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및 대형 마트, 시장, 고시원 등의 비상구 앞에는 상품 적치 '다수'
[더팩트ㅣ이덕인·남용희 기자] 비상구는 화재나 지진 등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급히 대피할 수 있도록 마련된 출입구를 말한다. 긴급 상황 시 비상구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생명을 지켜주는 '생명의 문'이다.
하지만 지난 3월 청주의 한 노래방 건물 2층에서 비상구 문을 열고 나오던 5명이 추락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한 이곳의 비상구는 말만 비상구일 뿐 문 밖은 허공에 있는 '낭떠러지 비상구'였고 추락 위험을 알리는 문구 외에 안전장치는 전무했다. 이처럼 낭떠러지 비상구를 비롯한 비상구 관련 사고는 조금만 신경 쓰면 막을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꾸준히 발생하는 인재 중 하나다.
<더팩트>는 '낭떠러지 비상구'와 매번 비상구에 상품 적치 문제로 지적을 받는 백화점 및 대형 마트, 시장, 고시원 등 우리 주변에 있는 '생명의 문' 비상구에는 문제가 없는지 취재했다.
이런 위험한 '낭떠러지 비상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취재진이 관악소방서 예방과에 문의한 결과 "특별법이 개정되기 전 다중이용업소법에는 비상구 설치 의무만을 규정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즉, 과거에는 '비상구의 설치'만을 의무로 하고 안전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따로 추락방지 시설을 설치하지 않더라도 법에 저촉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여주기식' 비상구를 만들어 둔 것이 현재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죽음의 문'이 된 것이다.
관계자는 이어 "개정된 다중이용업소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오는 12월 말까지 모든 다중이용업소의 부속실 또는 발코니형 비상구에는 추락 위험을 알리는 표지(스티커)와 경보음 발생 장치, 쇠사슬 및 안전로프 등 비상구 추락방지 안전시설 3종을 의무 설치해야 하며 지금도 (안전시설 3종 설치를) 추진 중이다"며 "현재 법이 소급 적용되고는 있지만 사실상 법적으로는 (낭떠러지 비상구가) 위법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 사고가 발생하는 곳의 대부분은 주류를 취급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관련 영업주들의 각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사고 예방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낭떠러지가 아닌 '진짜 비상구'는 제 기능을 하고 있을까?
비상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문'이라는 개념보단 '비상구 유도등'이다. 비상구 유도등은 소방법에 따라 평상시 상용 전원이나 배터리에 의해 켜져 있고, 정전이 되면 비상 전원 등으로 자동 전환돼 '항상' 점등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취재 결과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유도등이 고장으로 켜지지 않거나 설치를 잘못해 시민들에게 혼돈을 주는 곳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유도등을 따라 비상구를 찾아가 보면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 비상구의 문이 잠겨있거나 '직원 전용 통로'로 통행 제한, 물건 적치 등으로 '이곳이 정말 비상구가 맞나?' 싶은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현행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10조에 따르면 '피난시설, 방화구획 및 방화시설을 폐쇄하거나 훼손하는 등의 행위', '피난시설, 방화구획 및 방화시설 주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 설치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사고는 안 나게 미리 방지하고 발생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날지 모른다. 그리고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최소한의 인명 피해' 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관리해야 할 것은 '생명의 문'인 비상구다.
안일한 관리로 비상구가 '죽음의 문'이 되어 대형 사고가 발생한 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철저한 관리를 통해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한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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