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일찍 발인한 '고문 기술자' 이근안…텅텅 빈 빈소 [TF포착]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고문해 고문 기술자로 불린 이근안 전 경감의 빈소가 2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박상민 기자

[더팩트 | 박상민 기자]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고문해 '고문 기술자'로 불린 고 이근안 전 경감이 2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했다.

이날 고 이근안의 발인은 오전 5시 20분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유족의 요청으로 1시간 정도 일찍 발인을 해 장지인 서울시립승화원으로 이동했다.

고 이근안은 최근 건강 악화로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1970~19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한 이근안은 1979년 남민전 사건, 1985년 김근태 민주화청년운동연합(민청련) 전 의장 고문 사건 등 주요 공안 사건을 수사하며 강압 수사와 고문을 주도했다.

당시 전기고문과 물고문, 관절뽑기 등 가혹 행위로 허위 자백을 받아내 '고문 기술자'라고 불렸다.

반면 고 이근안은 1979년 남민전 준비위 사건, 1981년 ‘서울대 무림사건’ 등을 처리한 일로 내무부 표창을 받았다.

고 이근안은 민주화 이후인 1988년 수배 대상이 돼 12년간 도피하다가 1999년 자수했다. 이후 납북어부 김성학씨를 불법 감금·고문한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7년의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했다.

2006년 출소 후 신앙 간증 등 활동을 하면서 과거를 반성한다고 밝혔지만 "신문도 하나의 예술이다", "간첩과 사상범을 잡은 것은 애국이었다. 세월이 지나니 정치 형태가 바뀌어 내가 역적이 됐다"며 자신의 과오를 미화해 피해자, 시민사회로부터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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