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포토기획] 불교 신앙에 숨 불어넣는 '탱화 그리는 장인'

10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에서 만난 김송희 불모가 탱화를 그리고 있다. 화실에서 작업중인 이 작품은 호랑이를 신격화시킨 산신탱화로 그림 그리는 작업만 6개월 이상, 전체 작업은 1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더팩트|이선화 기자] "더는 가르칠 것이 없다. 이제 하산하거라."

오래된 무협 영화를 보면 무술의 대가와 배움을 갈구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주인공은 스스로 제자가 되어 스승과 동고동락을 하며 설거지, 빨래 등 온갖 잡일을 대가로 무술을 배운다. 주인공이 어느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스승이 직접 졸업시킨다.

"하산하거라" 특별한 절차 없이 이 대사 하나면 오케이. 이를 우리는 '도제식 교육'이라고 부른다.

최근엔 정해진 교육 절차에 따라 학교에 가고 학과를 선택해서 그 분야의 지식을 익히지만,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배움이 어려웠던 옛 시대의 사람들은 스승을 찾아 지식을 갈고닦는 것이 쉽고 유일한 방법이었다. 의학, 요리, 음악, 무술, 공예 등 전문분야라면 더욱 더 그렇다. 지금부터 다룰 '탱화'도 마찬가지다.

탱화를 그리는 화가 김송희 불모는 학창 시절 친오빠인 김의식 불화작가를 따라 탱화에 인연을 맺었다. 김의식 작가는 단청 문화재 수리기술자로 제13회 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 대상과 제18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을 수상한 불교미술의 대가다. 오빠를 스승으로 삼고 탱화를 배운 김송희 불모는 배우자인 전근창 원장을 만나 독립, 이른바 '하산'을 했다. 그렇게 30여 년. 탱화는 그의 일부가 됐다.

화실에는 김송희 불모 부부가 함께 있었다. 전근창 원장 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 단청장 이수자이자 문화재 수리 기술자로 김송희 불모의 탱화 작업을 돕는다. 특히 이론에 더 조예가 깊은 전근창 원장에게 자문할 때가 많다. "탱화란 부처님 설법이나 경전 내용을 표현하는 거죠"라고 말하는 전 원장. 탱화는 독창성보다 불교의 교리를 표현하는데 더 중점을 두기 때문에 김송희 불모는 그의 자문이 많은 도움이 된다.

김송희 불모는 친오빠인 김의식 불화작가 밑에서 탱화를 배웠다. 학창 시절부터 결혼 후 지금까지 탱화를 그린 기간만 30여 년 가까이 된다.

요즘에는 대학교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김송희 불모의 스승인 김의식 작가는 제13회 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 대상과 제18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을 수상한 불교미술의 대가다.

탱화를 그릴 때의 그는 인터뷰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눈빛부터 손짓 하나, 움직임 하나까지 온몸에서 정성을 쏟아내는 듯했다.

이제는 그의 일부가 된 탱화. 화실에는 구석구석 그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탱화 작업은 부부가 함께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는 작업은 오로지 김송희 불모의 몫이다.

탱화는 크게 상단탱화, 중단탱화, 하단탱화로 구분한다. 상단탱화는 불상을 모신 상단 뒤에 걸어두는 후불탱화를 말하며 중단탱화는 부처상 옆 벽면에 있는 신중탱화를 뜻한다. 후불탱화가 주로 신앙적 성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면 신중탱화는 수호신적인 기능을 강조하는 편. 하단탱화는 신중탱화의 맞은편에 걸리는 감로탱화와 함께 호랑이를 신격화시킨 산신탱화, 불교의 호법선신을 의인화한 칠성탱 등 모두를 포함한다.

화실에선 크기가 다른 산신탱화, 신중탱화 작업이 한창이었다. 탱화는 작품 크기에 따라 적게는 2~3개월에서부터 길게는 1년 가까이 소요되는데 막바지 작업에 들어간 산신탱화는 그림 그리는 작업만 6개월 이상, 전체 작업은 1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탱화작업은 보통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지만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작업량이 조금 줄어든 편이다.

