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민의 초이스톡] KIA 윤석민을 위한 '비움의 미학'

與一利不若除一害 (여일이부약제일해)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이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生一事不若滅一事 (생일사부약멸일사)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

동서양을 아우르며 대영제국 다음으로 큰 몽골제국을 이룩한 '위대한 정복자' 칭기즈칸, 초원의 유목민에 불과한 몽골족을 이끌고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야율초재라는 걸출한 책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위의 글은 하늘과 땅과 인간, 그리고 세상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봤던 야율초재가 후대를 위해 남긴 명언이라고 합니다.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포기했던 방치된 대리석을 가지고 '인고의 노력' 끝에 신이 창조한 조각상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다비드(다윗)상의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작품이 완성된 후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나는 돌 속에 갇혀있는 다비드만 보고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했을 뿐입니다" 위대한 조각상 역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한 결과물 입니다.

봄의 기운을 시샘한 동장군의 '몽니'가 사그라질 즈음 야구팬들은 설렘과 흥분으로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습니다. 바로 프로야구 시범경기죠. 어느덧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은 프로야구이기에 구단과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큰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데요. 많은 화제와 이야기 중에서 야구판을 뜨겁게 달군 주인공은 팬들의 비난과 환영을 동시에 받으며 국내로 복귀한 KIA 타이거즈 윤석민 선수 입니다 . 2013년 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한 윤석민에 대해 많은 팬들은 류현진 못지 않은 또 한명의 성공적인 메이저리거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단 한차례도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지 못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낮선 환경속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실력을 보이지 못한 '불운한 선수'라는 우호적인 시각도 있지만 메이저리그 진입에 실패 후 다시 트리플A로 시작하는 상황에서 좌절의 시기에 독기를 품지 못하고 대게의 한국 선수들이 범하는 우를 똑같이 범했다는 비난과 조롱도 만만치 않았죠.

'4년 90억' 지난해 11월 두산 장원준이 4년 84억으로 최고액을 찍은 후, 1년 아니 6개월도 채 안돼 국내로 복귀한 윤석민이 FA최고기록을 갱신했다는 소식에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습니다. "투타의 전력누수가 심각하고 검증된 에이스가 절실한 KIA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금의환향하는 선수가 아닌 실패한 선수에게 어울릴만한 계약은 아니다"라는 수군거림이었죠. 이렇게 큰 규모의 계약이 자칫 윤석민 스스로가 부담감에 짓눌리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아울러서 말이죠.

지난 16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를 찾았습니다. 완연한 봄기운 속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 야구에 대한 갈증을 풀고 있었습니다. 겨우내 담금질을 통해 감독의 눈도장을 받으려는 선수들의 피 튀기는 그라운드 한켠에서 조용히 그리고 긴장된 표정으로 복귀전을 준비하는 윤석민이 보이는 군요. 감회에 젖은 듯 한동안 생각에 잠겨 그라운드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KIA 김기태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시선이 모두 윤석민에게 쏠려 있네요. 1이닝 2K 무실점, 6회초에 등판한 윤석민은 구속 146km로 전성기 못지않은 피칭을 선보입니다. 실전감각이 부족하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복귀전이었습니다. 상대팀인 LG 양상문 감독도 '낙차 큰 커브가 좋았다'며 돌아온 윤석민에게 후한 점수를 줬습니다.

덤덤하게 이닝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윤석민은 만감이 교차 했을 겁니다. 빅리그 진출 실패에 대해 개인적으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다지만 상처난 자존심과 머나먼 이국땅에서 그간 겪었을 마음고생은 본인이 아니면 모를 일입니다. 노랫말 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하죠. 쉽지 않겠지만 빅리그 실패에 대한 상처를 잊고 아쉬움과 미련을 빨리 털었으면 합니다. 다만 기억하기 싫은 지나간 일이라고 과거를 단절하기 보단 지난일들을 냉정하게 객관화 하길 바랍니다.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교훈으로 앞으로 펼쳐질 야구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솎아내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서두에 열거한 야율초재나 미켈란젤로의 말에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무엇을 채울까"를 생각하기에 앞서 "무엇을 비울까"를 생각하고 "어떤 장점을 갖출까"를 생각하기에 앞서 "어떤 단점을 없앨까"라는 '비움의 미학' 입니다. '비움'이란 단순한 버림이 아니라 더 역량을 키우고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죠.
비워야 다시 채워지는것 또한 세상의 이치 아닐까요.


[더팩트|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최용민 기자 leebea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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