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포토기획] '나는 산업전사 광부였다'...자부심만 남은 '갱도 인생'

 

지난 16일 강원도 태백시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지하 600m 지점에서 채탄 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한 작업자가 석탄 운반작업을 하고 있다. /태백=임세준 기자

1960년대 경제개발 원동력 석탄...현재는 4개 탄광만 남아 명맥 유지

[더팩트ㅣ태백=임세준 기자] "태백에 가면 개도 돈을 물고 다녔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 말은 한국 산업의 성장기인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산업발전의 원동력으로서 석탄이 호황기를 구가하던 시절 흔히 태백의 전성기 시절을 대표하는 말이었다. 이처럼 태백지역은 석탄산업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대표적 석탄 산지였다.

석탄은 언제부터 활용되기 시작했을까. 남한은 일제가 한반도 전력발전시설 대부분을 지금의 북한 지역에 건설한 탓에 북쪽의 송전에 전력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북한이 5.14 단전 조치를 실시하자 남한 정부는 자급이 가능한 석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군사정권이 들어서던 60년대 무렵,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행과 동시에 대규모 화력발전과, 산림녹화 사업을 위해 가정용 난방에 연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며 석탄채굴을 독려하자 강원도 지역의 태백 일대와 사북, 고한 도계, 삼척, 제천과 멀게는 전남 화순까지 석탄 주산지들은 넘쳐나는 수요와 몰려드는 석탄 산업 관련 종사자들로 인해 호황기를 맞이했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장성광업소.장성광업소는 1937년 영업을 시작해 7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대표 광업소로 1979년에는 한해 채굴량을 227만 여톤을 기록하며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기도 했다.

'주탄종유'. 즉 석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석유를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산업 구조 속에서 산업과 가정에서 두루 활용되던 석탄은 80년대 후반, 산업발전의 구조가 변경되고 그에 따른 에너지 수요가 석탄에서 석유로 이동함과 동시에 영국과 노르웨이 사이의 북해유전 개발과 석유파동을 지나 유가가 점차 안정세에 들어서자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주유탄종' 정책으로의 변화와 함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실시해 대다수 석탄 산지들은 폐광하기 시작했다. 이에 1989년을 기준으로 현재까지 총 340개의 탄광이 폐광됐고, 현재까지 살아남은 탄광은 대한석탄공사 산하 3개소를 포함한 5개소의 탄광이 영업 중이었으나 지난 2019년 10월 민영 탄광인 태백광업소가 침수와 채산성 악화로 인해 폐광 절차에 들어가며 현재 4개의 탄광만이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사라지는 석탄 산업의 현실을 취재하기 위해 지난달 16일 강원도 태백시의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를 찾았다. 장성광업소는 1937년 영업을 시작해 7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대표 광업소로 1979년에는 한해 채굴량을 227만 여톤을 기록하며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기도 했다.

오전 8시 10분, 생산부 직원들은 모두 모여 안전교육을 진행한다.

오전 8시 10분, 간단한 안전교육을 마치고 직원의 안내하에 갱도로 진입했다. 갱도 입구에서 20여 분, 대략 1km를 걸어 들어가니 갱도로 사람을 운반하는 케이지에 작업자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지는 수직으로 총 길이 1075m의 작업장을 초속 7m의 속도로 실어날랐다. 이들과 함께 케이지를 타고 30여 초가 지났을까 지하 600m 지점에 도착했는데 직원은 이곳이 지표 0m 지점이라고 안내했다.

빈틈없는 안전작업 재해없는 밝은 일터 한 작업자가 작업을 위해 입갱하고 있다.

끝이 없는 거대한 갱도

작업자들이 작업장으로 향하는 케이지에 탑승하고 있다.

침묵의 시간 케이지 소리와 함께 작업장으로 향하는 광부들

초속 7m 30초도 안되어 지하 600m 작업장에 도착해 각자의 구역으로 이동한다.

지하갱도 내 휴게시설, 휴식처 사이로 광차가 지나가고 있다.

작업 시작 전 발파용 뇌관을 정리하는 작업자.

가득 날리는 탄가루를 막기위해 착용하는 마스크.

안전제일 작업장 내 많은 곳에서 안전강조 문구가 여럿 눈에 띈다.

한 잔의 여유 화기 사용이 엄격히 금지된 갱도에서 믹스커피 한 잔은 작업 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여유다.

20여 분을 걸어 채탄을 진행하는 케빈 구역으로 들어갔다. 구역에 다다르니 엄청난 분진과 함께 시야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안내 직원은 조심하라며 이야기한 후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지만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암흑천지에서 작업자들은 안전모에 달린 작업등 하나에 의지에 채탄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니 흔히 막장이라고 부르는 탄광의 끝 지점에 도착했다. 안내 직원은 이곳이 케빈 채굴 지점이라 설명하며 막혀있는 지점 구석을 가리켰다. 구석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석탄이 운송 기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처럼 케빈 채탄 방식과 기계화 설비로 인해 사람이 직접 운반하지 않고도 채탄이 가능하다는 설명과 함께 다음 채굴 구역으로 안내했다.

