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선화·이덕인 기자] 일본의 경제보복이 장기화되고 있는 최근, 불매운동과 더불어 문제시 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일제의 잔재 청산, 그 중에서도 적산가옥이다.
적산가옥이란 적국의 재산 중 가옥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집이나 건물을 지칭하는데,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소실됐지만 일부가 남아 역사적 가치로서 보존되거나 카페 등으로 리모델링 되며 눈길을 끌고 있다.
후암동을 걷다 보면 종종 일본식 주택을 만난다. 낡은 2층 구조에 외벽보다 긴 처마, 뾰족한 지붕은 당시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은 일본식 가옥의 특징이다. 이 주변은 일본인 주택단지가 있었던 곳으로 골목마다 적산가옥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서울 문래동과 인천 산곡동의 영단주택은 일본의 전시 체제하에 건설된 국내 노동자들의 주거지다.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바둑판식 구조가 됐고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좁은 골목이 만들어졌다. 또한 공습에 의한 화재 대비를 위해 구조는 목조였지만 외장은 시멘트 몰탈로 마감됐다. 영단주택은 해방 후 일본인이 떠나면서 적산가옥으로 남았다.
인천 부평의 삼릉마을은 미쓰비시 중공업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사택이다. 1938년 일제가 일본군 군수물자 보급공장인 육군 조병창을 부평에 세우면서 함께 지어졌다. 작은집 87채가 줄지어 있어 줄사택이라 불렸으며 약 8명의 근로자가 5평도 안 되는 작은 방에서 생활했다. 다쳐도 치료받지 못하고 편히 쉴 수도 없던 곳. 현재는 60여 채만이 남아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이 외에도 군산에는 군산 유지였던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위해 지어진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이 그대로 남아있고, 인천 중구 개항장 거리에는 우리나라를 억압했던 외국인들의 치외법권 지역으로서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지난 2일, 일본은 우리나라를 수출허가 면제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수출규제 조치를 놓고 일본은 징용이나 역사 문제가 아닌 '안보 문제'라 했지만 국내 여론은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번 조치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명백한 무역 보복"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선 적산가옥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반복하지 않아야 할 교훈이면서 청산해야 할 잔재이기도 한 적산가옥. 그 의미에 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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