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새롬·이덕인 기자]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22)씨가 덴마크 올보르에서 체포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 2016년 10월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드러난 지 1년 3개월이 흘렀다. 헌정 사상 처음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 정권이 들어선 격동의 지난 세월 동안 국정농단 수사의 중심에 있는 정유라 씨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지난해 11월 25일 정유라 씨가 거주하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미승빌딩에 괴한이 침입해 정유라 씨와 같이 있던 한 남성이 칼에 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남성은 정유라 씨의 마필관리사 이 모(28)씨였다. 국내로 송환되면서 정유라 씨의 승마 선수 생명은 사실상 끝났고 국내에는 말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 마필관리사 역할이 따로 필요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유라 씨 곁에서 그녀의 생활을 돕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마필관리사 이 모씨는 지난해 6월 정유라 씨의 아들과 함께 덴마크에서 입국했다. 이 씨는 정유라의 해외 도피 행각을 도왔으며, 덴마크에서 체포된 정유라 씨의 뒷정리도 도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라 씨는 과거 사실혼 관계였던 신주평 씨도 마필관리사로 고용해 월급을 챙겨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씨는 19세의 어린 나이로 독일에 가서 정유라와 함께 지냈으나 잦은 다툼 끝에 아들 한 명을 남기고 2016년 4월 결별해 홀로 귀국했다.
<더팩트> 취재진은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문을 열기 시작한 2016년 10월 도피 중이던 정유라 씨와 어머니 최순실 씨의 행방을 찾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찾았다. 최 씨 모녀가 소유하고 거주했던 비덱 타우누스 호텔은 이미 폐쇄된 상태였다. 호텔 인근 현지인의 도움으로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최 씨 모녀의 새로운 집을 알게 됐다. 비덱 호텔과는 약 1km 떨어진 곳에 불과했고, 주민들은 최 씨 모녀와 측근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취재진은 최 씨 모녀를 지근거리에서 돕는 측근들을 새로운 집에서 확인했다. 21일 이른 아침 최 씨 모녀의 집 앞에서 한국인 남성 여러 명이 짐을 싸서 이동을 준비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취재진은 이날 젊은 한국인 남성을 카메라로 포착했다. 이 남성이 최근 괴한에게 피습당한 마필관리사 이 씨로 추정된다. 정유라 씨와 이 씨는 국내 취재진의 집요한 취재를 피해 거주지를 옮기다가 급기야 덴마크에 자리를 잡았으나 결국 지난해 1월 체포됐다.
이화여대 학사 비리, 국정농단 등으로 최순실과 함께 국민의 공분을 산 정유라 씨는 어머니 최순실 씨가 구속된 뒤에도 계속 해외에서 도피생활을 벌이다 지난해 1월 2일 덴마크 올보르 현지에서 체포돼 5월 31일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정유라 씨는 최순실과 함께 이화여대 부정입학 및 학점 특혜를 공모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정유라 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자신의 두 살배기 아들을 언급하며 "이역만리에 두 살배기 아들이 있다"며 이 점을 고려해달라고 호소했다.
이후 6월 7일 정유라 씨의 아들과 보모, 마필관리사 이 씨가 나란히 귀국했다. 이들은 이후 미승빌딩에서 정유라 씨와 함께 거주한다. 이후에도 정유라 씨는 최순실 씨가 삼성에서 지원한 말을 다른 말로 바꾸는 '말 세탁' 과정에 가담했다는 혐의(범죄수익은닉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또 기각됐다.
이후 <더팩트>는 정유라의 근황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정유라 씨와 마필관리사 이 씨의 모습을 다시 확인했다. 지난 10월 정유라 씨는 미승빌딩 앞 거리에 홀로 나섰다. 비교적 가벼운 옷차림에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자유롭게 압구정 거리를 활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승건물로 돌아온 정유라 씨는 한 남성과 함께 건물을 나와 다시 거리로 나섰다. 마필관리사 이 씨였다.
