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근의 Biz이코노미] 삼성 총수 이재용, '카렌시아' 조차 없는 '투우(鬪牛)'

지난 19일 오후 중국 출장 일정을 마친 이재용 부회장이 경기도 김포시의 한 호텔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고 자택으로 귀가하는 모습. /임세준 기자

'이재용 경영승계' 재판·수사, 종지부 찍을 때 지났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카렌시아(Querencia)'. 최근에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찾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쓰이지만, 본래 의미는 투우 경기장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 전 마지막으로 소가 잠시 쉬는 공간을 뜻한다. 아무리 긴박한 순간에라도 잠시나마 자신을 위해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이 말은 시공을 초월해 공감을 얻는 것 같다.

요즘 국내 기업들이 처한 최근 불확실한 경제 안팎의 상황을 보고 있으면, 오로지 살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투우사와 맞서는 투우를 보는 것만 같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글로벌 시장'이라는 경기장에서 생존이라는 원초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기업 총수들의 상황은 절박함에 내몰린 투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상적 사회라면 '경제 전시 상황'에서 분투하는 그들을 격려하고 성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아니 힘을 북돋워주지는 못 할망정 최소한의 '카렌시아'라도 허용하고 있는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중국 출장 행보에 경제계 이목이 쏠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굴지의 글로벌 기업인들은 물론 설비엔지니어들조차 방문을 꺼리는 중국 출장길에 오른 이 부회장이 2박 3일 동안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받은 코로나19 검사 횟수만 3차례에 달한다.

내부 경영진의 우려와 만류에도 이재용 부회장이 출장을 강행한 배경을 두고 재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이 처한 위기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지 방증하는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여파 속에 미·중 무역갈등 재점화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 속에서 현장 경영에 고삐를 죄는 총수의 행보는 '자리'가 갖는 무게감과 책임을 고려할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문제는 경영 외적인 요소다. 중국 출장을 마친지 일주일 만인 26일 이 부회장 발길은 공항이 아닌 검찰청을 향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불법 의혹과 관련해 이 부회장이 과거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에서 지시나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을 조사받기 위해서다.

'이재용 소환'이라는 단편적인 사실만 두고 보면, 눈길을 끌만한 '이벤트'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해당 이슈는 이미 수 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도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이 다뤄졌던 사안이다. 실제로 지난 2018년 6월 이 부회장의 1심 재판 당시 변호인단과 박영수 특별검사팀 양 측은 두 회사의 기업가치를 측정하고, 합병 비율을 산정하는 과정에서의 부당성 유무를 두고 수일에 걸쳐 많게는 기일별로 10시간을 훌쩍 걸친 마라톤 공방을 이어간 바 있다.

재계 관계자들이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에서도 더는 소명할 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며 측은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지난 2016년 국정 농단 의혹부터 무려 4년 동안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재판을 치르고, 검찰이 별건의 수사를 진행하는 사이 '이재용'이라는 개인은 물론 삼성의 경영 시계는 완전히 멈춰 섰다.

김용희 삼성 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는 최근 유튜브 연대TV 계정을 통해 삼겹살 폭식 투쟁이라는 동영상을 게재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영상을 삭제했다. /연대TV 유튜브 갈무리

더 심각한 문제는 삼성을 향한 일각의 맹목적이면서도 도를 넘어선 비난이다. 최근 정부 여당 국회의원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사법부(판사)를 향해 자신들이 '죄인'으로 단정한 이재용 부회장의 단죄를 촉구했다. 삼권분립 원칙 자체를 뒤흔드는 전례 없는 압박에 당시 법조계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어디 그뿐인가 삼성 서초사옥 앞은 이미 '집회의 장'으로 변한 지 오래다. 심지어 이제는 삼성 해고노동자들의 피해 보상 등을 요구하기 위해 구성된 시민단체가 이 부회장의 자택 앞에서 삼겹살에 술를 마시며 노래까지 부르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범법행위로부터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기업(총수)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인 시달림에 눈을 감을 필요도 없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투우에게도 잠시나마 '쉴 틈'은 주어진다. 초를 다투는 글로벌 경쟁 시대에 햇수로만 5년 가까이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있는 기업 총수에게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likehyo85@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