수 없다.
2년째 국회에서 인턴 근무를 하고 있는 28살 A씨는 "계약기간(11개월)이 끝나가면 인턴 계약서를 쓰고 의원실에서 1년 더 일하자고 한다"면서 "우리는 인턴을 하면서라도 국회에서 살아남아야 정식으로 채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2년이 지나도, 3년이 지나도 또다시 인턴 계약서를 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을이니까"라고 푸념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국회 인턴'과 관련해 "인턴 고용과 사용은 의원실 소관이기 때문에 우리가 답할 사항이 아니며, 퇴직금의 경우 1년 이상 근속하는 경우 30일 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주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원실 쪽에선 현실적인 부분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한다. B 의원실 관계자는 "'인턴'제도가 근로보다 교육과 실습 등의 의미를 갖고, 의원 임기가 4년이기에 인턴을 상시 근로자로 전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입법 기관인 국회 뿐만 아니다. '인턴'제도는 현장에 맞는 인재를 육성·발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최근 본래의 취지를 저버리고 취업준비생들의 노동력을 값싸게 '편법 활용'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인턴 관련 법 제정 움직임이 이제야 걸음마 단계다. 송호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해 9월 '인턴의 보호 등에 관한 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아직 계류 중이다.
송 의원을 포함해 10인 의원은 법안 발의 이유로 "최근 취업난으로 인턴 교육을 받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갖는 경우가 드물어 노동관계 법률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인턴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더팩트 ㅣ 오경희 기자 ari@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