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를 찾아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취재하다 보니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났다. 가슴 떨리던 순간도 있었고, 아쉬움에 탄성을 자아내던 순간도 있었다. 사진으로 다 표현하지 못한 현장의 순간은 어땠을까. <더팩트>사진기자들이 한 해를 정리하며 단독 취재 과정에서 느낀 가장 인상적 장면을 선정,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편집자주>
[더팩트│이효균 기자] "도대체 어떻게 찍은거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장면의 6월 2일 단독보도([TF특종-이건희 회장 병상 투혼 포착①] 자발 호흡 최초 확인, 사망설은 헛소문)에 대해 아직도 이런 질문을 많이 받곤한다. 처음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가 당황스러웠다. 취재 노하우를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이 사실을 밝힐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쳐갈 쯤 이제는 때가 됐다는 판단이 들어 이제서야 취재기를 쓰게 된다.
사실은 이렇다. 삼성의료원 뒤편으로 약 1km 정도 떨어진 아파트 옥상의 옥탑이 취재 포지션이다. 사실 이곳은 다른 매체의 사진 기자들도 고려를 했으나 병실과 아파트의 거리가 너무 먼 데다 각도가 맞지않아 포기한 곳으로 알려졌다. 병실의 높이가 아파트 높이보다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취재를 위해 경비원의 눈을 피해 옥상오로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약 15m 높이의 옥탑을 또다시 올라가기 위해선 직각으로 된 사다리를 이용해야했고 카메라 보디 2대, 800m렌즈, 트라이포드까지 들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또한, 최대한의 높이를 점해야 하기 때문에 옥탑에서도 최고 높은 부분에 서 있어야 한다. 땅 아래로 눈을 돌리면 정말이지 '오금이 저린다'는 말이 실감난다.
◆'사망설'에 요동치는 증시, 현장 취재 욕구 발동
돌이켜 보면 꿈만 같고, 운도 많이 따랐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5월 10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다음 날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고 장기 투병 조짐이 보이자 지라시 등을 통해 소위 '이건희 사망설'이 계속 유포됐다. 급기야 그해 5월 중순께 '사망했다'는 한 매체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8월 한 달에는 몇 번이나 사망설이 대규모로 퍼졌다.
모두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파괴력은 만만치 않았다. 사망설이 크게 유포될 때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호텔신라의 주가는 요동쳤다. '삼성그룹이 공식적인 장례절차 준비에 들어갔다', '삼성 수뇌부들이 삼성서울병원에 집결했다'는 루머도 나돌았지만 삼성그룹은 이 회장의 신상에 변동이 없음을 매번 재확인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하루 15∼19시간 깨어 있으면서 휠체어 운동을 포함한 재활치료를 받고 있으며 인지 기능 등의 회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삼성 측은 전했다. 이건희 회장의 취재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루머에 대해 삼성 측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대중들은 반신반의했다. 도대체 진실은 뭔가.
◆ 항상 주변의 정보수집은 필수
'팩트'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글로벌 그룹이자 한국의 대표 기업' 삼성 이었고 그 그룹의 오너인 이건희 회장이었기 때문에 사실 확인이 더 중요했다. 삼성 측은 재활치료에 전념하고 있다고 설명을 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구체적 물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 측은 "우리가 물증까지 내놓아야 하느냐? 그럼 또 다른 루머가 생길 수 있다"며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2일, 무작정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취재에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항상 주변의 정보수집은 필수다. 수많은 삼성서울병원 지인들을 통해 VIP 병실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했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병원 직원들조차도 이 회장에 대한 상황을 모르고 더군다나 20층 VIP병실은 접근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지인들의 도움을 포기하고 평소 하던 대로 현장을 지키는 '뻗치기'에 들어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병원 20층의 모든 구조를 '동서남북'으로 돌며 파악했다. 3일 정도 둘러보니 병실에서 바라본 전망과 햇빛의 방향 (이 회장의 방은 남향이다), 병실의 크기, 밤에 불이 켜지는 병실, 병실에 방문하는 사람 등의 모습이 확인 가능했고 이를 종합한 결과 딱 1개의 병실이 눈에 들어왔다.
