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성렬 기자] 전국의 온갖 희귀한 물건들이 모여든다는 서울 종로구 동묘 벼룩시장. '레트로의 성지'답게 6일 오후 취재진이 찾은 동묘 벼룩시장에는 중장년층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층까지 다양한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시장의 대표적인 아이템인 구제 의류를 비롯해 시계와 지갑, 레코드판, 전자제품, 각종 액세서리 등 온갖 제품들도 골목을 가득 채웠다.
이날 대구에서 친구와 함께 서울로 여행을 온 이승우(21) 씨는 거리 분위기에 이끌려 매장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더팩트> 취재진이 이곳에서 구제 의류를 특별히 찾는 이유가 있냐고 묻자 그는 "최신 옷들에 비해 디자인과 색감이 더 예뻐서 찾게 된다"며 "눈에 띄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다"라며 웃었다. 이어 "이 거리 자체가 빈티지한 분위기라 좋다"며 "대구에는 이런 시장이 없어 더 신기하다"고 말했다.
동묘 벼룩시장은 1980년대부터 상인들이 자리를 잡으며 상권이 형성됐다. 과거에는 주로 노년층의 방문이 많았지만, SNS와 방송 등을 통해 개성 있는 모습과 빈티지한 감성이 알려지면서 젊은 층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늘어나며 '세대와 국적을 불문한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에서 8년째 수집품 매장을 운영하는 정모(58) 씨는 "인터넷을 통해 보고 찾아오는 10대들도 많다"며 "매스컴을 통해 접한 뒤 신기해하며 SNS에 올리면 그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어진다"고 말했다.
정 씨의 매장 곳곳에는 방문객을 위한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수능 만점 기원’, ‘성공하세요’ 같은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정 씨는 "가게를 하면서 ‘사람을 남기자’가 가치관"이라며 "물건을 꼭 사지 않더라도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웃었다.
동묘 골목의 북적임을 뒤로하고 청계천 방향으로 몇 걸음 옮기자 또 다른 시장 풍경이 펼쳐졌다.
바로 청계천을 건너 이어지는 황학동 만물시장이다. 황학동 만물시장은 한국전쟁 직후 형성돼 70여 년간 서울 시민의 삶과 기억을 담아온 공간으로,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근·현대 생활사의 상징적 장소다.
최근 동묘 벼룩시장에 비해 방문객 수는 줄었지만, 골목 사이로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꽤 많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 시계 매장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이 여러 시계를 손목에 차 보며 가게 주인과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상인 A 씨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며 "저렴한 가격에 시계를 구매할 수 있어 좋아한다"고 말했다.
상인 B 씨는 "황학동 만물시장은 ‘없는 것 빼고 있는 것은 다 있는’ 도심 속 만물상이다"라며 "평일이라 사람들이 적긴 하지만 필요한 물건을 찾아야 하는 손님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청계천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자 또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골목이 나타났다.
서울 중구 평화시장 인근의 헌책방 거리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참고서를 찾는 학생들과 책을 구하려는 손님들로 붐비던 곳이지만, 이날 골목은 한층 조용한 분위기였다.
1982년부터 서점을 지켜온 손대원(73) 씨는 아침부터 묵묵히 매장 안에 있던 책들을 밖으로 내놓고 있었다.
손 씨는 "손님이 많이 없다. 대부분 어르신들이 찾는다"고 조용히 말했다. 매장 안에는 개업 당시부터 사용해 온 나무 사다리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같은 거리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채오식(68) 씨도 과거의 풍경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이 거리에 서점이 120개 정도 있었는데 이제는 몇 곳 남지 않았다"며 "영상이나 휴대폰으로 보는 건 기억이 오래가지 않는다. 이해가 안 되면 다시 돌아가 볼 수도 있고 직접 적어가며 읽을 수도 있는 게 종이책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업을 잇지 않으면 사실상 우리가 마지막 세대일 것"이라면서도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이곳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청계천을 따라 이어진 거리에는 서로 다른 시간의 풍경이 공존하고 있었다.
동묘 벼룩시장 골목에서는 세대와 국적을 넘은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 새로운 ‘레트로’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없는 것 빼고 있는 것은 다 있는’ 도심 속 만물상 황학동 만물시장도 독특한 모습 그대로 역사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 나온 헌책방 거리에는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상인들의 시간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누군가는 이 거리를 지키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시선으로 그 풍경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온도의 시간이 교차하는 이 거리에서 또 어떤 이야기들이 이어질지, 청계천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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