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임세준 기자]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1987년 1월 16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으로 재학 중이던 박종철 열사의 사망 소식은 경찰의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라는 황당한 변명과 함께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상황을 소재로 한 영화가 흥행하면서 당시 대공 수사를 빌미로 한 고문의 민낯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1987년 1월14일 경찰 대공 수사관들은 서울대 민주화취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된 박종운의 소재 파악을 위해 후배인 박종철 열사를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해 무리한 수사를 행했고 고 박 열사는 물고문으로 사망했다. 숱한 고문의 비밀을 간직한 '대공분실'이 현재도 여전히 남아있다.
◆ '대공혐의점? 용공분자?'
'대공', '용공'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기사를 보면 간첩혐의로 체포된 사람들에게 대개 '대공 혐의점을 찾았다'라는 말을 쓴다. '대공'이란 공산당을 대상으로 하는 수사를 뜻하는 말이다. '용공'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지만 공산주의의 주장을 받아들이거나 그 정책에 동조하는 일 등을 뜻한다. 이 용공세력과 공산권을 대상으로 간첩을 색출하고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을 집중 조사하는 곳을 대공분실이라 불렀다. 이런 대공분실들은 애초의 취지와는 다르게 과거 독재정권하에서 정권의 의도에 동조하지 않거나 반사회적으로 낙인찍인 인물들이 끌려가 고문받는 장소로 널리 악명을 떨쳤다.
◆ 명칭만 변경...'대공분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화 <1987>을 통해 알려진 '대공분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과거 '대공분실'이라는 명칭을 떼고 '보안분실'이라는 명칭으로 이름을 바꾼 '대공분실'은 주로 각 지방경찰청의 본청이 아닌 산하 별관이라는 비밀스러운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경찰서가 24시간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개방돼있는 것과 달리 '보안분실'이 위치한 별관은 삼엄한 경계와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여 주변주민들조차 용도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외부와 단절된 장소에서 대공수사라는 명분 아래 행해진 숱한 고문의 악행들이 주택가 한가운데서 벌어졌다. 취재 중 확인한 서울 도심의 보안분실은 너무도 우리의 생활 속 가까이 자리 잡고 있었고 현재도 유지되어 있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안분실'을 취재하며 만난 경찰관들은 모두가 사진에 본인이 찍혔을까 노심초사하며 보안을 위해 절대 얼굴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지금은 그나마 경찰청 별관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지만,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보안을 이유로 OO 상사, 혹은 OO 산업 등으로 위장등록 되어있는 사례가 대다수였다. 지금도 위장의 사례가 없지 않다. 지난 2012년 경찰청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전국 14개 지역, 25개소의 보안분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중 몇몇은 아직도 지도상의 표기가 별관이나 보안분실이 아닌 별도의 명칭으로 존재하고 있다. 특히 경남지방경찰청 산하 보안수사대 한 곳은 어린이집으로 위장되어 있다. 실제로도 어린이 원아를 모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실효성이 점차 떨어지는 보안분실'
최근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보안분실 폐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계자는 요즘 시대에 강압적 수사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많은 이들의 눈길을 피해 혹시나 침해받을 수 있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다며 보안분실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일부 경찰 측의 말과는 달리 경찰 수사 인력과 보안사범 검거현황을 들여다보면 보안분실의 실효성에 의문부호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대폭 보안수사 인력을 늘려왔으나 실제 구속률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찰청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8년 27.5%였던 국가보안법 위반 검거자 대비 구속률이 2011년 12.6%까지 떨어졌다. 최근 5년 동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붙잡힌 사람들 가운데 구속된 경우는 평균 17.8%에 불과했다. 2011년을 기준으로 경찰 인력 대비 구속 건수로 따지면, 보안수사대 경찰관 30명이 1년 내내 겨우 1명을 구속한 셈이다.
경찰의 대공업무에 대한 실효성이 떨어지면서 보안분실이 위치한 지역에서도 폐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 장안동 보안분실 인근에서 이십여년 이상 거주해온 김 씨는 "우리 동네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을 몇 년 전에서야 알았다. 섬뜩하다. 이런 시설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고 동네 분위기를 위해서라도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 '보안분실, 이제는 본청으로 들어가라'
'보안분실'을 취재하면서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한줌의 빛조차 없는 이 어둡고 답답한 공간에서 겪었을 공포와 고통을 생각해봤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에서 아무도 모르게 인권이 짓밟힐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기획 시작부터 보안수사대나 보안분실의 폐쇄 자체를 주장하려고 취재한 것은 아니다. 그 업무가 외부에 별도로 마련된 별관 등에서 음성적으로 이루어진 과거에서 벗어나 청사 본청으로 들어가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부산지방경찰청과 대전지방경찰청은 보안분실을 따로 두지 않고 본청내에서 수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경찰이 주장하는 제3의 장소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 장소로 알려진 '대공분실'은 단지 '경찰청 별관'이라는 위장간판 뒤에 21세기 속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