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코드에 갇힌 '자영업자의 한숨' [TF포토기획]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인근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근재 씨의 어머니 최춘옥 씨가 아침 장사 준비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있다. 사진은 핸드폰 액정화면에 띄운 QR코드와 식당 내부 전경을 흑백, 다중 모드로 촬영했다. /이선화 기자

이근재 씨는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으로 종업원을 줄이고 대신 아흔이 넘는 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 씨는 최저임금으로 힘든 시기를 이겨내기도 전에 코로나19 사태가 왔다면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단순한 지원이 아닌 피해를 소급한 완전한 보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선화 기자

[더팩트|이선화 기자] "입구에서 QR코드 찍어주세요"

카페나 식당 등 다중이용시설을 방문할 때면 항상 듣는 소리다.

손님은 귀찮다고 툴툴거리며 핸드폰의 QR코드를 띄우지만, 자영업자는 속으로 한숨을 삼킨다. 최저임금 상승 여파로 종업원도 줄인 마당에 '방역 패스 확인'이라는 일거리가 하나 더 주어졌으니 말이다.

대한민국 사장님이라면 이제 QR코드 확인을 위해 분신술을 써야 할 판이다.

이근재 씨는 아침마다 직접 행주를 삶는다. 뜨겁게 소독한 하얀 행주와 알코올 소독제를 이용해 식당 내부를 구석구석 청소하며 식당 청결을 유지한다.

최춘옥 씨(오른쪽)는 종업원과 함께 아침 음식을 준비한다. 한식이 주 메뉴인 만큼 다양한 밑반찬과 음식 재료를 꼼꼼히 체크한다.

장사를 앞두고 아침 식사를 직접 준비하는 최춘옥 씨.

이번 설 연휴에도 정부의 거리두기 방역 조치가 연장됐다. 벌써 다섯 번째 반복되는 정부의 지침이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조차 힘든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는 그저 '사형선고'처럼 들릴 뿐이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이근재 씨는 지난해 7월부터 저녁 장사를 멈췄다. 당시 정부는 22시 이후 영업 제한, 18시 이후 2인 이상 모임 금지 등 강력한 4단계 조치를 시행했다.

이근재 씨는 당시 상황을 언급하며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면 정부의 방역지침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보상이 아닌 '턱없이 적은 지원'이었다고.

식당을 찾은 단골손님의 QR코드를 이근재 씨가 직접 확인하고 있다. 오픈 시간보다 먼저 가게를 찾은 손님은 마스크를 쓰고 자리에 앉아 QR코드 기기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 손님은 식사가 나오고 나서야 무사히 QR코드 체크인을 마쳤다.

이근재 씨는 손님이 다녀간 후 직접 테이블을 치웠다. 알코올 소독제로 방역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지난 25일, 많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국회 앞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대한민국 자영업자 파산"을 선언하며, 머리를 삭발했다. 2년이 넘게 계속된 코로나 사태로 더는 인건비, 임대료, 공과금, 각종 대출을 갚을 길이 없다고 외쳤다.

삭발식에 참가한 이근재 씨도 "지원이 아닌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연말, 연초 대목에도 방역지침을 지키느라 장사를 제대로 못 했다. 코로나 2년 동안 피해를 봤는데 정부의 지원금은 고작 3개월 치였다"라면서 "그마저도 보상금 지급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항에 동의해야 받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정부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거리두기 조치로 발생한 피해 분에 대한 손실보상금을 지급했다. 다만 피해 전액이 아닌 일정부분 손실을 지원해주는 제도였고, 이마저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사항에 동의해야 받을 수 있었다.

지난 25일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국회 앞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연장을 비판하며 299인 릴레이 삭발식을 강행했다.

오호석 코로나 피해 자영업 총연대(코자총) 공동대표는 오늘은 삭발식으로 항의하지만, 이제는 목숨 줄을 걸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생존권을 위해 투쟁해나갈 것이라며 2월 10일을 전후로 광화문에서 소상공인, 자영업자 단체뿐만 아니라 정부의 방역정책에 피해를 본 대한민국의 양심적인 모든 세력과 연대하여 대규모 투쟁을 펼칠 방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국인들의 관광 명소로 유명했던 명동 거리는 이제 '임대' 거리가 됐다.

한·두 군데 보이던 문 닫은 가게가 이제는 거리 전체로 번졌고,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을 만날 수 있었던 종로 거리에는 '정치인 OUT' 문구가 붙었다.

설·추석 연휴마다 북적북적했던 '재래시장 인파'는 볼 수 있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이며, 밤늦게까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대학가의 밤은 자영업자들의 한숨으로 바뀌었다.

대표 관광명소인 명동은 이제 임대 거리가 됐다. 심심찮게 발견되는 텅 빈 가게들뿐만 아니라 어느 골목은 1층 상가에 전부 임대 현수막이 걸려있기도 했다. 심지어 지난해 2월에 발생했던 화재로 불탄 상가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남아있다.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차없는 거리가 코로나 사태 2년 만에 썰렁한 거리로 바뀌었다.

선거철 정치인들이 찾던 종로 거리에는 이제 정치인을 만나기 힘들어졌다. 계속되는 희생 요구로 인해 벼랑 끝에 선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정치인과 정책을 결정하는 공직자를 손님으로 받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사진은 종로 거리에 붙어있는 정치인 OUT 유인물.

설 대목을 앞두고 제수품을 판매하는 남대문시장의 모습이 예전만큼 북적이지 않다.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한 사장님은 요즘 시장에 사람이 안 온다며 주말에도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했다.

27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 시장. 점심시간임에도 오가는 사람이 적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방역 지침으로 인해 식당과 음식점은 오후 9시 이후 영업이 금지됐다. 연초마다 모임으로 시끌벅적했던 서울의 밤은 예전과 달리 고요하기만 하다. 26일 저녁, 종로 젊음의 거리 역시 밤 9시를 전후로 식당에서 나와 마무리 인사를 나누는 몇 명의 시민들이 전부였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단체인 코로나피해자영업총연합(코자총)은 2월 10일을 전후로 광화문 대규모 투쟁을 예고했다. 정부의 지침을 지켰을 뿐인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들은 "더이상 버틸 돈도, 버틸 희망도 없다"고 말한다.

방역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바라는 건 단 한 가지다. 지원이 아닌 '완전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

끝나지 않는 코로나 사태로 설 연휴를 맞이한 소상공인·자영업자는 웃을 수 없다. 그저 '소상공인도 함께사는 나라'가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집단행동에 나선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피해를 소급한 완전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민상헌 코자총 공동대표는 영업정지와 제한으로 자영업자들은 죽음의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극한의 하루를 반복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은 버린 백성인가라고 호소했다.

계속되는 코로나의 확산으로 설 연휴에도 소상공인·자영업자는 웃을 수 없다. 소상공인도 함께사는 나라가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seonflower@tf.co.kr
사진영상기획부 photo@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