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새롬 기자]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돼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됐다.
올해로 7년째에 접어들었지만, 한국수어가 공용어인지 더 나아가 수어 소통을 모르는 한국인이 대다수이다.
사단법인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이하 소보사)'은 청인(청력의 소실이 거의 없는 사람) 김주희 대표와 농인 교사들로 이뤄진 국내 유일의 수어 대안학교로, 농학생과 코다(CODA·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의 건강한 농정체성 확립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 교육기관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소보사 학교에 기자가 들어서자, 교사와 아이들이 나와 양 손 주먹을 쥐어 흔들며(수어로 '안녕하세요'의 표현) 인사를 건넸다.
김주희 대표는 지난 2006년부터 공부방과 야학 등을 운영해오다 해외와 전국의 대안학교 사례를 찾아 농학생들에게 맞는 교육 연구와 노력 끝에 2017년 대안학교를 설립했다.
현재 김 대표와 5명의 농인 교사가 함께 초중고 과정 7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시간제로 운영되는 어린이집 운영을 통해 미취학 아동들도 돌보고 있다.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소보사에서는 한국어를 몰라도 상관이 없다.
수어 의사소통 여부에 따라 학생의 학습기준이 나뉘며, 수어를 알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1대1 맞춤형 수업이 이뤄진다. 교사와 학생의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수어를 습득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많은 학생을 받기 어렵다.
또 국내 최초 ‘수어통역파트너십’ 시스템을 도입, 청인과 농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수어통역파트너십에 의지가 있는 외부통역사들이 소보사에서 학생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수어로 소통가능한 관계가 형성되면, 이후 학생들의 진로에 맞춰 1대1로 함께 사회에 내보낸다.
공동체 안에서 농인과 청인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들을 자연스레 몸에 익히게 하는 것, 그것이 소보사가 농가족들에게 제공하는 궁극적인 일이다.
또래의 청인 아이들은 학습의 차이는 보여도, 기본적인 인지와 사고력은 비슷할 수 있다.
농아동들은 그렇지 않다. 농아동 부모 대부분은 청인인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농아동은 집에서 언어 없이 보내는 시간이 꽤 길다.
또 인공와우 수술(인공적으로 만든 달팽이관'와우·蝸牛'을 이식하는 수술)과 언어치료를 받고, 특수학교로 가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뒤늦게 농학교로 가게 된다.
상호작용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언어의 시기를 놓친 농아동과 수어 언어 환경에서 자란 농아동의 언어 수준 차이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소보사 교사인 노지원 씨(36)는 농인이지만 농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청인사회에서 성장하다 보니 공부를 전혀 할 수 없었다. 방법도 몰랐다. 선생님이 앞에 있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는 "학창시절 내가 조금 부족한 존재인가? 나는 저 사람들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며 살아야하는 존재인가 하는 외로움이 있었다"며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되니 그들과 살아가는게 외로웠다. 외로움이 익숙하게 되고 당연시됐다가 농인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사회에 눈을 떴다"고 말했다.
노 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뒤늦게 수어를 배웠다. 소보사 공부방 시절 1호 학생이기도 한 그는 김 대표에게 수어를 배우며 중독이 될 만큼 공부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런 즐거움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소보사 교사가 됐다.
소보사의 대안학교 설립부터 함께 교사 생활을 한 유현주 씨(34)는 초등학교때 농학교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수어를 전혀 모르고 농학교에 들어갔다가 같은 농인들을 만나 성장하며 자연스레 수어를 배웠다. 유 씨에게 농학교는 작은 사회가 됐다. 가족들 사이(부모님과 여동생은 모두 청인이다.)에서의 외로움도 그 안에서 많이 해소됐다.
그는 "농학생들이 성인이 돼 청인사회로 나가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라며 "예전에는 청인들이 우위에 있고, 농인들이 인권 밖으로 밀려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높아졌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인과 더 나란히 가려면 농인들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수화언어법의 제정에 따라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공식적으로 동등한 위상과 자격을 가지게 됐다. 최근 코로나브리핑을 비롯한 각종 정부 부처 발표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되고, BTS가 노래에 안무로 넣을 만큼 수어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김주희 소보사 대표는 "일시적인 사회적 흐름일 뿐, 관심을 받아도 관점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수어를 알게 됐다고 해서 '농인을 보는 사람으로, 수어를 농인의 언어로 인정'하는 인식의 변화까지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결함이 있어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닌 '다양성'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수화언어법 제12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농인 등의 가족을 위한 한국수어 교육과 상담, 관련 서비스 등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시행은 여전히 미비한 상황이다.
김 대표는 "농인들이 한국사회에서 한국수어만 가지고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한다"며, 정부와 학자, 농아인협회를 비롯한 농인 중심의 여러 단체들이 협업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수어가 진짜 언어로 인정받으려면, 수능, 공무원 시험 같은 각종 시험과 모든 책이 수어로 번역돼야 한다고도 했다.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소보사 교사들은 "소보사에 온 아이들은 어느 농인보다 더 농인답게 큰다"며 "'나'라는 가치를 잘 인정하고 받아들여 올곧게 살아가는 것, 그게 단 한 명의 아이가 될 지라도 이 일을 계속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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