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대길(立春大吉).’ 24절기의 시작인 입춘(立春)을 맞이해 길운(吉運)을 기원하는 글이다. 입춘첩(立春帖), 입춘축(立春祝)으로도 불린다. 보통 기둥이나 대문에 붙이는데,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는 뜻의 ‘건양다경(建陽多慶)’ 첩과 짝을 이룬다. 대문에는 정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붙인다.
이는 중국인들이 ‘팔(八)’자를 좋아하는 습속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어 팔(八)은 큰돈을 번다는 ‘발재(發財)’의 발(發)과 발음이 비슷하다. 중국인은 신년인사로 ‘꿍시파차이(恭禧發財)’를 연발하는데, 우리 식으로 하면 “부자되세요~”쯤이다. 줄여서 ‘파차이(發財)’로도 말한다. 자연히 8이란 숫자도 선호한다.
어떤 이가 100원(元)에 팔리지 않던 옷을 888원으로 가격표를 붙이니 불티나게 팔렸다는 에피소드로 이 같은 습속을 반영한 것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을 8월 8일 저녁 8시 8분에 한 것도 중국인들의 숫자 8 사랑을 잘 보여준다.
입춘은 태양이 황경 315도에 이르렀을 때인데, 음력으론 정월에, 양력으론 2월4, 5일이다. 올해는 4일이다. 입춘은 전·중·후로 나눠 첫 5일 동안 동풍이 불어 언 땅을 녹이고, 다음 5일은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며, 마지막 5일은 물고기가 얼음 아래 헤엄친다고 한다. 춥고 어두운 겨울, 소한(小寒)·대한(大寒) 다 지나고 바야흐로 봄기운이 약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들 입(入)’자 입춘(入春)이 아니라, ‘설 립(立)’자 입춘(立春)인가. 봄으로 들어가는 날이라고 보면 입춘(入春)이 그럴 듯하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가. 물론 립(立)에는 입(入)이란 뜻이 있다. 옛날에는 그런 뜻으로도 많이 쓰였다. 그런데 혹시 대구(對句)인 ‘건양다경(建陽多慶)’의 첫 글자 ‘세울 건(建)’에 대응한 것은 아닐까. ‘서다’와 ‘세운다’가 짝을 이루지 않는가.
건양(建陽)과 짝을 이룬다는 점에서 입춘(立春)을 다시금 살펴보자. 여기에서 봄은 그저 사계절 중 하나가 아니라 우주의 봄이다. 삼라만상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이자, 만물을 생성하는 우주의 어머니임을 내포하고 있다.
도덕경의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에서 바로 그 ‘만물지모’인 것이다. 도덕경의 제6장을 보자.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도올 김용옥은 ‘계곡의 하나님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가물한 암컷이라 한다. 가물한 암컷의 아랫문. 이를 일컬어 천지의 뿌리라 한다’고 번역했다. 천지가 시작되는 계곡의 문, 이른바 ‘가물한 암컷’인데, 우주의 어머니이자, 만물의 ‘자궁(子宮)’이란 뜻이 아니겠나.
이런 의미에서 입춘의 입(立)을 보면, 그 형상이 사람이 고개를 들고 팔다리를 활짝 벌리고 우뚝 선 모습이다. 한편으론 그 사람을 배태(胚胎)한 생식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꼭지(머리)는 음순(陰脣)쯤 되겠다. 도올이 말한 ‘가물한 암컷’이자 도덕경의 ‘현빈지문(玄牝之門)’으로 볼 수 있지 않겠나. 이 ‘가물한 암컷’에 봄이 왔다는 뜻이다. 바야흐로 만물이 생성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고, 음양(陰陽)도 조화를 이뤄야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것이다. ‘가물한 암컷(玄牝)’에 봄이 왔으면, 이제 필요한 것은 ‘누런 수컷(黃牡)’쯤이다. 천자문(千字文)도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하지 않는가. 이 ‘가물한 암컷’에 우주만물의 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바짝 세운 양기(陽氣)가 필요하다. 바로 건양(建陽)이다. 그래야 경사스런 일이 많다, 곧 만물이 생성된다는 뜻이 아니겠나.
이쯤 해서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을 다시 풀어보자. 우주의 ‘가물한 암컷’에 봄이 왔으니 크게 길하다. 양기를 곧추 세우니 만물이 생장하는 경사가 따른다.
얼마 전 교도소 재소자가 법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 5명에게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만 쓴 편지를 보냈다가 ‘증언보복죄’로 2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편지지에 붉을 글씨로 ‘입춘대길’을 써 보냈는데, 받은 증인들이 섬뜩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검을 글씨였으면 좀 어땠을까. 붉은 글씨는 주로 부적(符籍)에 쓰며, 이름을 붉은 글씨로 쓰면 불길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만큼 증인들의 공포심은 이해할 만하다.
여하튼 봄은 처녀총각뿐만 아니라 모든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푸른 신록, 흐드러진 꽃, 잉잉거리는 벌, 지저귀는 새소리로 가득한 봄은 생각만 해도 어찔어찔하다. 하지만 아쉽더라도, 안타깝더라도 봄을 보내고 여름이 지나야 결실의 가을이 오는 법 아니겠나. 항상 봄에 취해 있으면 스스로 소진할 뿐 결실은 없다.
중국의 하남(河南)성 안양(安陽)을 흐르는 강이 기수(淇水)인데, 봄이 오면 수양버들이 늘어지고, 온갖 꽃이 만발하며, 산란기를 맞은 붕어 잉어가 뛰어오른다. 찬란한 봄이지만, 강물이 흐르듯 봄도 그렇게 흘러간다. ‘기춘별곡(淇春別曲)’이다. 그래야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이 오는 것이다.
주역에서 ‘항룡유회(亢龍有悔)’는 ‘하늘 끝까지 올라가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도덕경도 제9장에서 ‘금옥만당(金玉滿堂)이라도 이를 지킬 길 없네. 돈 많고 지위 높다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길 뿐이네.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바로 하늘의 도리(功遂身退 天之道)라네’라고 했다.
오는 봄은 반갑지만,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긴들 쓸 데 있느냐” 되묻는 단가 ‘사철가’를 흥얼거리다 보면 설렘도 잠시, 이내 평온해진다.
[더팩트 ㅣ 박종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