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 아냐, 편견 깬 황홀한 인생 2막
[더팩트ㅣ임영무 기자] '육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재미있는 가사로 인기를 끌었던 '백세인생' 노랫말처럼 최근 노년층은 남은 여생을 즐기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를 뜻하는 황혼기에 새로운 삶에 도전해 전성기 못지 않는 인생을 사는 시니어층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젊은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모델계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액티브 시니어', '그레이네상스(백발의 그레이와 르네상스의 합성어)'등 수식어까지 만들어냈다. 교육 수준과 경제력까지 갖춘 이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본인에게 과감하게 투자하는 '트렌트세터'로 주목을 받고 있다.
시니어모델 열풍의 중심에 '국내 1호 시니어모델' 김칠두와 '현역 최고령 모델'인 최순화가 있다. 1955년생인 김 씨는 올해 67세가 됐다. 젊은 시절 순댓국집과 건설 일용직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치열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화려한 조명과 박수를 받는 정상급 모델이 됐다.
지난 2018, 2019년 연달아 서울패션위크 런웨이를 장식하며 은발의 돌풍을 일으켰다. 딸의 권유로 시작했다는 모델일이 '천직'이라고 말하는 그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지난달 6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의류 화보를 찍고 있는 김 씨를 만났다. 181cm의 훤칠한 키에 날씬한 체구, 다듬지 않은 듯한 긴 백발과 덥수룩한 수염이 모델 '포스'를 뽐냈다.
주말의 거리에는 코로나19에도 적지 않은 시민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 했지만 그는 주위의 시선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선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포토그래퍼의 요청이 없어도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촬영 분위기를 이끌었다.
트렌드를 반영한 2030 세대의 의상도 완벽히 소화했다. 선글라스 구두 등 액세서리도 본인이 직접 준비해 프로다운 면모도 보여줬다. 촬영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사인과 함께 셀카를 요청을 했다. "나는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하는게 너무 좋아. '칠두형'으로 불러주면 좋아"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최고령 모델 최순화 씨는 1943년생으로 데뷔 4년차 모델로 올해 78세가 됐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모델계에 발을 들였다. 김칠두와 함께 2018년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20~30대가 주를 이루는 패션쇼 무대에 당당히 선 최 씨는 70대 최초로 패션쇼에 무대에 섰다.
시니어모델 양성과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는 서울 압구정의 더쇼프로젝트에서 동기들과 함께 워킹 연습과 함께 사진 포즈등을 배우고 있는 최순화 씨를 만났다. 웨이브진 하얀 백발에 고운 피부, 꼿꼿한 자세는 일흔 후반의 나이가 맞나 의심케 할 정도로 여유와 기품이 느껴졌다.
어릴적 모델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꿈을 잠시 접은채 40년간 주부와 간병인 일을 병행했다. 일흔이 넘어 모델계에 도전장을 내민것은 당시 간병을 하던 환자의 조언이 컸다. 이후 모델 아카데미를 통해 시니어모델이 됐다.
"(쇼)무대위는 가장 긴장되지만 또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고 밝힌 그는 최근 손주들에게서 "'우리 할머니 진짜 멋있다'말하며 엄지를 치켜줬을때 기쁨에 가슴이 벅차올랐다"며 소녀 미소를 지었다.
또한 "제 도전이 많은 분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어요. 80세를 앞둔 저도 아직도 도전을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하고 싶은거 해야 건강합니다"며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고 있는 이시대의 많은 시니어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6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더쇼프로젝트 정기 패션쇼에는 모델 김칠두, 최순화를 포함한 수료생들이 함께 패션쇼 무대를 펼쳤다. 쇼는 코로나19로 철저한 방역수칙를 준수하며 관람객 없이 진행됐다.
무대를 앞둔 한 수료생은 "가족들이 와서 내 모습을 봐줬으면 좋았을텐데... 지금 너무 즐겁고 심장이 쿵쾅거려요~"라며 들떠 있었다. 쇼 참가자들은 리허설을 앞두고 거울앞에서 자신의 화장과 의상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동료들의 워킹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본인의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은 수능을 앞둔 학생들보다 더 진지해 보였다.
홀을 가득 채운 음악과 함께 패션쇼 무대가 펼쳐졌다. 무대에 선 참가자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아낌 없이 보여줬다. 무대에 선 참가자들은 화려한 공작새처럼 런웨이를 빛냈다.
시니어들의 열정이 더해진 무대는 완벽했다. 피날레 무대가 끝나자 박수 소리는 한동안 이어졌다. 인생의 황혼기에 당당히 새로운 일에 대해 도전했고 하나의 도전을 성공한 이 순간, 자신과 동료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박수 갈채가 끝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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