산신탱화란 산의 신령이라고 불리는 호랑이를 신격화시킨 그린 불화작품이다. 탱화 속 산신은 인자한 미소에 복스러운 모습으로 호랑이와 함께 나타나며 배경에 소나무가 있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의 산신탱화 속 호랑이는 용감하고 위엄있는 이미지보단 백발의 신선 옆에 귀엽고 친근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작업을 마친 산신탱화는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크기였다. 이런 대형 탱화는 부처님 오신 날에 있을 야외 행사에 사용되곤 한다.

신중탱화란 불교를 수호하는 신중을 그려 중단에 걸어 둔 탱화로 수호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신중탱화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들이 등장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토속신들이 호법선신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신중탱화는 탱화 중에서도 고유의 특성이 강하다.

화실에 있는 신중탱화는 색 입히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스케치만 있는 탱화 속 신들도 표정만큼은 근엄하고 진중해 보였다.

김송희 불모는 두 개의 붓을 들고 정성스럽게 색을 덧칠했다. 탱화엔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다섯 가지 색이 사용되는데 이는 음양오행 사상에 기반을 둔 한국의 전통 오방색이다. 작품에는 돌이나 식물에서 얻은 자연 안료를 사용해 고려 불화 형식의 색채를 표현하기도 한다. 색 하나에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셈이다.

색 말고도 탱화에는 숨은 전통이 존재한다. 탱화 작업에 가장 중요한 건 배접. 종이 또는 천을 여러 겹 포개어 붙이는 작업이다. 이렇게 하면 겹겹이 쌓인 종이가 습기를 자체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 고려 시대 탱화가 지금까지 전해져 올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배접 방식 때문이다. 전근창 원장은 "한지에 면천, 지금 작업 중인 건 4겹 정도 들어간 거예요. 계속 위에다 덧대서 굉장히 두껍죠. 안 그러면 몇 년 못가요. 이런 작업을 안 하면"이라고 말하며 배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작업이 끝난 산신탱화는 색이 번지거나 묻어나지 않도록 위에 한지로 덧댄 다음 조심스럽게 말아서 보관한다. 한지는 알칼리성을 띠고 있는 잿물과 닥나무를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일반 종이와 달리 잘 산화되지 않고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 종이인 한지의 우수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색 작업에 앞서 사용할 붓을 깨끗히 세척했다. 작업대 위에는 색을 만드는 안료와 깨끗한 물, 다양한 크기의 붓이 있었다.

탱화엔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다섯 가지 색이 사용되는데 이는 음양오행 사상에 기반을 둔 한국의 전통 오방색이다. 김송희 불모는 오방색 중 하나를 사용해 스케치 위에 정성스럽게 덧칠했다.

불화에는 돌이나 식물에서 얻은 자연 안료를 사용해 고려 불화 형식의 색채를 표현하기도 한다. 화실에는 전통 오방색을 표현하는 안료부터 다루기 까다로운 다양한 자연 안료도 있었다. 석채의 경우 평범한 가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들어보니 무게가 상당했다.

작업 중인 김송희 불모의 손은, 물감이 덕지덕지 묻어있을 거란 예상과 다르게 깔끔한 모습이었다. 김송희 불모는 내가 경력이 몇인데 (물감이) 손에 묻겠어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작업이 끝난 산신탱화는 색이 번지거나 묻어나지 않도록 위에 한지로 덧댄 다음 조심스럽게 말아서 보관한다. 한지는 알칼리성을 띠고 있는 잿물과 닥나무를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일반 종이와 달리 잘 산화되지 않고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다.

상당한 크기만큼 보관하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김송희 불모와 전근창 원장은 탱화가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말아서 투명한 보호 필름지에 쌓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포장을 마친 부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오방색, 한지, 배접 방식, 자연 석채의 사용, 도제식 교육 등. 탱화 본래의 목적은 불교 교리 전파겠지만 면면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역사를 느낄 수가 있다. 김송희 불모가 그린 탱화도 불교라는 종교적 한계를 넘어서 전통 작품으로 오랜 기간 역사 속에서 숨쉬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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