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예천=임영무 기자] "우야노... 우예 살란 말이고."
며칠 동안 쏟아 붓던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자 가까스로 사고를 피한 어르신들이 마을을 돌아보며 꺼낸 혼잣말은 주위를 더 안타깝게 했다.
집중호우로 산사태 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 입구. <더팩트> 취재진이 찾은 17일 오후, 이곳은 토사와 나무들이 뒤엉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개울과 도로는 경계가 없이 뒤엉켜 어디가 차량이 다니던 곳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토사가 가득 들어찬 집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달력은 '잔인한 7월'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큰 바위들은 마을 한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았고 창고의 지붕과 차량들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나마 멀쩡하게 서 있는 주택의 내부는 흙과 모래가 가득하고 산에서 내려 온 물폭탄은 집과 차량도 모자라 주민들의 복구 희망까지 모조리 쓸어가버린 듯했다.
복구작업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이 지역 노인들은 폐허가 되버린 자신의 주택 앞에서 한숨을 짓거나 삼삼오오 모여 흐느끼기도 했다. 취재진과 마주친 한 노인은 바위와 흙탕물이 뒤섞인 장소를 가리키며 "여기가 사과밭이었는데 이런 처참한 모습이 될지 몰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잠시나마 장맛비가 소강 상태를 보이자 구조대의 실종자 수색은 속도를 냈다. 그 옆에서는 군 장병들이 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한 노모는 손자 같은 군 장병들의 손길에 조금씩 모습을 되찾자 연신 "정말 고맙네, 고마워"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실종자들은 지난 15일 새벽 갑자기 쓸려 내려온 토사에 파묻히거나 불어난 빗물에 휩쓸리면서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과 경상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는 비상 3단계를 발령하고 군인 1480여명, 경찰 340여명, 소방 300여명 등 구조인력 2129명을 투입해 수색과 인명구조에 총력을 쏟고 있지만 무너진 토사량이 워낙 많아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경북지역의 사망자는 19명, 실종자는 8명, 부상자는 17명으로 잠정 집계돼 인명피해 상황은 전날 오후 3시 기준과 동일하다.
사망자 19명 중 16명은 산사태에 직접 휩쓸리거나 집이 매몰돼 침수로 변을 당한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북 북부지역에서 시설물 피해도 늘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기준 호우에 따른 공공시설 피해는 모두 235건으로 파악됐다. 도로 경사면 유실이 65건으로 가장 많고, 산사태 4건, 토사 유출 6건, 제방과 하천 유실 77건 등으로 잠정 집계됐다. 상하수도 시설 62곳과 문화재 8건, 전통 사찰 13곳도 피해를 입었다.
또 산사태로 주택 36채가 파손 또는 침수됐으며, 축사 파손 3건, 가축 폐사 6만28두, 농작물 피해는 1630여㏊로 파악됐다.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 대통령은 이날 예천 산사태로 피해를 입은 마을을 찾았다. 예천군수로부터 피해 상황 등을 보고 받은 윤 대통령은 군 장병들을 격려하고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 위로의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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