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지팡이의 날’에 대해 아시나요? 시각장애인들이 활동하는데 보조기구로 사용되는 지팡이가 바로 '흰지팡이' 입니다. 시각장애인의 상징이기도 하며 독립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오늘(15일)은 바로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정한 날입니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이새롬 기자] 밴드 다카포는 '남셋여셋' 청춘남녀 6인으로 구성된 직장인 밴드다. 교사와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이 밴드는 남성 구성원이 모두 시각장애인이라는 특별한 이력을 지녔다.
밴드의 맏형이자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김필우 서울 정민학교 특수교사(35)는 어려서부터 앓던 선천성 녹내장으로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고3 진학을 앞둔 겨울, 나머지 한쪽 눈마저 시력이 떨어졌다. 사회복지과를 전공했지만, 남들처럼 직업을 갖기란 쉽지 않았다. 이십대에 뒤늦게 맹학교에 진학해 시각장애인으로의 삶을 다시 배우고, 사범대 특수교육학과에 들어가 2013년 9월 중등 특수교사 임용 시험에 합격해 교사가 됐다.
베이스의 김헌용 서울 구룡중학교 영어교사(32)는 다섯 살 때 외부 충격으로 인한 망막 손상(망막박리)으로 시력을 잃게 됐다. 서울맹학교에 다니면서도 좋아하는 영어와 교사이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어 교사를 꿈꿨다. 사범대 특수교육과에 들어가 영어교육을 복수 전공하고 2010학년도 서울시 중등교원 임용 시험에 합격해 교사가 됐다. 그는 서울에서 일반 학교 교사가 된 첫 시각장애인이다.
드러머인 하지영 점역교정사(31)는 태어날 때부터 망막변성과 시신경위축으로 시력을 상실했다. 타고난 운동 신경으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시각장애인 축구 국가대표로 활동한 그는 2010년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거머쥐기도 했다. 대학에서 점역교정사(시각장애인용 문자인 점자를 교열·검열하는 직업군)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지난해부터 국립중앙도서관 내 장애인도서관에서 점역교정사로 근무하고 있다.
남들보다 끊임없는 투지와 노력으로 각자의 자리에 이른 세 사람에게 음악은 시련과 좌절을 겪을 때마다 다시 일어나게 해준 한 줄기 빛이었다. 하지만 악기 연주 역시 남들보다 많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했다.
'음악이 유일한 여가 생활'이라는 헌용 씨는 2012년 밴드의 창립 멤버다. 그가 악기를 처음 잡았을 때를 회상했다. "초보일 때가 가장 어려웠어요. 악기 숙련도가 떨어질 때는 무식하게 코드를 다 외우거나 보고 따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데 그게 어렵다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여전히 세 사람은 밴드 활동 중에도 틈틈이 개인 레슨을 통해 핸디캡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가고 있다.
밴드 결성 초기부터 지금의 구성원에 이르기까지 5년이 걸렸다. 풀밴드로만 공연을 계속해오던 밴드가 한때 드러머의 탈퇴로 인해 밴드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적도 있다. 이때 필우 씨를 필두로 한 어쿠스틱을 준비했고, 이를 계기로 거리 공연(버스킹)까지 도전했다. 그 사이 헌용 씨와 맹학교 동기인 지영 씨가 새로운 드러머로 밴드에 합류했다.
멤버의 탈퇴 등으로 위기를 겪은 밴드는 지난해 1월 '다시 처음'이라는 뜻의 악상기호를 따 '다카포'로 밴드명을 새로 짓고 이름처럼 하루하루 새롭게 재정비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서울거리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밴드는 매달 선정되는 우수 팀에 꼽히며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후 멤버들은 다양한 거리 공연에 초청되며 한층 바빠졌다.
장애인들에게는 직업 생활도 어렵고, 게다가 여가 생활까지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현실이다. 장애·비장애 구성원으로 이뤄진 밴드는 그런 면에서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다. 그들이 들려주는 노래와 활동을 통해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다양한 사람들이 즐기며 화합하는 문화의 장을 이루고 싶은 큰 포부도 가지고 있다.
"마음은 누구보다 잘하고 싶어요. 잘 하고 싶지만 (장애라는 핸디캡으로) 잘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에요. 남들보다 많이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최선을 다하고 즐기는 이런 우리의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희망으로 비춰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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