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김영란 "아쉽고 아쉬워…원안은 이게 아닌데"

논란 속 김영란법 최초 제안자에게 쏠린 눈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가운데)이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김영란법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이날 김 전 위원장은 미리 준비한 자료집을 취재진들에게 전달하며 통과된 법안에 대한 아쉬운 점을 설명했다./서강대= 남윤호 기자

"원안에서 일부 후퇴한 부분 아쉽게 생각한다"

"아쉽다. 반쪽 법안…아쉽다." 숱한 논란 속에 난항을 겪고 통과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금지법)'에 대해 김영란(58)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입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아쉽다'는 말이 반복됐다.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이 10일 오전 10시 서강대 다산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김영란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이 회의장으로 들어서자 취재진의 카메라 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김 전 위원장의 행동 하나 놓칠세라 모든 취재진들은 김 전 위원장을 좇고 있었다. 취재 과열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짐짓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취재진을 바라보며 사진 촬영에 협조했다. 되레 "대법관에 오를 때 보다 더 많은 사진 촬영과 조명을 받게 되는 것 같다"며 여유를 보였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위원장은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김영란법에 대한 견해와 함께 적용 대상 확대에 따른 위헌 소지와 이해충돌 부분 누락 등의 논란에 대해 언급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초 제안했고, 법안 자체가 '김영란법'인 이유 때문이다.

간담회에 앞서 김 전 위원장은 "지난 3일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많은 사람이 의견 피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통과된 법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해 답을 할 수 없었다. 이후 귀국하자마자 통과된 법을 입수해 검토했고 답변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회의장 한편에서 한 여성이 '국민권익위원회 폐지'이라 적힌 피켓을 들고 소리 높이는 등 잠시 소동이 빚어졌다. 이 여성은 김 전 위원장에게 "국민권익위원회는 부정부패의 온상지"라며 "억울하게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해 살고 있다. 권익위원회를 해산해 달라"고 소리쳤다. 소란은 관계자가 나서 이 여성을 진정시키며 일단락됐다.

◆ 제일 중요한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안', 통과 못해…'반쪽 법안'

억울하다 국민권익위원회 폐지 10일 서강대 다사관에서 진행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기자회견에서 한 시민이 국민권익위원회 폐지라 적힌 피켓을 들고 기습 시위를 벌였다. 이 시민의 소란으로 기자회견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서강대= 남윤호 기자

김 전 위원장은 아무런 말도 없이 여성을 바라봤다. 그리곤 취재진들에게 "저 여성분의 사연을 취재해달라"고 말하며 웃음을 거둔 채 통과한 법안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내 모든 취재진들의 눈과 귀과 그에게 집중됐다.

김 전 위원장은 "애초 원안엔 부정청탁금지와 금품 등 수수금지, 공직자 이해충돌방지가 있었는데 앞서 두 원안은 통과됐으나 마지막 공직자 이해충돌방지가 통과되지 못했다"며 "이 부분은 반부패정책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므로 시행돼야 하는 것인데도 일부만 국회를 통과해 '반쪽 법안'이 됐다"고 아쉬워했다.

또 100만 원 이하 금품 수수시 직무관련성에 대해선 "(원안은) 100만 원의 '초과'와 '이해'를 구분하지 않고 직무관련성 없이 형사처벌이나 과태료처분을 하도록 했다"고 설명하며 "그런데 통과된 법은 100만 원 초과 수수시 직무 관련성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100만 원 이하 수수할 경우 직무관련성을 요구했다. 결국 형법상 뇌물조로 처벌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해 과태료만 부과하겠다는 것이 의문이다"고 유감을 표했다.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 축소한 부분에 대해선 "애초 가족 개념을 민법 제 779조에 적용해 규정했다. 그러나 통과된 법엔 배우자로만 축소했다"며 "전직 대통령의 자녀와 가족들이 문제가 된 사례를 생각해보면 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족 금품 수수시 직무 관련성을 요구해 범위를 축소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민법 제779조에 따르면 가족 개념은 배우자와 직계혈족, 형제자매와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이다.

위와 관련한 취재진의 다양한 사례 제시가 이어졌다. 한 취재진은 "가족 간의 사이가 꼭 좋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만약 원수가 돼 평생 보지도 않고 지내던 동생이 뇌물을 받을 경우 공직자인 형은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냐"고 질문했다. 김 전 위원장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바로 단호한 어조로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왕래가 전혀 없어 몰랐던 상황이라면 적용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 부정청탁 개념 '유감', 적용대상 범위 '아쉽지만 위헌 아니다'

김영란법 아쉬운 점이 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영란법과 관련해 원안과 비교하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부정청탁의 개념과 적용 대상 범위 등에 대해 아쉬운 점을 설명했다./남윤호 기자

논란이 된 부정청탁 개념에 대해선 "이 규정의 취지는 제3자에게 부탁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청탁 풍조를 개선하고자 했는데 원안과 달리 통과된 법에서 15개 유형으로 열거한 것이 부정청탁이 되지 않은 사례를 예시하는 것으로 규정해 보다 광범위하게 제3자 부정청탁 사례를 방지하고자 했는데 그 범위가 축소됐다"며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워했다.

김영란법 원안에서는 이 개념을 '특정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에게 법령을 위반하게 하거나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게 하는 등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하는 청탁 또는 알선 행위'로 규정했다.

이어 "(원안에선 )선출자 공직자의 제3자 고충민원 전달이 예외로 규정한다는 내용이 없었는데 아무리 고충민원이라도 내용적으론 인권 청탁과 인사 청탁 등의 부정청탁이 포함될 수 있어 공무원들의 브로커화 현상을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행일에 대해서도 "법 자체 시행은 1년 후로 하지만 대국민 홍보를 위해 처벌 규정은 2년 후로 규정했다. 그런데 최종 통과된 법이 1년 6월로 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언론 등 민간 부문까지 적용 대상에 포함된 것에 대해선 "놀랍지만 위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의 69.8%가 이들이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 것을 바람직하다고 평가한 자료도 있는 만큼 과잉입법에 위배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공직자 부분에 대해선 2년이 넘게 공론화 과정을 거쳤는데 민간 분야는 그 적용 범위와 속도, 방법이 합의와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확대된 면이 있다"고 지적하며 "법 적용은 공직사회에서 시작한 뒤 차츰 민간 분야로 확대하는 법안을 만드는 것이 적절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부분에 대해선 지금이라도 헌법상의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것에 대한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멋쩍은 듯 웃으며 "앞으로는 이름 대신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금지법으로 불렸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부탁의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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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서강대=김아름 기자 beautifu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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