◆드론 취재? 사실은 800mm 장망원렌즈!
바로 그 병실이 맞다라는 것을 확신했고, 인내심 싸움에 들어갔다. 취재 가능한 곳은 건너편 15층 아파트 옥상이었고 옥상의 높이는 20층 병실보다 낮은 상황이었다. 옥상에서 병원까지의 거리는 약 1km였다.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아파트 몇 개 동을 돌며 병실과의 각도를 측정했고 옥상에 있는 옥탑에 올라가 앵글의 높이를 맞췄다. 렌즈는 800mm 장망원렌즈와 80-400mm+1.7* 컨버터 두 개를 선택했다.
단독 기사가 나간 후 의외로 취재 카메라 장비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 현장 취재에 많이 사용되는 '드론'으로 취재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다. 취재 대상이 빌딩 20 층 높이에 있다 보니 생겨난 궁금증으로 보인다. 사실 야간에만 취재가 가능한 상황이고, 병원 근처라 드론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일단 드론을 제외하고, 취재 포지션을 잡았으나 문제는 또 있었다. 위치를 잡는 것보다 병실 창문을 가리는 블라인드와 빛의 반사가 더 문제였다. '아뿔사… 안 되겠구나.' 블라인드가 살짝 걷혀 내부가 보여도 유리와의 반사 때문에 피사체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간 지켜보니 해가 떠 있을 때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일몰 이후 시간대에 취재를 하기로 시간을 변경했다.
◆정신없이 누른 셔터, 확인해 보니 이건희 회장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병실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밤 9시쯤이 되면 항상 청소를 하는 것이다. VIP 병실인데 밤에 청소를 한다는 것은 누가봐도 의아한 상황이다. 2~3일에 한번 씩은 9시쯤 청소를 하는데 상당히 분주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환자를 옮길 것으로 보였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환자가 앵글에 들어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5월 15일에는 최지성 부사장의 병문안과 업무보고 장면을 잡았다. 이후 며칠동안 삼성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21일에는 이재용 부회장과 홍라희 여사가 잠실야구장을 찾기 전 병실을 찾았는데 이때는 안타깝게도 병실 반대쪽에서 취재를 하느라 병문안 장면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5월 22일 밤. 9시쯤 되자 병실은 청소를 하기 시작했고 그 안은 꽤 분주해 보였다. 때를 기다렸다. 한 발짝만 미끄러져도 추락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스크를 한 의사가 환자에게 다가가 침대를 45도 각도로 높였다. 누군가 참문 위로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첫 번째 사진은 흐릿했다. 다시 찍은 두번째 사진에서 이건희 회장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두 달여의 인내, 30초의 행운
'됐다!' 숨도 쉬지 않고 이 회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취재 시간은 약 30초. 다시 이건희 회장의 침대가 내려갔고 상황은 끝났다. 30초에 모든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찰나였다. 글로벌 그룹 삼성의 수장 이건희 회장의 근황을 1년 여 만에 처음 포착하는 순간이었다. '사망설' '위독설' '자택 치료설' 등은 모두 낭설이었다. 이 회장의 신체는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아~건강하구나. 이재용 부회장과 어머니 홍라희 관장이 밝은 모습으로 야구장 응원에 나선 것도 이 회장의 상태가 긍정적이란 방증이었구나.' 찰나의 30초였지만 그간의 뉴스와 루머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프로야구 삼성 경기가 열리면 어김없이 TV가 켜진 것도, 이 회장의 시선에 맞춰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된 TV도 모두 이 회장의 재활치료 과정이었던 것이다.
심장이 두근거려 하늘을 보니 달빛이 환하게 취재진을 비추고 있다. 달빛이 그렇게 부드럽고 온화한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풍문'으로 들은 이건희 회장 사망설의 수 개월 취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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