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중단' 빌딩 서울 곳곳 산재...시민 안전 위협, 경관 훼손 불구 '방치'
[더팩트ㅣ이선화 기자] "여기선 달려가라고 그랬어!"
아슬아슬, 쓰러질 것 같은 공사 건물 아래로 가방을 멘 어린아이가 소리를 쳤다. 아이는 쏜살 같은 속도로 달려갔다. 보호자는 그 뒤를 빠르게 쫓았다. 불과 3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달 14일 서울 구로구 개봉동의 한 건물은 벽이 없었다. 바닥도 천장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뼈대를 이루는 철 구조물만이 우뚝 서 있었는데 이마저도 낡아서 곧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가림막은 찢어진 지 오래였고 자재들은 길가에 두서없이 쌓여 있었다. 건물 주위에는 아파트단지와 다세대 주택, 주차된 차량,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골목이 있었다. 건물이 무너진다면 언제든 인명피해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일까. 로드뷰로 확인한 이 건물은 2010년부터 10년째 공사 중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제한구역 안내문만 붙여놓은 채 열려있는 공사장 입구였다. 안에는 철근, 나뒹구는 가스통, 전기배선 등과 함께 구조물 위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는데 출입을 통제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이대로라면 어린 학생들도 자유로이 드나드는 게 가능해 보였다.
동네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 건물이 10년 가까이 방치됐다고 말했다. 건물을 올리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마찰이 생긴 탓에 공사가 멈춰버렸다고 한다. 그는 "태풍이 심하게 왔을 때 (공사 자재들이) 바람에 날아가 나무가 쓰러진 적도 있었다"며 건물 붕괴의 위험성을 알렸다.
비단 이 건물 뿐만이 아니다. 서울 도심 곳곳에는 '유령 건물'들이 많다. 왜 이런 건물들은 계속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공사 중단으로 장기 방치된 된 건물은 더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도봉구 창동 민자역사다. 2007년 효성을 시공사로 선정,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됐지만, 임직원의 배임 및 횡령 혐의가 불거지면서 2010년 말 공사가 중단됐다. 서울시와 서울회생법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물은 붉은 구조물이 드러난 채 멈췄고 창동역의 모습은 그로부터 10년간 흉측한 모습을 유지했다.
관악구 남부중앙시장(당곡시장) 역시 이와 비슷했다. 서울시 시장정비사업 추진계획에 따라 당곡 프라자로 명명, 공사가 착수됐으나 시공업체의 부도로 인해 2009년 골조 공사만 마친 채 중단됐다. 그 이후 분양대금 반환을 요구하는 유치권이 시행 중이며 2014년 신탁사에 의해 건물이 통째로 경매에 넘어갔다. 건물 주위엔 마트, 병원, 음식점 등 상가들이 즐비했지만안전장치는 없어 보였다.
완공된 채 몇 년째 유령건물 신세로 전락한 곳도 있다. 서대문구 신촌 민자역사와 이대역 인근 대형 쇼핑몰이 그 예다. 두 건물은 신촌~이대~홍대 상권 활성화를 주도하며 2006년에 준·완공됐지만, 무리한 사업 진행과 잇따라 몰락한 상권 탓에 일부 점포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폐점 상태를 맞이했다. 신촌민자역사의 경우 지난해 삼라마이더스그룹이 인수했으나 이대역 대형 쇼핑몰의 경우 위층 주거지역을 제외하곤 여전히 고요한 상태다.
재개발 사업 등으로 방치된 빈집도 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알려진 중계본동 백사마을이 그 예이다. 현재는 재개발 정비계획이 통과됐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린벨트가 해제된 2008년 이후 재개발 설계를 놓고 이해당사자들 간 수차례 마찰이 빚어졌다. 그 동안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났고 노후화된 건물은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됐다. 당시 빈집에 불량청소년들이 찾아와 범죄를 저지른다는 신고도 있었다.
철거를 앞두고 찾은 백사마을은 시간이 멈춘 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산 위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는 울퉁불퉁하고 길은 좁았으며 벽 곳곳에는 공실임을 알리는 붉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가로등을 제외하면 불 켜진 집이 몇 남아있지 않았다. 대부분 집은 벽이 무너졌거나 지붕이 가라앉아 주택의 본 모습을 잃은 상태였다.
전국에 공사중단 장기방치 건축물은 2019년 기준 총 322개다. 빈 주택의 경우는 그 수가 더 많으며 서울시에만 총 2,972개(국토교통부, 서울시 자료 기준)로 집계된다. 해결방법은 없을까? 국토교통부 한 관계자는 "(공사중단 건물이 발생하는 이유가) 개인이 건축물을 짓다가 그런 경우가 많다고 저는 들었는데…"라며 말을 아꼈고, 서울시에도 문의해봤지만 "지자체에서 하는 일"이라는 대답 외엔 들을 수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치건축물정비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효과는 미미한 상태다.
장기방치 건물은 도시 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를 침체시킨다. 더군다나 공사가 중단돼 방치된 경우에는 자재가 떨어진다던가 구조물에 문제가 생긴다는 등 안전사고 발생 위험도 높아진다.
멈춰버린 시간에 갇혀 도심 속 흉물로 전락한 유령 건물. 이들에게도 새 생명의 봄은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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