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축구선수들..."축구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
[더팩트ㅣ이새롬 기자] '보이보이(voy voy)!'
공을 가진 선수가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자기편이나 상대 선수들이 자신과 공의 위치를 파악하고 수비, 공격할 수 있도록 소리를 내 위치를 알린다. 서로의 목소리에 의지해 그라운드를 누비는 '시각장애인 축구 선수 경기 현장'이다.
지난 17일 경기도 이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 시각축구장에서 열린 2021 시각장애인 축구 국가대표 선발전. 다년간 국가대표로 활동한 사람부터 올해 첫 국가대표에 도전하는 참가자 등 14명의 선수가 이번 선발전에 참가했다. 이날 양 팀으로 나뉘어 경기를 뛰며 기량을 펼친 선수들 중 10명(비장애인 골기퍼 2명 포함)이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시각장애인 축구는 풋살 경기장과 비슷한 규모에 펜스가 설치된 시각장애인 전용 경기장에서 골키퍼를 포함한 5명의 선수가 경기를 치른다.
골키퍼는 약시인 또는 비장애인이 맡는다. 쉽게 골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경기에는 골키퍼 포함 3명의 가이드가 함께 경기에 참여한다. 수비지역은 골키퍼가, 하프라인은 팀 감독, 공격지역 골대 뒤는 가이드가 위치해 공의 위치와 선수들의 움직임을 알린다.
방울이 들어 있어 구를 때마다 소리가 나는 특수 공을 사용한다. 전·후반 25분씩 경기를 치러 골을 많이 넣은 팀이 승리한다. 경기는 소리에 의존해 진행되므로 관람석에서는 큰 소리로 응원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시각장애인축구(시각축구)가 도입됐다. 그동안 우리 시각장애인축구팀은 2002년 월드컵 기념 국제대회 3위, 2007년 국제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IBSA) 아시아 시각장애인축구선수권대회 2위, 2010년 광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동메달,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4위, 그해 12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10위에 오르는 등 큰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이후 취업으로 축구를 병행할 수 없는 선수들의 공백과 후진양성이 더뎌지며 이후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저조해지고 있다. 올해 도쿄 올림픽 출전 티켓도 안타깝게 놓치고 말았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활약한 하지영(35) 씨는 최근 3~4년간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는 "축구를 위해 직업을 포기하기란 어려운 문제다. 직장에 따라서는 아예 시간을 뺄 수 없어서 병행해서 가는 게 쉽지 않다"며 "(시각축구 선수는)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말 좋아서 하지 않고서는 계속하기가 힘든 부분이 있다. 열정은 있지만 일 때문에 못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지준민 국가대표 코치는 "세계선수권 대륙별 티켓을 따기 위해 모여서 훈련을 한다. 큰 대회일수록 오랫동안 훈련을 할 수 있다. 대회가 없는 올해 선발전은 내후년에 있을 대회를 대비해 기량을 키우기 위한 해가 될 것"이라며 "신입 친구들도 이번 선발전에 많이 참가했다. 그런 친구들을 많이 발굴하고 훈련을 통해 좋은 선수로 만들어 국제대회에 나갔을 때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축구 대회는 1년에 전국체전과 대한축구협회 주최의 2개 대회가 전부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시각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지만, 관심은 금세 사그러들었다. 현재 국내 시각축구 선수들은 국가대표로 발탁된다고 해도 정기적인 훈련이 따로 없다. 시합이 있을 때만 모여 훈련을 하기 때문에 개인 훈련이 필요한데, 그마저도 훈련 공간이 마땅치 않다.
시각 축구인은 인원이 많지 않아 목소리를 낼 수도 없고, 큰 지원이나 홍보도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시각축구가 알려지고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축구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 시각장애인 선수는 말한다. "보고 따라하는 게 안 되는 우리에게 쉽지 않은 운동이 바로 시각장애인 축구죠. 그래도 이 축구를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게 너무 좋고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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