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북한산=이새롬 기자] "이렇게라도 일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서 다행입니다."
십수 년 묵은 시민들의 민원이 마침내 해결의 물꼬를 텄다.
최근 서울 도봉구 북한산국립공원 등산로에 불법 개 사육장이 들어선 것이 알려지며 논란이 된 가운데, 1일 오후 해당 사육장에서 9마리의 개들 가운데 5마리의 개들이 구조됐다. 얼마전 구조된 1마리를 포함하면 모두 6마리다.
개들의 상태는 주민들의 우려와 달리 비교적 양호한 상태였으며 이동장을 통해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로 무사히 구조됐다.
이날 <더팩트> 취재진과 함께 개 사육장 운영주를 설득해 5마리의 개들을 구조한 도봉구청 보건복지과 동물복지팀 관계자는 "그동안 수차례의 철거명령에도 불구하고 응하지 않던 사람이 취재진의 취재 덕분에 전부는 아니지만 이렇게 5마리의 개들을 내보내기로 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수고하셨다. 조만간 나머지 개들을 모두 구조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시민들의 쉼터인 북한산 국립공원의 '불법 개 사육장'은 주민들의 민원에도 불구하고 십수 년째 등산로에 자리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주민들은 미관상 좋지 않을 뿐더러 개들의 안전도 우려된다며 산림청을 비롯해 도봉구청, 북한산 관리사무소 등에 민원을 제기했고, 언론 보도를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미관상 안 좋은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곳이 '국유지'이며 '국립공원 관리구역' 이라는 점이다.
LH에서 운영하는 부동산 관련 정보 포털사이트인 ‘시리얼(SEE:REAL)’을 보면 불법 개 사육장이 위치한 곳은 ‘서울 도봉구 방학동 산80-2’는 임야 2만 4166㎡ 면적의 국유지다. 국유재산법 제82조에 따르면, 법률에서 정하는 절차와 방법에 따르지 않고 행정재산을 사용하거나 수익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북한산국립공원 관리구역인 이곳은 자연공원법에 따라 국립공원구역 안에서 가축을 놓고 먹이는 행위나 물건을 쌓아두거나 묶어두는 행위 등은 공원관리청으로부터 행위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북한산 국립공원 불법 개 사육장은 이 같은 규정에도 아랑곳 없이 개들을 사육함으로써 민원을 야기해왔다.
<더팩트>취재진이 이날 도봉구청 보건정책과 동물복지팀 관계자들과 함께 찾은 불법 개 사육장은 북한산 국립공원 등산로 초입에 자리하고 있어 보는 순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움막 형태의 임시 거주시설에 철조망과 펜스 등으로 둘러싸여 요새를 방불케 했다. 굵은 쇠사슬이 처진 입구와 사육장을 둘러싼 펜스 근처에서 두 마리의 개가 '보초'를 서며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요란하게 짖어댔다.
이날 오전 사육장에서 만난 주인 박 모(81)씨는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자신을 개장수라고 얘기하는 주민들 때문에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일부 주민의 동물 학대 지적에는 "누군가가 버리고 간 개들을 데려와 돌봐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군인 출신이라고 밝힌 그는 "1968년에 우리 사단에서 여기에 발칸포 진지를 만들었다"며 "이곳(사육장)이 직원들, 병사들에게 밥 해주던 장소였다"고 말했다. 또 박 씨는 "국가 안보를 위해 수십 년째 이 지역을 지켜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취재진을 근처 벙커로 안내하기도 했다.
그는 "여기에 개장(이동장)까지 해서 놓고 도망간 개들을 돌봐왔다"며 "산 짐승인데 그럼 어떻게 하느냐. 나는 하루에 밥 한끼 먹는데, 별일이 있어도 개들을 굶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산림청과 구청 등에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며 시달림을 받았다는 박 씨는 이날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던 중 개들을 데려가도 좋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도봉구청 동물복지팀 직원들과 함께 사육장 내부를 확인했다. 박 씨가 공개한 내부는 기존 개사육장에서 흔히 보이는 '뜬장'의 형태는 아니었다.
쇠파이프와 플라스틱 판넬로 구역을 나누고 비닐 천막 등을 덮어 만든 사육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중형견들이 묶여 있었다. 다행히 개들은 주민들의 우려에 비해 양호해 보였다.
이후 구청 직원들과 다시 망설이는 박 씨를 설득해 동물 사육 포기확인서에 서명을 받아냈다.
단, 그는 해당 시설에 방범견이 필요하다며 현재 소유한 9마리 중 6마리만(최근 사육장을 탈출해 구조된 1마리 포함) 보내고, 추후에 나머지 3마리의 개들을 내보내겠다고 했다.
'절반의 성공'이지만 언제 또 박 씨의 마음이 바뀔 지 모른다는 생각에 현장에 있는 이들은 모두 동의했다.
이후 그의 손에 들려나온 5마리의 개들은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로 무사히 구조됐다.
이날 구조 현장에는 언론에 이 내용을 제보한 주민 이지영 씨도 동참했다.
이 씨는 "오늘 5마리를 구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면서도 "함께 걱정했던 동네 주민들이 (사육장에 개가 아직) 남아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 아파하실 것 같다. 어쨌든 (사육장의) 철거가 목표니까, 나머지 개들이 마저 구조되면 주민들과 힘을 모아 철거에 힘쓸 생각이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도봉구청은 지난달에만 두 차례에 걸쳐 박 씨에게 철거를 명령한 바 있다.
도봉구청 동물복지팀 관계자는 "동물 학대가 의심된다는 민원이 여러 차례 들어왔지만 동물보호법상 학대는 도구를 이용해 상해를 입히거나 죽이는 경우여서 박 씨에게 이를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관내 전역에서 허가받지 않은 가축 사육을 금지한 조례에 따라 박 씨에게 철거를 요구했다. 구청 관계자는 "이번달 말까지 철거 명령에 불응할 경우에는 경찰 고발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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