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2인자는 없다"
북한 권력 서열이 시도 때도 없이 뒤바뀌고 있다. 올초까지 북한 2인자였던 최룡해 당비서는 최근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강등됐다. 다시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2인자로 올라섰다는 게 대북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최 비서와 황 총정치국장 간의 서열 등락은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를 위해 특정 인사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핵심 권력들 간 견제와 균형 구도를 형성해 '제2의 장성택'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다.
◆ 황병서↔최룡해, 서열 2위 싸움
황병서가 메인 무대에 등장한 것은 지난해 5월부터다. 그는 당시 권력 2인자이자 군내 서열 1인자인 군 총정치국장을 맡고 있던 최룡해를 밀어내고 총정치국장에 올랐다. 그가 군부를 장악하고 실세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의 신임을 받아 일찍부터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에 앞장선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총정치국장에서 물러나는 최룡해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임명됐다. 서열도 후퇴했다. 그는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현지 시찰 때 황병서 신임 군 총정치국장, 김기남·최태복 노동당 비서에 이어 4번째로 호명됐다. 최룡해는 서열 강등 이전 2012년 4월 총정치국장에 취임해 지난해 12월 장성택 전 국방부위원장 숙청 이후 2인자로 인정됐다.
황병서는 지난해 10월 최룡해와 김양건 대남 비서 등 북한의 고위 인사를 거느리고 인천 아시안 게임 폐막식에 참석했다. 자신이 2인자라는 사실을 뽐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뒤 조직비서와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을 맡고 있던 최룡해는 정치국 상무위원까지 꿰차며 다시 2인자로 올라섰다. 11월엔 황병서의 경례를 받으며 러시아 특사로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5개월 뒤, 최룡해와 황병서의 서열은 다시 뒤바뀐다. 지난달 말 황병서가 의전상 호명 서열에서 최룡해를 앞선 사실이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로 확인됐다. 급기야 최룡해는 최근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정치국 위원으로까지 밀려났다.
◆ 서열 기준, '김정은 옆자리·호명 순'
김정은 시대의 핵심 인물들은 김정은의 옆자리에 앉은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공식 권력서열을 발표하지 않는 북한에서 주석단 명단은 파워 엘리트들의 위상과 영향력을 가늠하는 중요 자료다. 최고지도자 김정은에게 가까울수록 중책을 맡은 인물이며, 반대로 주석단에서 사라질 경우 숙청설이 나돌기도 한다.
2013년 12월 장성택 실각 뒤 김정일 2주기를 맞아 17일 열린 중앙추모대회에서 김정은의 바로 왼편에 앉아 있던 최룡해의 모습은 북한 권력 내부에서 갖는 그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북한 김일성 주석 서거 20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선 최룡해가 앉았던 자리에 황병서가 있다. 서열상 좌천된 최룡해는 당비서 자격으로 당과 내각 인사들이 앉은 좌측 6번째로 밀려났다.
북한에선 또 호명 순서가 곧 권력 서열이다. 지난달 말 조선중앙통신의 의전상 호명 서열을 보면 "황병서 동지, 최룡해 동지, 오일정 동지, 김여정 동지가 동행했습니다" 순이다.
◆ 군복 입은 2인자, 총정치국장은?
총정치국장은 북한 전체 권력에서는 '2인자', 군 서열에서는 '1인자'다.
북한은 1948년 2월 인민군을 창설하고, 9월 정권을 수립하면서 '민족보위성(인민무력부 전신) 문화훈련국'을 설치하고, 1950년 '민족보위성 문화훈련국'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으로 개편했다.
총정치국은 우리의 합참의장 격인 총참모부장은 물론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보다도 서열이 높다. 노동당 규약 49조는 총정치국의 위상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은 인민군 당위원회의 집행부서로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같은 권능을 가지고 사업을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정치국은 첩보기관인 보위사령부 통제권을 가지고 있어 북한군의 정치사상 활동을 감시하며, 주요 간부들에 대한 인사권도 갖고 있다. 사실상 군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실질적 총책임자다.
또한 최고지도자의 특사로 외국 국가원수를 만날 정도의 비중도 가지고 있다. 최룡해 비서도 총정치국장 시절인 지난해 5월,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로 중국을 찾아 시진핑 국가주석을 접견했다.
[더팩트 ㅣ 오경희 기자 ari@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