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한·중·일 탐구생활 ①...‘주막(酒幕)' '판디엔(飯店)' '료칸(旅館)' 의 차이

지정학적으로 인접한 한국과 중국과 일본. 서로가 서로에게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영향을 미치면서,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마치 칡덩굴처럼 얽히고설킨 역사를 숙명처럼 풀어가고 있는 상황이다./더팩트 DB, 서울신문 제공

"결정적인 세계사적 사건은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悲劇)으로, 한번은 소극(笑劇)으로."

칼 마르크스의 말인데, 역사의 변증법적 전개를 설파한 헤겔의 ‘반복적 역사관’에 슬쩍 한마디를 얹었다. 원래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황제 즉위와 유배, 그리고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즉위와 추방을 빗댄 것이다.

이를 한반도로 옮겨보자.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이은 청일전쟁으로부터 딱 120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는 놀라우리만치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구한말에는 계층갈등으로 약화된 고리를 틈타 중국과 일본의 패권전쟁이 벌어졌다면, 현재는 남북갈등으로 악화된 괴리를 비집고 신 패권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연계된 것도 똑같다. 그렇다면 구한말의 위기는 일제강점기란 비극으로 이어졌는데, 작금의 위기는 어떤 결말을 맺게 될 것인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 나라라는 ‘웃음거리’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통일은 대박이다’고 했지만,그 ‘대박’의 주체는 과연 우리가 될 것인가.

해방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관통하면서 항간에 이런 말이 유행했다."일본X 일어나고, 되X 되 나오고, 미국X 믿지 말고, 소련X 속지 마라." 정말이지 혜안이 아닐 수 없다. 경고 그대로 이미 일본X 일어났고, 중국X 되 나오지 않았는가. 중국은 미국과 더불어 차세대 슈퍼파워로 굴기(屈起)하고 있고, 일본의 영향력도 여전하다.

지정학적으로 인접한 한국과 중국과 일본. 서로가 서로에게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영향을 미치면서,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마치 칡덩굴처럼 얽히고설킨 역사를 숙명처럼 풀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중·일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지만, 기후 측면에서 사뭇 다르다. 수도를 중심으로 보자. 중국 베이징은 대륙성 기후로 매우 건조하고 춥다. 일본 도쿄는 해양성 기후로 매우 습하고 덥다. 한국 서울은 사계절이 뚜렷하다.

여름은 습하고 더우며, 겨울은 건조하고 춥다. 이러한 기후적 차이가 민족성과 문화에도 미묘한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는 세월이 누적되면서 깊은 간극을 만들었다.

우선 숙박 형태를 보면, 중국의 판디엔(飯店)은 말 그대로 ‘먹고’ 자는 곳이다. 북경반점은 속칭 ‘중국집’이 아니라 베이징 호텔을 뜻한다. 일본의 ‘료칸(旅館)’에는 어디나 목욕탕(또는 목간통)이 붙어있다. 이들은 ‘씻고’ 잔다. 한국은 ‘주막(酒幕)’이다. 우리는 ‘마시고’ 잔다.

“중국인들은 더럽다”고 섣불리 일반화하지만, 이는 그들만의 ‘처절한 생존의 지혜’를 간과했기 때문이 아닐까./더팩트 DB

이 차이는 뭘까.

중국은 매우 건조한 기후여서 특히 삭풍이 부는 겨울엔 민낯을 내밀었다가는 자칫 피부가 쩍쩍 갈라진다. 지금이야 로션이 있어서 관리할 수 있지만 옛날에야 어디 그런가. 결국, 기름기를 섭취해 번들번들한 얼굴을 만들 수밖에 없다. 돼지고기를 즐길 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채소까지도 기름에 볶고 튀겨 먹는 이유가 아닐까.

이 경우에는 혈관과 내장기관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차(茶)가 해결책이다. 중국인들은 식전에는 국화차나 우롱차로 입맛을 돋우고,식 후에는 녹차로 뱃속에 낀 기름기를 다스리는 것이다.

10~20년 전만해도 중국의 초등학교에서는 매주 한차례 이상 목욕은 건강에 이롭지 않다고 가르쳤다. 물 부족 때문이 아니다. 돼지고기와 들기름으로 얼굴에 기름기를 돋게 했는데, 이를 씻어내면 건조한 날씨에 피부가 트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더럽다”고 섣불리 일반화하지만, 이는 그들만의 ‘처절한 생존의 지혜’를 간과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야말로 살기 위해 씻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은 로션이 일반화되면서 매일 샤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중국 내 한류(韓流)의 최대 수혜자가 화장품업인 것도 이런 기후적 특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일본의 ‘소당(商談)’은 벌거벗고 앉아 “오네가이시마스(부탁합니다)’ ‘소데스네(그렇군요)’로 이어지는 것이다./서울신문 제공

일본의 여름은 푹푹 찌고 습하다. 자연히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이 자주 창궐하는데, 알다시피 이런 전염병을 예방하는 첫걸음은 손을 씻는 것이다. 청결을 유지하지 않으면 나는 물론 일가족이 몰사할 수도 있다. 일본의 화장실은 ‘오테아라이’인데, 손을 씻는 곳이란 뜻이다. 료칸(旅館)마다 목욕통이 있는 이유이다.

일본인은 물수건 문화를 전 세계에 퍼뜨렸는데, 이 또한 그들이 선천적으로 청결함을 좋아해서라기보다 생존을 위해 몸에 밴 오랜 습관일 것이다. 중국인이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즐기면서 잘 씻지 않는 것과 일본인이 담백한 음식을 먹고 자주 씻는 것은 모두가 기후에 적응한 결과일 터이다.

