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면 지구가 바뀐다!'…코로나가 만든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 [TF포토기획]

용기 내 주세요!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무포장 판매 가게 안녕상점의 조은샘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왼쪽)과 이현숙 교육이사가 18일 매장을 소개하며 빈 용기를 내밀고 있다. /이새롬 기자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른 쓰레기 오염 방지, '제로 웨이스트' 관심 집중

[더팩트ㅣ이새롬 기자] 현미 1g 7원, 세제 1g 7원, 페퍼민트 1g 500원, 수분크림 1g 30원.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샵을 표방한 상점을 찾으면 흔히 볼 수 있는 가격표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늘어나는 쓰레기와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쓰레기 없는 소비인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용기와 빨대, 비닐 포장지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사회적 흐름에 발맞춰 국내에도 새로운 형태의 친환경 가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문을 연 무포장 판매 가게 '알맹상점'이 대표적이다. '포장지 없이 알맹이만 판매한다'는 슬로건으로 친환경 제품과 세제, 화장품 등 포장 없이 구매가 어려운 액체 형태의 제품 등 각종 생필품을 고객들이 다회용기에 직접 담아갈 수 있게 했다.

30일 알맹상점에서 만난 김보경(23·대학생) 씨는 가져온 우유팩을 수거함에 넣으면서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이 생기면서 SNS를 통해 알맹상점을 알게 됐어요. 쓰레기 만드는 것에 죄책감이 (이 일을 하고 나서) 그 부분에서 많이 해소됐죠."라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고은이(24·직장인) 씨 역시 알맹상점을 방문해 미리 준비해 온 용기에 주방 세제를 담고 있다. "자취하며 쓰레기 배출이 많아졌어요. '어떻게하면 플라스틱을 덜 쓰고 쓰레기를 덜 배출할 수있을까' 생각하다 알맹상점을 찾게 됐죠. 칫솔, 세제 등은 이곳에서 구매해 쓰고 있어요"라며 생활의 한 부분으로 차지한 제로웨이스트의 일상을 소개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알맹상점 입구에 알맹이만 재사용 하자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고은이(24·직장인) 씨가 30일 알맹상점을 방문해 미리 준비해 온 용기에 주방 세제를 담고 있다. 자취하며 쓰레기 배출이 많아졌어요. 어떻게하면 플라스틱을 덜 쓰고 쓰레기를 덜 배출할 수있을까 생각하다 알맹상점을 찾게 됐죠. 칫솔, 세제 등은 이곳에서 구매해 쓰고 있어요.

1년 프로젝트 형식으로 시작한 가게는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사람들과 특히 20-30대인 MZ세대(밀레니얼세대, Z세대)의 적극적인 참여로 인기를 끌며 대표적인 제로웨이스트샵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이러한 열풍에 우리 동네에도 이런 무포장 가게가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현재 전국에 100곳이 넘는 제로웨이스트샵이 문을 열었다.

김보경(23·대학생) 씨가 알맹상점으로 가져온 우유팩을 수거함에 넣고 있다.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이 생기면서 SNS를 통해 알맹상점을 알게 됐어요. 쓰레기 만드는 것에 죄책감이 (이 일을 하고 나서) 그 부분에서 많이 해소됐죠.

송효숙(31·프리랜서) 씨가 양파망에 담아온 플라스틱뚜껑을 수거함에 넣고 있다. 4년 전부터 제로웨이스트 삶을 실천하고 있어요. 그전보다는 많이 쓰레기를 줄였죠. 아직 부족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마트에서 이미 포장된 제품 등 여전히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쓰레기에 대해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한다면, 개인이 쓰레기를 줄이는 데 있어 더 수월할 것 같아요.

알맹시장 내부 곳곳에 환경을 아끼는 초등학생들이 보낸 감사 편지가 붙어 있다.

성신여대 인근에서 무포장 가게 '순환지구'를 운영하는 김진경 씨는 코로나 시대에 늘어나는 쓰레기 배출 문제에 심각성을 느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6개월 전 직접 가게를 차렸다.

순환지구에서는 친환경 제품 판매와 더불어 우유팩, 멸균팩, 플라스틱뚜껑 등 재활용 가능한 물건을 손님들로부터 수거하고 있다. 수거한 멸균팩은 재활용 공장으로 보내고, 우유팩과 플라스틱뚜껑은 각각 휴지와 독서링으로 재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성신여대 인근에 위치한 무포장 가게 순환지구에서는 친환경 제품 판매와 더불어 우유팩, 멸균팩, 플라스틱뚜껑 등 재활용 자원을 수거하고 있다. 수거한 멸균팩은 재활용 공장으로 보내고, 우유팩과 플라스틱뚜껑은 각각 휴지와 독서링으로 재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순환지구를 찾은 한 소비자가 빈 용기에 액체 세제를 담고 있다.

소비자들이 각자 가져온 용기에 주방 세제나 샴푸, 향신료 등을 담고 있다.

소비자가 용기에 내용물을 덜어 담아 무게를 잰 뒤 가격을 책정한다.

