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인형의 얼굴을 지우고 생동감 있게 다시 페인팅...대상 인물을 다양하게 재해석
[더팩트ㅣ이새롬 기자] ‘인형 리페인터’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평범한 인형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인형으로 재탄생시키는 인형 리페인터(Repainter). 일반적 방탄소년단(BTS) 인형을 살아있는 듯 숨을 불어넣은 명품 BTS 인형으로 생동감 있게 탈바꿈시키는 신비의 세계다.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이 리페인터를 직업으로 가진 남자가 있다. 국내에서 유명한 인형 리페인터 중 한명으로 꼽히는 김태기 작가가 바로 그렇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대학에서 파인 아트를 전공한 김 작가는 6년 전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 종종 인형에 얼굴을 그리며 취미로 했던 일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직업이 됐다. 그는 출시된 기성 인형의 얼굴을 지워내고 다양한 얼굴을 그려낸다. 그는 특히 미국 유명 완구업체 마텔의 ‘바비인형’에서 유명배우나 영화 캐릭터의 얼굴을 본 따 출시한 기존 인형을 더욱 생생하게 바꿔내며 이름을 알리게 됐다.
"제가 사람 얼굴을 좋아해요. 특히 예쁜 얼굴 보는 걸 좋아하는데, 소유욕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그 대상을 가질 수 없지만, 조그맣게라도 만들어서 내가 갖게 되는... 그런 부분이 인형과 잘 맞아 떨어진 거죠. 입체적인 인형 얼굴에 3D로 표현되니, 캔버스에 그림으로 그리던 것 보다 만족도가 커지게 됐어요."
그가 최근 더 유명해진 데는 방탄소년단(BTS) 인형이 한몫을 더했다. 지난해 바비인형은 BTS의 글로벌한 인기에 힘입어 BTS 인형을 출시했는데, 인형의 얼굴이 실물과 닮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가 바꿔낸 BTS 인형은 아미(BTS 팬클럽)들 사이에서 단연 눈길을 끌었다. 이렇게 그의 손을 거친 인형은 기존 인형의 몇십 배 이상 가치를 지닌 명품인형으로 인정받으며 ‘인형 리페인팅(REPAINTING)’이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가 됐다.
"연예인만 그리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단순히 닮게만 그리면 메리트가 없죠. 인형의 헤어나 의상까지 신경 써 다양하게 해석해요. 요즘은 자신의 여자친구, 남자친구를 그려 달라는 문의가 많이 와요. 고인을 추모하며 인형에 그려달라는 문의도 종종 있어요."
'인형 리페인팅'을 통해 인형이라는 소재가 마니아를 넘어 대중화되길 바라는 그는 현재 몇 명의 작가들과 팀을 꾸려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자체 제작한 인형으로 캐릭터 사업에도 뛰어들 생각이다. 누구나 각자의 개성으로 인형 얼굴을 리페인팅할 수 있는 키트도 판매를 앞두고 있다.
"이 일을 너무 마니아적인 취미로 보는데, 사실 굉장히 전문적이에요. 또 재밌는 분야이기도 하죠. 모든 취미의 종착점은 자신이 해 보는건데, 여기도 모으는 걸로 시작해요. 모으다 보면 나만의 걸 만들고 싶어하고, 처음에는 작가의 손을 빌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만들게 되죠."
그는 자신의 일을 음식점에 비유해 "단기간 내에 성공해 이슈가 되는 프랜차이즈점 보다는 ‘오래가는 국밥집’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다채로운 얼굴을 쫓다 보면 어느 순간 누구나 아름답다는 걸 깨닫게 돼죠. 현대판 '제페토(동화 속 피노키오를 탄생시킨 목수 할아버지)'는 바로 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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