한국이야 사계절이 뚜렷하고, 상대적으로 쾌적하다. 따라서 길손을 만나면 한잔 술로 누구나 벗이 된다. 단가(短歌)인 ‘사철가’의 한 대목을 보자.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복음방초승화시라~가을이 오면 한로삭풍 요란해도~겨울이 오면 월색설백천지백하니~한 잔 더 먹세, 덜 먹세 하면서 살아 보세.’

삼천리금수강산에 기후도 제 절기를 알고, 조선팔도 누구나 벗이니 주막(酒幕)에서 만나 술 한 잔 걸치면 서로 엉킨 잠자리가 좀 불편한들 대수로울 것 있느냐는 심사다.

이러한 반점-여관-주막의 차이가 비즈니스와 접대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먹고 자는’ 중국인들은 음식을 대접하며 상담(商談)을 나눈다. 최고의 음식접대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이다. 만주족과 한족의 음식 100여 가지가 하루 두 차례, 사흘에 걸쳐 나오는데 금해산초(禽海山草-날짐승, 해산물, 들짐승, 채소류)의 진미로 구성돼 있다.

“날개가 달린 것은 비행기를 빼고, 다리가 달린 것은 책상을 빼고 모두 요리한다”는 중국요리의 정수이다.

손님이 음식 그릇을 싹 비우면 실례이다. 호스트가 난처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하게 되는데, 음식이 부족해 대접이 흡족하지 못하다는 무언의 타박인 것이다. 그저 함포고복하며 서로 ‘따꺼(大哥), ’따슝(大兄)’하며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이다.

‘씻고 자는’ 일본인은 ‘터키탕(湯)’이 최고다. 서로 수건 한 장 머리에 쓰고 욕조에 앉거나 사우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상담을 나눈다. 이미 벌거벗은 터. 더는 감추거나 속일 것이 없다는 뜻일까.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수상과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큐슈의 하쿠스이칸(白水館)관에서 회동했을 때도 일본 측은 목간통 정상회담을 기획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원래 ‘유카타(湯衣)’를 입고 기념 촬영할 예정이었는데, 이 가운의 앞뒤로 일본의 국화인 벚꽃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던 것이다. 자칫했다가는 ‘사쿠라’로 몰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결국, 다른 이유를 대고 취소했다고 한다. 이처럼 일본의 ‘소당(商談)’은 벌거벗고 앉아 “오네가이시마스(부탁합니다)’ ‘소데스네(그렇군요)’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이내믹 코리아(Dinamic Korea)’와 창조경제 기초는 다양한 사고방식을 허(許)하는 ‘똘레랑스(Tolerance)’와 계층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수많은 사다리일 것이다./더팩트 DB

‘마시고 자는’ 한국인은 술이다. 고급 술집에서 부어라 마셔라 한잔 술에 ‘민증’까면 곧바로 형님 동생이 된다. 갖가지 형태의 폭탄주까지 돌면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비즈니스는 이뤄진다.

삼성그룹의 신년회에도 무슨 술이 나왔는지가 관심이다. 2015년엔 복분자 술이 나왔다. 이처럼 한국인이 술을 즐기는데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삼국지위지동이전을 보면 부여의 영고를 설명하면서 ‘국중대회 연일 음식가무(國中大會 連日 飮食歌舞)’라고 적고 있다. 나라 중심에 크게 모여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춘다는 말이다.

그게 뭐 특별하냐고 할 수 있지만, 당시 중국인 눈에는 매우 특이한 동이족(東夷族) 습성으로 보였던 듯하다.

먼저 ‘국중대회(國中大會)’인데,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돌이켜보자. 당시 한국이 4강에 오른 것도 뉴스였지만, 세계인들의 눈에 더 충격적인 장면은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이었다. 경기장이나 TV가 있는 방이 아니고, 웬 광장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나라 가운데 크게 모인’ 것이다.

이러한 장관(壯觀)을 연출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 오직 두 개의 나라, 남한과 북한이라는 말이 나왔다.

다음으로 ‘음식가무(飮食歌舞)’인데, 중요한 것은 순서가 ‘먹고 마시는’ 게 아니라 ‘마시고 먹는’ 것이다.어르신들이 약주를 먼저 드시고 나서 진지를 드시는 것도 다 연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에 면면히 이어져온 집단 기억이 아닐까. 참고로 한국은 직장 상사가 종종 작취미성(昨醉未醒)인 부하 직원에게 “사우나에 가서 씻고 좀 쉬어라”고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이런 배려가 전혀 없다.

기후에 따른 이러한 경향은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대응에도 상이한 양상을 보인다. 중국은 구족(九族)을 멸하고, 가담자들은 ‘갱유(坑儒)’에서 보듯이 그냥 파묻어버린다. 일본은 ‘하라키리(切腹)’와 함께 그 마을에 연못을 파버린다.

우리는 유배라는 형태를 선호한다. 일단 정치의 중심에서 멀리 격리시키는 것이다. 기후가 그렇듯이 여름이 가면 가을이,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은 법·정치적 겨울이 가면 ‘권토중래(捲土重來)’의 봄이 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획일적인 일본이 한국의 당파(黨派)가 사실상 입헌군주제하 정당정치의 원형(原型)일 수도 있음을 알아채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 집단이나 국가의 창조적 능력은 다양성이 바탕이다. 획일성은 효율적일 수 있지만, 창조성과는 거리가 있다. 일본이 획일적인 품질관리로 대량생산시대에 우뚝 섰지만, 한편으론 21세기 ‘창조경제’ 시대를 준비하지 못해 ‘잃어버린 20년’이 된 것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다이내믹 코리아(Dinamic Korea)’와 창조경제 기초는 다양한 사고방식을 허(許)하는 ‘똘레랑스(Tolerance)’와 계층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수많은 사다리일 것이다.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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