두 사람은 미승빌딩에서 멀지 않은 음식점에서 지인을 만나는 등 평범한 20대 남녀의 모습을 보였다. 종종 음식점 밖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해외 도피시절부터 함께해 온 두 사람의 '돈독한 모습'이 엿보였다. 회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 등 비슷한 옷차림이 흡사 커플룩을 연상케 했다.
지인들과 시간을 더 보낸 두 사람은 택시를 이용해 다시 미승빌딩으로 돌아왔다. 정유라 씨가 현금으로 계산하는 모습도 확인했다. 미승빌딩으로 돌아온 정유라 씨는 혼자 건물에 올라갔다가 다시 나와 택시비를 지불했다. 최순실 모녀는 계좌 추적 등을 피해 주로 현금을 사용한다는 내용은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미승빌딩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이후 한 달여 만인 11월 25일 정유라 씨가 거주하는 미승빌딩에 택배 기사로 위장한 괴한이 침입해 같이 있던 이 씨가 흉기에 옆구리를 찔리는 부상을 입었다. 피습을 당한 이 씨는 서울 행당동 한양대병원으로 옮겨졌고,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정유라 씨는 흉기에 찔린 이 씨가 이송된 한양대 병원 면담실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괴한의 피습에 충격을 받은 정유라 씨는 이 씨가 치료를 받는 병원을 지키면서도 향후 발생할 지도 모를 테러 위험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피습 사건 직후 정유라 씨는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당시 경찰은 정유라 씨의 요청에 따라 경찰관 3명을 투입해 정 씨 집 근처에서 대기하며 외출할 때마다 대동하는 등 신변을 보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정 씨의 자택 주변 인근을 지구대에서 주기적으로 순찰하고 있다"며 "지급한 스마트워치를 통해 위급상황시 곧장 신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피습사건 두 달여 만에 취재진은 이 씨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한양대학교병원 측에 문의했으나, 병원 측은 환자의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이 씨의 퇴원 여부에 대해 함구했다. 오히려 미승빌딩 건물에 상주하는 주차관리원으로부터 이 씨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매일 미승빌딩 입구에서 차량을 관리하며 두 사람을 자주 목격했다는 주차관리원은 이 씨가 피습 사건 이후 일주일여 만에 퇴원해 건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이후 정유라와 이 씨는 건물에서 칩거하며 종종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두 달여가 지난 미승빌딩 앞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간이 순찰차가 미승빌딩 골목을 순찰하는 것 외에 삼엄한 경비도 없었다. 정유라가 거주하는 미승빌딩 6층으로 종종 배달음식이 들어갔다.
주차관리원의 말처럼 며칠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11일 오후 미승빌딩에서 나온 두 사람은 친구들과 어울려 거리를 활보했다. 경찰의 신변보호는 없었다. 다만, 정유라 씨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주위를 의식해서인지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움직였다. 친구들 사이에 이 씨도 함께였다.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거리를 활보하며 웃음 짓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피습 사건은 다 잊은 듯했다. 부상에서 회복된 이 씨 역시 밝은 표정이었다. 압구정 일대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바로 지인들과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사건 이후에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다정하게 팔짱을 끼는 등 부쩍 가까워진 모습을 보였다. 미승빌딩 건물 골목에 들어서면서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거리를 두고 순차적으로 집으로 향했다. 이 씨는 정유라의 1~2 미터 뒤에서 보필(?)하며 여전히 정 씨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두 사람은 해외 도피시절부터 피습까지 지난 1년 3개월 동안 여러 고난을 겪으며 더욱 돈독한 관계로 발전한 듯했다. 최근 최순실 씨는 딸 정유라 씨를 상대로 모녀가 소유한 평창 땅을 못팔게 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법원에 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평창 땅은 모녀가 절반씩 공동 소유한 땅으로, 실 거래가가 10억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법원은 "정씨에게 손해가 생길 수 있으니 담보를 제공하라"고 명령했고, 최 씨가 담보를 내지 않아, 각하 결정이 확정됐다.
아버지 정윤회 씨와 떨어져 지내며 어머니 최순실 씨와도 재산 문제로 멀어진 가운데, 의지할 곳 없는 정유라 씨에게 이 씨는 누구보다 든든한 조력자라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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