제로웨이스트와 함께 '유기농·친환경·비건'이 또 다른 트렌드로 부상하며 '농부시장 마르쉐' 채소시장도 각광받고 있다. 프랑스어로 '시장, 장터'의 뜻을 지닌 '마르쉐(marché)'에 장소를 의미하는 기호 '@(at)'를 붙여 '어디서나 열릴 수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환경운동가와 문화기획자들이 모여 만든 도시형 장터인 '마르쉐' 시장은 2012년 10월부터 시작돼 한 달에 세 번씩 서울 혜화·성수·합정 등지에서 열리고 있다. SNS 공지를 통해 시간과 장소, 참여 생산자 등 일정을 알 수 있다. 코로나가 유행하며 규모와 시기는 줄었지만 여전히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마르쉐에 참여한 생산자들은 하루 동안 직접 생산한 채소와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한다.

17일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 장터에는 5곳의 생산자만이 참여했지만, 오전 개장과 동시에 SNS에서 소식을 접한 많은 소비자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장터를 찾았다.

코로나 4단계 격상 이후인 17일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 마르쉐 채소시장에는 5곳의 생산자만이 참여했지만, 오전 개장과 동시에 SNS에서 소식을 접한 많은 소비자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장터를 찾았다.

마르쉐에 1년째 참여하고 있는 고양이텃밭 생산자 김빛나(27) 씨는 전북 익산에서 거주하는 젊은 농사꾼이다. 장터에 참여하기 위해 익산에서 4시간을 달려 이곳까지 온 김 씨네 텃밭에서는 딸기를 비롯해 상추, 방울토마토, 옥수수, 오이맛 청양고추, 가지, 양파, 당근, 메론 등 각종 채소를 생산한다.

직접 수확한 딸기로 만든 수제 딸기청도 판매하는 김 씨는 고정 고객들로부터 빈 병을 수거해 재사용하고 있다.

코로나 4단계 격상 이후인 17일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 마르쉐 채소시장에는 5곳의 생산자가 참여했지만, 오전 개장과 동시에 SNS에서 소식을 접한 많은 소비자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장터를 찾았다. 이날 만난 농부시장 마르쉐@ 기획자인 이보은 상임이사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소통을 통해 건강한 식문화 정착과 발전을 강조했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며 좋은 채소를 만나고 싶은 젊은 친구들이 장터를 많이 찾아요. 마르쉐 장터에서는 농부와 소비자가 대화하며 직접적인 소통을 할 수 있어요. 농부가 생산 할 때 (이것을) 좋아하는 소비자를 생각하고, 소비자도 냉장고를 열었을 때 그 농부의 얼굴이 떠오르며 먹거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죠. 이렇게 생산의 방식과 생활의 양식도 변하며 둘의 삶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거죠."

안녕상점의 조은샘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이 돌봄 아이들과 함께 직접 만든 재생 비누를 절단하고 있다.

도봉구에 위치한 '안녕상점'.

이곳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구를 돌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엄마들이 모여 만든 환경 보호 제로웨이스트 실천 협동조합이다. 아이들의 공동육아 돌봄을 위해 모인 엄마들이 중장기적인 공동육아에 앞서 당장 할 수 있는 실천을 고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구를 돌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을 지난해 만들었다. 도담은 어린이집 이름을 따 지었다.

거점 없이 활동하는 것이 소모적인데다, 활동을 많이 알리기 위해 착안한 것이 제로웨이스트샵이었다.

지난달 문을 연 가게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가게로의 역할을 넘어 쓰레기로 버려질만한 자원 회수와 제로웨이스트를 몰랐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실천을 알리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독거 어르신, 교육복지대상자 등과 함께 친환경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으로 지역 내 일자리 상생에도 힘쓰고 있다.

안녕상점은 지역 내 바느질 공방이나, 복지관을 통한 독거 어르신, 교육복지대상자 등과 함께 친환경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으로 지역 내 일자리 상생에도 힘쓰고 있다.

조은샘 조합 이사장은 최근 도봉구청과 협의해 멸균팩 수거 거점을 만들고 있다. 10곳을 목표로 현재 6곳을 선정했다.

"멸균팩 안에 있는 은박지와 겉의 우유팩을 분리, 가공해 휴지로 만드는 해리 공정을 할 수 있는 공장이 국내에 두 군데 정도 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기계가 너무 고가여서요. 근데 이 공장들에 멸균팩이 모이지 않아 60%를 수입하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먹고 그냥 버리는데, 정작 필요한 곳에서는 수입해 파이프와 종이 타올을 만들고 있다고 하니, 우리가 그 멸균팩 물량의 60%를 다 채우지 못하더라도 일정 수량을 채워서 그 기계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해보자 해서 이 활동을 벌이게 됐어요."

안녕상점에서는 식약처에 허가를 받아 다음 달 1일 출시를 목표로 주방비누를 제작하고 있다. 샴푸바, 비누바 등 제로웨이스트샵에서 판매하는 비누제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많지 않아요.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있었으면 하는, 그런 취지에서 동참하게 됐어요. 우리가 직접 만들면 우리 아이들도 안심하고 쓸 수 있으니까요.

이제 용기 내야할 때! 조은샘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왼쪽)과 이현숙 교육이사가 빈 용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조 이사장은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사회 현상을 반기면서도 올바른 환경 운동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요즘 제로웨이스트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 등 대체 제품을 소비하는 것 자체가 제로웨이스트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우드나 스틸로 된 것을 구매해 채우는 것보다 가정에서 가지고 있는, 그것이 플라스틱이라 하더라도 생명을 다할 때까지 쭉 쓰는 것이 진정한 제로웨이스트가 아닐까요. 소비를 좀 줄이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줄이는 방식의 환경 운동으로 퍼져나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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