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벼룩 기자' 논란과 함께 중국 방문 중에 터져나온 개헌 발언의 진위는 집권당 대표의 '기사꺼리 제공'이라는 한편의 헤프닝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논의는 블랙홀'이라며 말문을 걸어잠궈놓은 터였기 때문에 여당 대표발 개헌 소식은 뉴스의 핵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청와대에 반기를 들고 '개헌' 이슈를 통해 자기정치를 하는 것으로 해석되자 김 대표는 대통령께 죄송하고 싸울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밝히며 즉각적인 사태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들로부터 빈 매가 날라 들었고 당내에서도 '대통령에 염장질이냐'라며 김태호 최고위원이 느닷없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해 버렸다.
이렇게 되자 꺼질듯 보였던 개헌 논의는 그 방향이 '친박-비박'이라는 '집안 싸움'으로 맞춰지게 되었다.
현재 개헌 논의와 함께 떠오른 이슈는 '더 내고 덜 받는' 공무원 연금 개혁이다. 이 역시 김 대표가 의원입법으로 대표발의하겠다고 나서며 오랜기간 논의되었던 공무원 연금 문제를 반드시 매듭짓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는 해묵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들은 가야할 방향은 어느 정도는 잡혀있지만 속도가 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개헌 논의 역시 핵심은 '제왕적', '중앙집권적' 구조에 대한 '분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헌법을 고쳐서 사회의 틀과 내용을 바꾸는 일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자연스러운 노력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의 머릿 속에 남아있는 가장 최근의 개헌 추진 과정은 87년 6월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거센 국민적 저항 속에서 얻어낸 산물이었다.
때문에 30여년이 흐른 지금의 시점에서 개헌 추진의 과정을 그때와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그림이 없는 상태다. 이점이 개헌 논의가 '허공'에서만 맴돌게 되는 배경인 것 같다.
즉, 국민의 요구에서 출발한 개헌 이슈가 민주적 '프로세스'를 거쳐 결실이 맺어지도록 그 진행의 길을 가다듬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87년 개헌의 내용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내손으로 대통령을 뽑겠다는 국민의 '기본권'적 요구의 실현이었다.
하지만 현재 개헌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냐 '미국식 4년 중임제'냐 '영국식 내각제'냐 하는 정치체제를 바꾸는 주제들에 대해 국민의 마음이 다가가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것이 아무리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모습을 발전시키는 방식이라고 할지라도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처럼 국민의 필요가 담긴 주제가 개헌 이슈와 함께 떠올라와야 한다.
그래서 '복지국가' 또는 '지방자치 국가'라는 우리 사회가 가야할 모습에 대한 그림이 제시되야 한다. 그 속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극대화하는 과제를 찾아서 개헌의 내용으로 삼아야 지금처럼 공중에 뜬 개헌 논의를 땅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을 우리 아이들이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적이고 위로만 향해있는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아래로 아래로 분산시키는 '분권'의 과제가 최우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위기를 분산시키고 '서로가 서로를 챙겨보는' 그런 국가로 나아가야만 대내외적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변수와 변화를 헤쳐나갈 수 있다. 어찌보면 국민들은 '5년 중임제'니 '이원 집정부제'니 하는 과제들은 현재의 틀에서 운영이 묘를 살릴 수 있는 문제이지 개헌을 해서까지 접근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노무현 정부시절 '책임형 총리제'란 형태를 통해 시도한 경험도 갖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벤치마킹하려는 국가들이 전반적으로 지방자치가 잘 발달한 '분권형' 국가들이라는 점은 현재 이뤄지는 개헌 논의의 내용이 무엇이 돼야 하는지 힌트를 준다. 기초를 튼튼하게 다져야 어떤 기둥을 올려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정치인이 주도하는 개헌 논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그 꼭지는 국민이 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그 논의 내용이 국민의 기본권을 향해 있지 않는 개헌 논의라고 한다면 이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로 끝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개헌 논의를 통해 이익을 보는 정치인이 있고 불이익을 보는 정치인이 있다고 국민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은영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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