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민의 초이스톡] '포커페이스'

홈런 허용 후 감정을 주체 못하는 LG 윤지웅.

[더팩트| 최용민 기자] "너의 감정을 다른사람 앞에서 절대로 드러내지 마라"
영화 '대부'에서 감정 제어를 하지 못하는 아들 소니(제임스 칸)에게 아버지 돈 꼴레오네(말론 브란도)는 진지하게 충고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 대부의 자리를 승계한 마이클(알 파치노)도 후계자인 조카 빈센트(앤디 가르시아)에게 같은 충고를 합니다. 병법의 대가인 손자도 "내 모습과 의도를 상대에게 감추고 함부로 보이지 말라"며 '시형법'을 통해 후대에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덩샤오핑, 시진핑등 중국 지도자들이 처세술의 으뜸으로 여기는 덕목 또한 '감정의 절제'라고 합니다. 바늘구멍 만한 약점과 단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틈새를 공략하는 승부의 세계에서는 무엇보다도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로 심리적 균형을 잡는것을 첫째로 꼽습니다.

실투에 대한 자책이 흥분한 감정을 주체 못해 글러브를 내팽개치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LG 윤지웅.

1997년 WBA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은 상대인 에반더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으며 전설적인 반칙왕으로 등극하는 전대미문의 '핵이빨' 사건을 일으킵니다. 타이슨을 흥분시키기 위해 의도적인 들이박기(버팅)를 구사한 홀리필드의 심리전에 말려버린 타이슨은 급기야 감정을 주체못하고 두 번이나 귀를 물어뜯고 실격패를 당한 후 난동을 부렸습니다. 2006년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독일월드컵 결승전, 프랑스 지단은 경기내내 신경전을 벌인 이탈리아 마테라치의 가슴을 들이받는 사고를 칩니다. 마킹을 하던 마테라치의 더티플레이에 한계를 보인 지단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은퇴경기를 퇴장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날 우승컵을 이탈리아에게 헌납한 프랑스는 눈물바다가 됩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타이슨과 지단의 경우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상대의 치밀하게 계산된 심리전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상대의 지속적인 자극에 얼굴과 몸짓이 반응하며 속마음을 간파당한 것입니다. 중요한 순간에 폭발하는 감정을 제어 못하고 경기를 망치거나 팀 분위기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홈런을 허용한 뒤 분을 못 삵이는 LG 윤지웅.

지난 10일 열린 삼성과 LG의 잠실전 입니다. LG투수 윤지웅이 2-6으로 리드를 당하던 8회초 1사 1.2루서 삼성 최형우에게 스리런홈런을 허용한 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글러브를 내팽개치며 괴성을 지르는 장면이 목격 됐습니다. 실투에 대한 자책이 순간 흥분한 감정을 주체 못한 행동인데요. 이를 지켜보던 LG 더그아웃과 관중석은 싸늘한 분위기가 맴돌았습니다. 그라운드에 있던 야수들도 놀란 표정을 보입니다. 관중석서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 사이에서 안타까운 수근거림도 들려왔습니다. 결국 양상문 감독은 교체를 지시했고 고개를 숙이며 마운드를 내려오는 윤지웅의 눈빛은 후회로 아른거립니다. 만약 이날 경기가 한국시리즈 같은 중요한 경기였다면 삼성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겁니다.

윤지웅의 돌출행동에 투수교체를 위해 마운드로 올라가는 강상수 코치.

올 시즌 LG는 선발진의 공백이 생기면 윤지웅을 선발투수로 투입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LG 팬들의 기대치도 한껏 높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이날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윤지웅의 돌출행동에 적잖은 팬들이 우려의 시선을 보냈습니다. 투수를 중심으로 포진해 있는 야수들도 이 상황을 지켜보며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을 겁니다. 미래의 마운드를 짊어질 기대주의 젊은 혈기와 넘치는 파이팅으로 봐주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이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노련한 투수들은 좀처럼 자기감정을 노출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읽을 수 없었던 선동열, 위기상황서 되려 미소를 보인 구대성, 홈런을 맞고도 표정 변화가 없었던 류현진,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의 오승환등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 계보를 이어온 이들의 공통점은 알 듯 모를 듯 분간이 안가는 '포커페이스'의 대가들입니다.

모두가 지켜보는 그라운드에서 감정을 표출한 뒤 후회의 눈빛을 보이는 LG 윤지웅.

승부의 세계에서 얼굴로 보여지는 표정은 전쟁터에 나간 장수의 갑옷과도 같다고 합니다. 속내가 전달된 얼굴 표정이 간파당하고 행동을 제어 못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향한 나의 패들이 몽땅 까발려졌다는 다시말해 상대방은 나를 공략할 준비가 됐다는 얘기에 다름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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