날리는 석탄 가루로 인해 시야확보가 거의 안되는 채탄 구역

갱도 끝부분 구석에 석탄이 흘러내리고 있다.

작업 시작 한 시간도 안 되어 이미 까맣게 변해버린 얼굴.

채탄장은 늘 유독가스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지속적인 가스 탐지는 필수다.

각종 가스 수치를 나타내고 있는 탐지기.

흔히 탄광에서 채준 작업은 갱도의 전진 작업과 더불어 하중을 지지하기 위해 철제 지지대를 설치하며 갱도를 형성하는 작업이다. 미디어에서 곡괭이로 굴착작업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요즘은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뇌관을 이용한 발파와 굴착 기계 등을 활용해 채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채준 구역에 다다랐을 때 한 무리의 작업자들이 벽면에 뚫린 천공 부위에 뇌관을 삽입하고 전선을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십여 군데 구멍을 뚫어 뇌관을 삽입 후 발파해 전진해 나가고 있는데 지금 작업 중인 지점은 예전에 채굴이 중지되어 방치하다 채산성이 확보되어 갱도를 다시 뚫고 있다고 했다. 과거에 채굴이 중지된 지점도 현재로서는 채산성이 확보되어 재채굴 하는 것이다. 안내원과 다음 지점으로 향하는 길에 두꺼운 방화문이 있었는데 발파 시 직원들이 방화문까지 대피해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고 했다. 방화문을 보니 탄광이 최신기술을 도입과 기계화 설비로 작업을 진행해도 늘 위험이 도사리는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갱도 전진을 위해 발파작업이 한창이다.

곡괭이 대신 뇌관 요즘은 전자식 뇌관을 이용한 폭파 방식으로 갱도를 전진해 나간다.

채준 구역까지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석탄을 이송하는 이송구역으로 이동했다. 안내원은 사선으로 다음 구역이 연결된 사선갱도에서 어딘가를 툭툭 치며 신호를 보냈다. 이내 굉음과 함께 사람이 탈 수 있는 광차 한량이 올라와 함께 탑승하고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사선으로 빠르게 내려와 하차하니 이곳은 지표면에서 다시 -75m 구역. 갱도 한 레벨에서 다음 레벨 사이는 75m 간격을 유지하며 형성되어 있다.

하차장에서 20여 분을 걸어 들어가니 운반 특별관리구역 팻말과 함께 석탄을 가득 실은 광차들이 한가득 모여 기계속으로 들어갔다. 이송구역 담당자는 신기한 것을 보여주겠다며 기계를 작동시키자 광차가 빠른 속도로 한 바퀴를 돌아 석탄을 하부 저장고에 비워냈다. 이곳에 모인 석탄은 직선거리로 2.8km 떨어진 장성광업소 산하 철암생산부에 직선 컨베이어벨트로 옮겨져 석탄을 분류하는 선탄 작업을 거친 뒤 화물열차와 차량을 통해 전국 수요지로 옮겨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운반 특별관리구역 석탄을 실은 광차들이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위험한 구역.

거꾸로 뒤집힌 광차

하역장에 모인 석탄은 컨베이어벨트 시설을 통해 2.8km 떨어진 철암역 선탄시설로 이송되어 전국 각지로 운반된다.

태백석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폐광 현황판.

대한민국의 산업발전을 함께했던 많은 탄광, 이제는 현판만 남겨두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흉가로 변한 통리 한보탄광 직원 사택, 정책전환의 결과는 지역경제의 몰락을 야기한다.

나는 산업전사 광부였다 방치되어 흉물스럽게 변해가는 구 동원탄좌 건물 뒤로 화려하게 빛나는 강원랜드 카지노. 화려한 강원도 휴양 이미지 이면에는 지하갱도에서 청춘을 바친 광부들의 눈물어린 역사가 담겨져 있다.

탄광을 나와 분진으로 인해 새까맣게 석탄 덩어리가 된 몸을 씻고 나와 햇볕을 바라보니 새삼 갱도 내에서 작업하는 광부들의 고된 노동의 강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취재 중 만난 작업자 대부분이 평균경력 20여 년 이상의 중장년층이었다.

막 작업을 끝나고 갱도를 나온 한 작업자는 "매년 국정감사나 의원실을 통해 나오는 자료들은 늘 우리를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지만 서민연료에 묶여, 발전정책의 변화로 인해, 손발을 묶어놓고 고사시키기 위한 정책으로만 운영하는데 어떻게 이곳의 미래가 밝겠냐"며 긴 담배연기와 함께 속내를 털어놓았다.

광업소에서 만난 이들 대부분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작업자 대부분이 아무도 찾지 않는 깜깜한 갱도에서 석탄을 캐며 청춘을 바친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역군으로 살아왔는데, 한순간의 정책 변화로 인해 사라져야 할 존재로 취급받는 것이 못내 서운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들은 아직도 말한다. "나는 산업전사 광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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